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리콜> 9.11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조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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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얘기지만 9.11 이후 미국에서는 <화씨 911>(2004) <루스 체인지>(2006)처럼 사건의 배후에서 미국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폭로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9.11은 미국 정부에 의해 조작되었고 사람들은 조작된 사건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기억 속의 9.11은 사실이 아닌 셈인데 렌 와이즈먼 감독은 이에 착안해 <토탈 리콜>의 이야기를 끌고간다. 

브리튼 연방과 콜로니

퀘이드를 연기한 콜린 파렐은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1990)과 렌 와이즈먼의 버전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그대로 리메이크한 건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가장 큰 차이라면 필립 K.딕의 원작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1965)에 중요하게 언급되고, 폴 버호벤의 버전에서는 직접 배경으로 등장하는 화성 설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원작소설과 영화에서 퀘이드는 단조로운 지구 생활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리콜 사에 화성 여행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기억을 심는 과정에서 퀘이드는 지구와 화성 사이의 이중첩자임이 밝혀지는 것이다.

대신 렌 와이즈먼은 2041년의 지구가 2개의 대륙으로 구획된다는 설정을 새롭게 창안했다. 상류층이 살고 있는 ‘브리튼 연방’과 식민지인 ‘콜로니’로 구분한 것. 여기서 브리튼 연방은 서방세계, 그중에서도 미국을, 콜로니는 아시아를 모델로 한 혐의가 짙다. 이는 미국 주도의 세계정세 속에서 속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일부 아시아 국가의 현실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최첨단의 고층빌딩이 난무한 브리튼 연방은 시카고를 연상시키고 콜로니는 (극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하지만) 특정한 아시아 국가의 요소가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섞여있다. 

동남아의 수상도시를 연상시키는 구조에 하늘을 뒤덮을 만큼 난무하는 홍콩 스타일의 간판, 그리고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와 같은 다양한 언어까지. 특기할 만한 건 계단식으로 첩첩이 쌓아 올라간 가옥 들이다. 퀘이드는 리콜 사에 갔다가 한동안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졌던 브리튼 연방에 맞서는 반란군의 정체가 탄로 나기에 이른다. 게다가 아내 로리(케이트 베긴세일)마저 실은 퀘이드를 감시하는 브리튼 연방의 요원으로 밝혀지면서 그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에 퀘이드는 가옥 사이를 뛰고 구르며 로리의 추격을 간신히 피하는데 이 장면에서의 액션은 <본 얼티메이텀>(2009)의 그 유명한 모로코 탕헤르의 옥상 추격 장면이 오버랩 된다.  

여기서 방점은 <본 얼티메이텀>과 닮았다는 게 아니라 극 중 배경의 구조다. ‘본’ 스타일의 액션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모방일 수도 있지만 <토탈 리콜>이 9.11에 대한 우화라고 할 때 이 장면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리콜 사를 뜻하는 아랍어 간판도 등장한다!) 9.11의 주범으로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이 지목되자 미국 정부는 그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그에 대한 추격전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빈 라덴이 미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아랍의 지형을 이용, 몸을 숨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퀘이드와 로리가 옥상을 무대로 굳이 추격전을 벌이는 까닭이며 이 영화가 화성 설정을 제거한 이유이다.  

내가 사랑한 스파이

<토탈 리콜>이 9.11에 대한 영화라고 추정되는 두 번째 알리바이. <토탈 리콜>에는 정반대에 위치한 브리튼 연방과 콜로니를 잇는 운송수단 ‘폴’이 등장한다. 지구의 핵을 가로질러 두 대륙 사이를 17분 만에 이동하는 폴은 콜로니의 노동자들이 브리튼 연방으로 일을 하러 갈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경찰로봇 드로이드 제작 공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는 퀘이드 역시 폴을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 이동하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가 읽는 책은 다름 아닌 이언 플레밍의 007 소설 <나를 사랑한 스파이 The spy who loved me>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토탈 리콜>과 큰 연관은 없다. 제임스 본드가 캐나다 출신의 젊은 여성 비비안 미셸과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목이 지목하는 ‘스파이’가 이 영화와 관련한 중요한 힌트로 작용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퀘이드는 고객이 원하는 환상을 현실로 바꿔준다는 리콜 사를 방문했다가 기억을 심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브리튼 연방의 수장 코하겐(브라이언 크랜스톤)이 반란군을 소탕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웠던 기억임이 밝혀진다. 그러니까 코하겐의 심복이었던 퀘이드는 브리튼 연방과 반란군 사이에 낀 이중첩자인 셈이다.

‘이중첩자’의 설정만 놓고 보면 렌 와이즈먼의 <토탈 리콜>은  K.딕의 소설이나 폴 버호벤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구와 화성 배경이 브리튼 연방과 콜로니로 바뀌면서 퀘이드의 이중첩자 설정은 렌 와이즈먼의 버전에서 현실반영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나를 사랑한 스파이>라는 제목을 <토탈 리콜>이 상징하고자 하는 현실의 기의로 인식할 경우, 우리는 여기서 브리튼 연방과 퀘이드의 관계가 은유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미국 정부와 빈 라덴의 관계말이다.

빈 라덴이 CIA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운 사실은 유명하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퀘이드가 경찰 로봇을 만드는 설정은 우연일까?) 1980년대 초반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침공한 구(舊)소련군에 맞섰다. 이때 CIA는 소련군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게릴라 지도자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1989년 소련군 철수 뒤 빈 라덴은 고국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가 반미활동을 펼쳤다. 이는 부시 정부와 사우디 왕가의 관계를 폭로한 <화씨 911>에서 언급됐고 또한 영국의 BBC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혹자는 미국 정부가 사랑한 테러리스트(?)라는 관점에서 ‘밀월관계‘라는 비아냥거림을 서슴지 않았다. 퀘이드가 폴 안에서 들고 있던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퀘이드의 극 중 역할과 은유하는 바를 암시하는 것이다.

기억을 심다

이처럼 퀘이드는 현실에서의 빈 라덴의 역할을 <토탈 리콜> 속에서 재현한다. 물론 영화가 노골적으로 퀘이드를 빈 라덴의 대체 캐릭터로 기능시키는 건 아니다. 반란군 리더였을 때 퀘이드의 이름은 칼 하우저, 그러니까 독일계로 지칭되기 때문이다. 꼭 빈 라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함마드 알 카다피 등 미국 정부는 예로부터 적국의 인물을 포섭해 배후에서 지원활동을 펼쳤다가 역으로 공격당한 경우가 흔치 않았다. 다만 9.11처럼 미국 본토가 테러 단체의 공격 대상이었던 경우는 진주만 이후 처음이었을 정도로 전 세계에 남긴 충격은 대단했다.

그래서 <토탈 리콜>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폭발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기어코 결말에서 시연한다. 빈 라덴이 미국 뉴욕의 심장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공격한 것처럼 퀘이드는 콜로니 시민들에게 억압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폴의 정류장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폴의 정류장은 우뚝 솟은 건물일 뿐 아니라 두 개의 지지대(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튜브 형태의 폴을 감싸는 형태다. 영화는 정류장이 화염 속에 휩싸인 장면을 풀 숏으로 비추는데 그 뒤로 보이는 바다를 경계한 항구의 모습은 명백히 뉴욕을 염두에 둔 듯 그 의도가 선명하다.

그렇게 <토탈 리콜>은 잊힌 9.11의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낸다. 퀘이드가 밤마다 시달리는 악몽을 지우기 위해 리콜 사에 갔다가 또 다른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양상과 유사하다. 하지만 영화는 퀘이드가 어느 쪽 편인지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퀘이드 자신조차 그가 노동자인지 반란군인지 끝까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9.11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는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의 테러로 결론이 났지만 그에 대한 사실 여부는 여전히 미궁에 남아있다. 혹시 9.11이 빈 라덴의 소행이라는 사실은 미국 정부가 만들어낸 시나리오가 아닐까.

이런 혐의를 입증이라도 하듯 영화 초반 브리튼 연방에서 벌어진 기차 테러에 대해 퀘이드를 돕는 멜리나(제시가 비엘)는 브리튼 연방의 수장 코하겐이 벌인 자작극이라고 폭로한다. 이를 빌미 삼아 콜로니를 침략하려는 속셈이라는 거다. 이는 9.11 당시 미국과 영국 정부가 존재하지도 않는 화학무기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략했던 전략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머릿속에 심어진 9.11의 기억은 사실인가, 허위인가. <토탈 리콜>은 현실을 우회한 SF를 빌려 9.11에 대해서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movieweek
NO.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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