<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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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하 <트랜스포머2>)은 예상한 그대로다. 전편 <트랜스포머>에 비해 배경의 스케일은 더 커졌고, 로봇의 수량은 더 많아졌으며, 상영시간도 더 늘어났다. 머리보다 본능을 믿는 마이클 베이에게 그 이상 무얼 더 기대할까.

우리의 주인공 샘 윗위키(샤이어 라보프)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더 사랑하는 여자 친구 미카엘라(메간 폭스), 그리고 범블비와 작별을 고하려한다. 그때 갑자기 샘의 책에서 떨어지는 큐브 조각이 화를 부르니. 2년 전 좋은 놈 로봇 오토봇과의 싸움에서 패한 나쁜 놈 로봇 디셉티콘의 수장 메가트론이 다시금 눈을 뜨고 복수를 위해 지구로 쳐들어온다. 그동안 미국정부와 손잡고 지구에 남은 디셉티콘의 잔당을 소탕하던 옵티머스 프라임 이하 오토봇들과 샘, 미카엘라는 미국과 프랑스, 이집트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디셉티콘과 또 한 번의 일전을 벌인다.

<트랜스포머2>를 두고 작품성을 논하는 것은 인간배우의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불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트랜스포머2>는 존재 자체가 흥행을 담보한다. 이미 국내 개봉 첫날부터 50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흥행기록의 새 역사를 쓴 <트랜스포머2>는 이미 ‘재밌다, 재미없다’의 차원을 벗어난 범주에 진입했다. 영화가 아니라 ‘현상’인 까닭이다. (태초에 인류 역사에 로봇이 있었다는 황당한 이야기 설정 등 이 영화의 단점을 이 글에서조차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래서 <트랜스포머2>에 대한 논란의 질문은 바꿀 필요가 있다. ‘왜 사람들은 <트랜스포머2>에 열광하는가?’로.  

마이클 베이는 전편 <트랜스포머>를 통해 만화 상에만 존재했던 로봇을 실사로, 즉 마니아 문화에 국한됐던 소재를 대중문화로 끌어들여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한 줄을 보탰다. 하지만 <트랜스포머2>에는 실사로 구현된 로봇의 액션을 관람하는 경이적인 최초의 경험이 증발됐다. 그러니 속편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 전편을 뛰어넘을 영화를 만들 거라 기대한 이가 아무도 없었던 건 당연한 반응이다. 마이클 베이조차도 그런 예술적 야망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두 배 이상 늘어난 예산으로 <트랜스포머>를 훌쩍 뛰어넘는 물량공세를 펼칠 생각이었다.

다만, 영화 외적으로, <트랜스포머> 이후 2년여의 시간 동안 로봇을 위시한 비인간 캐릭터를 대하는 관객의 마인드가 바뀌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랜스포머>의 대성공 이후 할리우드에게 로봇영화는 새로운 전략종목이 됐다. 가까운 예로, 폐업상태에 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로봇을 앞세워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으로 부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제 관객에게 로봇은 더 이상 만화 속에만 존재하는 낯선 캐릭터가 아니다. 

<트랜스포머2>의 전략은 다름 아닌 더욱 인간에 가까워진 로봇이다. 형태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감정은 전편과 비교해 월등히 풍부해졌다. 로봇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요 싸우는 도중 가스를 뿜고 윤활유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이들의 싸움은 언뜻 무협장면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심지어 오토봇의 옵티머스 프라임은 목숨을 잃는다. 그 장면에서 관객의 가슴이 뭉클해질지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나. 특히 윗위키가 옵티머스 프라임을 대체아버지 삼아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해 한수 가르침을 받는 장면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뿐 아니다. 60대로 늘어난 로봇의 수에는 양적인 팽창 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적 캐릭터를 선보이기 위한 CG의 전략 또한 담겨 있는 것이다. 일례로, 노인로봇 제트파이어는 디셉티콘이 싫어 이들을 배신하고 오토봇으로 넘어온 로봇이며, 스키즈와 머드플랩은 만담콤비에 가까울 정도로 유머를 위해 투입된 로봇 캐릭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설정으로만 넘기기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실제 배우의 얼굴과 표정을 빌리지 않고도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우린 신기하게도 <트랜스포머2>를 보며 로봇의 실재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로봇의 감정에 일희일비하는 순간이 잦아졌다. 그러니까 <트랜스포머2>의 기념비적인 흥행몰이는 단순히 물량공세에만 있지 않다. 거기에는 인간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로봇의 ‘감정’이 있다. <트랜스포머2>의 국내 포스터에는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다’는 문구가 표기돼있다. 이건 이 영화의 특징을 제대로 간파했다고 보기 힘들다. <트랜스포머2>는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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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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