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 스페인이 죽음과 나누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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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로 투우장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드리드의 ‘라스 벤타스 투우장’(Plaza de Toros Ventas)으로 향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했다. 심성 착한 나는(악! 주변에서 돌 날아오는 소리가~) 투우를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동물학대에 가까운 경기를 TV로 접하면서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다만 마드리드 여기저기서 목격되는 투우 포스터를 보면서 약간의 호기심이 인 것도 사실이다.

1929년에 건설된 라스 벤타스 투우장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수준 높은 경기력을 선보이는 까닭에 스페인 투우의 메카로 통한다. 그런 명성에 걸맞게 경기장 규모도 엄청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라는데 관객석이 무려 2만 3천석이다. 한국의 청도 소싸움 대회 정도를 연상했는데 웬걸 축구 경기를 가져도 될 정도의 운동장 크기에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녁 7시에 시작된 경기는 총 여섯 게임, 즉 여섯 마리의 소를 쓰러뜨린 후 9시가 돼서야 막을 내렸다. 열댓 명의 투우사가 소 한 마리를 상대로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끝내 목숨 줄까지 끊는 광경은 과연 스펙터클했다. 하지만 두 게임, 세 게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되자 관중석을 꽉 매운 2만 3천 명의 관중이 한꺼번에 뱉어내는 하품 소리에 그만 귀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러던 차, 마침 네 번째로 등장한 투우사가 황소의 뿔에 뺨이 스쳐 피를 흘리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 경기장은 일순 긴장의 ‘도가니탕’에 푹 빠져버렸다.

나 역시도 순간적으로 핏빛 화하는 광경에 관심이 동했다. 근데 그 뿐이다. 황소 한 마리를 운동장 구석에 몰아넣고 무자비하게 린치를 가하는 모습에서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해서 목숨을 잃은 황소가 곧바로 조각조각 해체되어 인근의 스테이크 집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에는 평소 좋아하던 스테이크 생각이 저 멀리 나빌레라 사라질 정도였다.

근데 화가 피카소는 투우를 두고 언어 없이도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했단다. 예로부터 스페인 사람들이 다른 민족과 달리 유난히 죽음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일까, 스페인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들은 그렇게 예술로써 죽음과 대화를 나눈다. 투우도 그렇다. 스페인 민족에게 투우는 죽음과 대화를 나누는 일종의 의식이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다가서는 대화다. 그들은 검은 황소로 상징되는 죽음에 맞서는 상황이야 말로 인간의 정신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런 죽음에의 집착을 그들은 ‘두엔데’(Duende)라고 부른다. 스페인의 예술은 모두 이 두엔데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이들은 투우에 관한 소식을 신문의 스포츠면이 아닌 문화면에서 다룬다. ’마타도르(Matador)‘라 명명된 투우사가 사고를 당하거나 황소의 뿔에 받혀 죽기라도 하는 날엔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는 것도 다 그런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마타도르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 운명에 처하는 존재다. 투우장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건 일상이다. 연간 4만 마리에 육박하는 황소가 스테이크 행(?)에 처해질 뿐 아니라 그 숫자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투우사 역시도 영웅이 되는 대가로 종종 그에 해당하는 목숨 값을 내어놓기도 한다.

스페인 전역에 산재해 있는 투우장 앞에서 영웅을 기리는 기념비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타도르의 위상을 반영하듯 라스 벤타스 투우장에 도착하자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도 스페인 투우사(史)의 전설로 기록되어 있는 안토니오 비엔베니다와 호세 쿠베로의 철제 동상이었다. 불의의 일격에 뇌사상태에 빠진 후 목숨을 잃고 영웅의 지위를 얻은 것이다.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이런 건가. 그렇다면 3류 글쟁이의 삶을 살고 있는 나도 평생에 남을 역작을 만들다 과로로 쓰러지면 이들과 같은 지위를 얻을 수 있을까? 아악! 허튼 소리 하지 말라고? 그 시간에 지구촌 줌인 기사나 재미있게 쓰라는 무명 독자들의 항의 소리가 황소 뿔처럼 날카롭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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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사보
(2009.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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