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한가운데 폭풍과 맞서는 한 남자’라는 태그를 보고 재난영화를 기대하며 본 제프 니콜스 감독의 <테이크 쉘터>는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폭풍의 스펙터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프 니콜스 감독은 이를 불안에 떠는 남자 주인공의 심리로 치환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테이크 쉘터>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을 담은 영화인 셈이죠.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불안의 정체와 그것이 주변으로 전이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굉장히 성실한 가장입니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그는 아름다운 아내 사만다(제시카 차스테인)와 청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늘 밝은 모습인 딸 해라와 단란하게 살고 있죠. 워낙 회사 생활에 충실해서 의료보험 평가도 좋아 어렵지 않게 딸의 청각 회복 수술 날짜도 잡아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커티스는 꿈속에서 세상이 끝날 듯한 이상한 폭풍우가 부는 광경을 목격한 후부터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커티스가 연달아 꾸는 악몽의 정체가 심상치 않아요. 기르는 개가 팔을 물지 않나, 이웃 사람들이 차 안에 있는 그를 공격하고 딸을 납치하지 않나,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기분 나쁘게 집안을 바라보며 커티스를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보면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죠. 영화 역시 인물과 대사를 최소화하며 거의 진공 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분위기를 가져가요. 그런 정서가 역으로 어떤 불안감을 자아내는 것이죠.
대체 어떤 불안감일까요? 힌트가 있습니다. 제 정신이 아닌 커티스의 어머니가 정신병 전력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엿보고, 엿듣는다는 망상 때문에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약 30~40년 전부터 시작된 증세라고 영화는 명시를 하죠. 1970년대 당시를 말하는 것일 텐데 아마도 ‘워터게이트’를 위시한 미국인들의 도청의 공포를 암시하는 부분입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1974)이 그런 미국의 당대의 분위기를 잘 묘사했었죠.
미국인들은 세대를 거쳐도 늘 그런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있죠. 이를 많은 영화들이 외부인에 대한 공포로 치환해 여러 장르로 보여줬었죠. 커티스가 꾸는 꿈도 자세히 보면 장르를 달리하는 외부의 공격에 대한 공포일 정도예요. 개들의 공격은 괴수물이, 이웃주민의 공격은 좀비물이, 정체불명인의 공격은 SF적인 상황을 연상시키는 것이죠. 커티스가 꿈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목격하는 폭풍의 정체도 그러해요. 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찾아든 외부의 공격에 다름 아니죠.
문제는 그런 공포가 단순히 커티스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물론 극 중에서 커티스는 단독으로 불안감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이죠. 다만 사만다와 가족을 비롯해 이웃 주민들은 그런 커티스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웃 주민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성을 잃은 커티스가 ‘폭풍우가 온다 Storm is coming!’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자 주변 사람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하죠. 어느 임산부는 나온 배를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리려고 합니다.
결국 커티스가 앓는 불안감은 그만의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그 불안감의 정체는 단순히 외부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죠. 미국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곧 외부에 대한 것이면서 그걸 자각한 내부인의 공포가 주변까지 물들게 하는 것이죠. 폭풍은 이제 그쳤다며 커티스를 돌보던 아내 사만다가 거대한 폭풍을 목격하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죠. 2011년 칸영화제에서 무려 3관왕(비평가주간대상, 국제비평가협회상, 극작가협회상)을 차지했다고 하는데, 평이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 미국의 현재를 관통하는 의미를 담아낸 <테이크 쉘터>는 과연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안녕하세요^^ 방금 막 보고 왔습니다. 저에게는 굉장한 여운이 남아요. 볼때는 커티스한테 너무 몰입해서 마지막 폭풍우에서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들 정도였어요ㅎㅎ 그런데 엔딩크레딧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이 결말이 대단한것 같아요.. 앞에서 쌓아온 생각을 뒤집어 버릴 수도 있고, 또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고도 생각되기도 하구요.. 제가 글을 잘 못쓰지만 쓰다보니 이 영화는 해석의 방향이 다양한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영 끝나기 전에 한번 더 봐야 겠어요^^
와~ 이 영화 보셨군요 ^^ 예, 저도 마지막 결말이 정말 강렬했어요. 남편의 강박 증세를 믿지 못하던 부인마저 그 상황과 맞닥뜨리니 말이죠. 와우님께서는 [테이크 쉘터]를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기회 되시면 저에게도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