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영화의 전설, 하야시 가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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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는 시네필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주로 해외에서 직접 공수해온 비디오나 복제 비디오를 통해 이뤄진 당시 시네마테크 활동에서 가장 인기를 모았던 작품은 주로 일본 감독의 것이었다. 그중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한국 시네필들에게 전설적인 지위를 누린 감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하야시 가이조(林海象)다. 하야시 가이조 감독은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1986) 이후 줄곧 탐정영화 외길 인생을 걸어온 감독으로, 국내에는 이 작품을 비롯하여 <20세기 소년 독본>(1989) 등의 작품이 시네마테크 영화제를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세계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형태의 영화전은 열린 적이 없다.

지금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는 ‘하야시 가이조와 탐정영화전’이 한창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을 포함한 그의 대표작 7편과 하야시 가이조가 영향 받은 스즈키 세이준의 <탐정사무소 2-3>(1963), 이치가와 곤의 <이누가미 일족>(1976) 등 6편의 작품, 그리고 지난 해 개봉해 큰 인기를 모은 박대민 감독의 탐정영화 <그림자 살인>(2009)까지, 총 14편의 영화가 절찬리 상영 중이다. 이에 맞춰 하야시 가이조 감독이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관객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갖았다.

하야시 가이조 감독과의 인터뷰는 4월 11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시간 30분 동안 이뤄졌다. 그는 한국에 자신의 팬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된 듯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했으며 시종 코믹한 화술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그가 20년 넘게 영화를 만들어온 과정은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지금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적은 예산으로 영화 만들기라든지, 장르를 대하는 태도 등 하나의 전범이 될 만한 사례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인터뷰라 하겠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한국에서 직접 관객과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반응을 살펴보니 어떤가?
하야시 가이조(이하 ‘가이조’) 내가 20대, 30대 시절 열심히 영화를 만들던 당시는 한국과 일본이 영화적인 교류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 내 영화의 팬이 있다는 걸 상상도 못했다. 한국에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한 적은 있었지만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내가 유명했던 것은 10년도 더 전이었고 지금보다 과거에 더 왕성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나름 오래된 감독에 속한다. 내 영화를 재밌게 봐줬다는 사람을 만나서 놀랐다. 특히 <기담>(2007)의 정범식 감독과 <그림자 살인>의 박대민 감독을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이들이 내 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하니 그 기쁨을 이룰 말할 수가 없다.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 이후 25년간 탐정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실제 사립탐정이기도 하다.
가이조 이유는 딱 하나다. 탐정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에 탐정영화를 만들면서 실제 탐정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본탐정협회에 가서 정보를 얻기도 하면서 차라리 내가 직접 탐정 공부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쿄의 나카노에 있었던 일본탐정협회의 탐정학교에 입학하여 일본 탐정의 시조 중 한 사람인 고다마 미치나오 선생 아래서 탐정학을 공부하고 탐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탐정을 하다가 영화감독이 된 것이 아니라 영화감독에서 탐정이 된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웃음)

25년 동안 탐정영화만 만들어온 비결이 바로!
가이조 영화에 많은 도움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탐정이라는 게 실제로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탐정학교에서 배운 건 많았지만 영화에서 활용한 건 별로 없다. (웃음) 여러 가지 사건 의뢰를 받기도 했다. 혼자 한 것은 아니고 동료들과 함께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게 많았지만 문제는 탐정에게 비밀 엄수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말할 수가 없다보니 더더욱 영화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웃음)


전설적인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탐정영화이지만 전형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1986년에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흑백 영상을 띄고 있고 게다가 무성영화의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대사는 대부분 자막으로 처리됐다. 게다가 극중 탐정이 의뢰받은 사건은 다름 아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찾아달라는 것. 그래서일까,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작품은 허구이되 시적인(poetic)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선과 악이 아닌 흑과 백, 빛과 어둠, 현재와 과거가 대립하는 구도는 선명한 현실보다는 몽환적인 꿈과 환상의 세계에 더욱 가깝다. 1970년대 말부터 침체기를 겪었던 일본영화계는 1980년대 대거 등장한 소마이 신지(<세일러복과 기관총>(1981)), 이시이 소고(<역분사 가족>(1984)), 모리타 요시미츠(<소레카라>(1985)), 최양일(<친구여, 조용히 잠들라>(1985)), 기타노 다케시(<그 남자 흉폭하다>(1989)) 등 젊은 감독들의 독특한 개성으로 뉴웨이브 붐이 일었는데 하야시 가이조의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그중 대표격인 작품이었다. 

특별히 탐정물에 매력을 느낀 계기가 있었나?
가이조 어려서부터 탐정소설이나 만화를 좋아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세기 초반에 에도가와 람포가 창조한 아케치 고고로 사립탐정과 그가 조직한 소년들의 탐정 그룹인 <소년 탐정단> 등이 인기가 있어서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읽었고 나 역시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럼 처음부터 탐정물을 의식하고 영화를 만든 건가?
가이조 영화학교를 다니거나 영화계에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영화를 만든다면 탐정물을 소재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탐정이라는 것 자체가 영화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탐정물은 뭔가를 찾는 과정인데 주인공이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건 영화의 이야기상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를 영화로 만든다면 과연 무엇을 찾는 게 좋을까, 단순하게 사람을 찾는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은 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찾는 탐정이 나오면 재미겠다 싶었다. 그 자체가 마지막 장면이 되기도 하고 찾는 것이기도 해서 구상하게 된 게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이었다.

데뷔작 이전에는 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어떻게 만들 수 있었나?
가이조 이 작품은 내가 27살 때 만들었다. 19살에 도쿄로 상경해서 30개 정도의 직업을 전전했다. 그때는 영화 만들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26살 때 동생이 죽었다. 동생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내 최초의 영화이면서 마지막 작품이란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다. 다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는 전혀 몰랐다. 각계에 있는 프로들에게 상담 요청을 했고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었나?
가이조 처음에 500만 엔 정도 예산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 이를 프로듀서에게 물어봤더니 최소 5000만 엔 이상은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하더라. 혹시 그런 돈을 모아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프로듀서 왈, 무명의 감독에게 그런 돈을 모아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내가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접 제작까지 하게 됐다.

제작비를 500만 엔으로 책정한 이유는 뭔가? 가진 게 그것뿐이라서?
가이조 이 영화를 만들고 흥행이 되지 않으면 신이 나에게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계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일해서 갚을 수 있는 정도. 한 5년 간 열심히 일하면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서 500만 엔을 생각했다. (웃음)

그래서 생각한 것인 흑백영화와 무성영화였나?
가이조 평생에 한 편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많은 제작비가 없었다. 그렇다고 싸구려 영화로 만들면 주목받을 수 없기 때문에 기왕 만들 거면, 1980년대 당시의 영화가 대부분 컬러였고, 그렇다면 나는 흑백영화로 만들자. 더군다나 모두 유성영화였기 때문에 무성영화로 만들어보자 했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흑백이라는 것은 모든 색깔, 그리고 무성이라는 것은 모든 소리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있었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또 하나의 영화관이 있어서 그들 나름의 소리를 듣고 색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촉진시키고 싶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덧붙인다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가 성공해 다음 영화를 만든다면, 데뷔작이 영화의 최초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영화는 흑백이면서 소리가 나는 유성영화를 염두에 뒀었다.

영화 만들기는 그렇다 치고, 흥행은 하늘만이 아는 사실 아닌가? (웃음)
가이조 영화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도에이’라는 일본의 가장 큰 제작사를 찾아갔다. 필름을 들고 본사의 안내 데스크로 가 “이 영화를 개봉하고 싶다. 방법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봤더니 사고처리반 같은 사람이 나와서 배고파서 그러는 거냐며 카레라이스를 사주면서 돌아가라고 하더라. (웃음)

어떤 다른 방법을 강구했나?
가이조 그렇다면 시사회를 많이 하자,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는 결심을 하고 시사회를 준비했다. 여러 군데 편지를 보내 초청을 했는데 아무래도 무명 감독이다 보니 모아지지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유명한 사람이 영화를 보고 좋게 말해주는 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평론을 주로 하던 도널드 리치를 찾아갔다.

이번에도 무작정 찾아갔다가 도에이에서처럼 미친 사람 취급 받으며 어떡하려고? (웃음)
가이조 도널드 리치 평론가에 대해 충분한 조사를 했다. 조사를 해보니 남자를 좋아하고 (웃음) 케이크를 좋아하더라. 꽃과 케이크를 사서 영화를 시사하는 동안 도널드 리치의 옆에 꼭 붙어 앉아있었다. (좌중 폭소) 그게 작용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도널드 리치가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나서 좋은 평을 많이 해줬기 때문에 결국 개봉을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들고 또 어렵게 개봉하는 과정을 보니 500만 엔 가지고는 턱도 없이 부족했을 것 같다.
가이조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을 찾아보았더니 시부야에 딱 한 개관 밖에는 없었다. 게다가 극장 측에서는 흑백영화에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보러올 리가 없다고 반대를 많이 했다. 한 달 동안 상영 예정이었는데 관객이 안 들어오면 손실분을 보상해주는 조건으로 상영을 하게 됐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빚이 800만 엔까지 늘어있어서 낮밤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상영 즈음에는 10년 동안 일해야 갚을 수 있는 액수가 됐다. (웃음)

결국 개봉 성적은 어땠니?
가이조 개봉 첫 날 스탭들과 함께 신사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극장에 갔더니 매표소 앞이 만원이었다. 일주일 만에 천만 엔을 돌려받을 수 있었고 작은 영화였지만 크게 흥행을 한 덕에 25년 동안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실패했다면 10년 동안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액수였기 때문에 아마 야쿠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웃음)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일반적인 탐정영화와는 형식이 다르다. 과거에 대한 비중이 높고, 과거에 대한 표현이 주로 꿈 혹은 환상으로 표현이 된다. 한마디로 시적이다.
가이조 아무래도 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하다 보면 꿈이라는 부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많이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꿈이나 환상의 요소를 영화 속에 남겨두고 싶다.

탐정이라는 캐릭터를 꿈이나 환상의 존재로 보고 있는 건가?
가이조 탐정은 굉장히 로맨틱한 존재다. 현실과 환상 그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탐정은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할 때 멋있는 존재가 되지 현실에서는 너무 생생해서 날 것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그래서 별로 멋있지가 않다.

탐정은 왜 영화나 소설에서만 유독 멋있는 존재로 부각되는 걸까?
가이조 탐정이라는 건 인간 그 자체다. 이것이 나의 탐정에 대한 정의다. 탐정은 무엇인가를 찾는 인물을 말한다. 그들이 찾아내는 것은 많은 이들의 ‘인생’ 그 자체다. 살아있는 한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 어떤 이는 자신의 미래를, 어떤 이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어떤 이는 행복이라는 환영을, 어떤 이는 영화라는 꿈을 좇는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미래를 찾는 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가,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도 그렇지만 이후 영화에서도 과거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느껴진다.
가이조 탐정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내가 영화감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과거를 다루는 일, 기억을 다루는 작업이지 미래를 다루지는 않는다. 지난 것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에 영화를 하다 보니 과거에 대한 부분을 많이 느끼게 된다. 나는 옛날 사진 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 예컨대 2차 대전을 전후한 사진에 특히 눈이 가는데 그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걸 유일하게 재생할 수 있는 게 영화다.


하야시 가이조 최고 흥행작 ‘하마 마이크’ 시리즈

사립탐정 ‘하마 마이크’ 시리즈는 하야시 가이조 영화중에 가장 크게 흥행을 한 작품이다. ‘니치게키’라는 낡은 극장 2층에 탐정사무소를 가지고 있는 하마 마이크(나가세 마사토시)는 미키 스필레인 소설의 대표적인 탐정 캐릭터 ‘마이크 해머’와 극중 배경인 ‘요코하마’를 혼합한 이름이다. <내 인생 최악의 시간>(1993),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1994), <덫>(1995) 모두 3편으로 이뤄진 시리즈는 하야시 가이조 영화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일본 탐정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후 다른 감독들에 의해 TV 시리즈가, 아오야마 신지(<유레카><새드 배케이션>)가 외전격인 <이름 없는 숲>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 이 삼부작은 각각 개별적인 사연을 다루지만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야시 가이조는 이를 통해 인간으로써나, 탐정으로써 풋내기에 불과하던 하마 마이크가 점점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미키 스필레인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정인 마이크 해머가 굉장히 마초적인 것에 반해 하마 마이크는 여성적이고 섬세한데다가 굉장히 패셔너블하다.       
가이조 원래는 필립 말로우와 같은 탐정을 만들고 싶었다. 근데 나이가 많은 탐정이다 보니 그보다 젊은 탐정, 예를 들면 탐정이 되기 직전 혹은 직후 나이대의 청춘시대를 그리자는 생각에 구상하게 됐다. 필립 말로우는 일본식 발음이라든가 이름으로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반면 하마 마이크는 실제 존재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왠지 있을 법한 느낌의 이름이기 때문에 차용을 했다. 캐릭터와 상관없이 튀는 탐정이 된 것은, 현실에서는 그러면 안 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은 보이는 존재다. 특히 하마 마이크는 자신이 탐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할 정도로 미숙한 존재다. 그런 점을 반영하다보니 튀는 존재가 됐다. 나중에는 화려한 재킷에, 선글라스를 끼고 눈에 띄는 자동차까지 타고 다닌다.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한 건 ‘하마’라는 이름 때문이었나?
가이조 요코하마가 배경으로 설정됐기 때문에 하마 마이크로 했다.

특별히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나?
가이조 극중 니치게키 극장과 그 주변은 실재하는 공간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요코하마에 있었다. 극장과 풍경이 오픈 세트처럼 돼있었고 실제로 암흑가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 영화적이었다. 처음부터 요코하마에서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찾는 장소가 요코하마에 있어서 배경이 됐다. 

탐정사무소가 극장의 2층에 위치한 것도 이 시리즈만의 특징이다. 의뢰인이 탐정사무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화표를 끊어야 한다고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이조 탐정이 영화에 가까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관 안에 탐정사무소를 두고 싶었다. 실제 존재하는 극장이지만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이 거의 없어서 탐정사무소와 영화관이 공존하는 형태로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의뢰인이 영화표를 사는 형태로 하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설정했다.

이처럼 여러 모에서 튀는 하마 마이크의 탐정 계보는 마이크 해머보다 스즈키 세이준의 <탐정 사무소 2-3>의 주인공 에이스 조(시시도 조)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에이스 조가 하마 마이크의 스승으로 삼부작에 모두 등장하기도 하고 1960년대 이후 스즈키 세이준의 미술감독이었던 기무라 타케오와 함께 작업을 했다. 
가이조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시시도 조가 나오는 영화사 닛카츠의 무국적 액션 시리즈를 의식해서 만든 부분이다. 시시도 조는 일본 액션물의 상징 같은 배우다. 맡았던 역할이 주로 악역이었는데 지저분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멋진 존재여서 그런 부분을 살리고 싶었다. 시시도 조가 출연했던 작품 중에 거의 유일하게 탐정으로 나오는 게 <탐정사무소 2-3>이다. 그 설정을 살려서 그가 나이를 먹으면 하마 마이크의 스승이 되어있는 것으로 했다.

시시도 조는 한국에서도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배우다. 특히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것처럼 튀어나온 양 볼이 트레이드마크 아닌가.
가이조 일본에서 시시도 조는 하나의 장르라고 인식될 정도다. 뭘 해도 시시도 조라고 생각한다. (웃음) 나 역시 그에 대해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대단한 팬이기 때문에 같이 하는 게 즐겁다. 하마 마이크 시리즈 뿐 아니라 탐정사무소5 시리즈에도 출연한다. 

츠카모토 신야(<철남><쌍생아>)도 <내 인생 최악의 시간>과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에 연이어 출연했다. 원래 친분이 있었나?
가이조 신야와는 굉장히 친하다. 그때부터 이미 친한 사이였다. 츠카모토 신야가 고등학교 때 내가 만든 프로모션 비디오를 보고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런 관계다. (웃음)

마치 에이스 조와 하마 마이크 관계처럼!
가이조 그렇지 않다. 지금은 신야가 나보다 훨씬 잘 나가기 때문에. (웃음) 하마 마이크 시리즈 만들 때만 해도 감독의 재능보다는 배우의 재능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감독으로도 훌륭하게 잘 하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도 하마 마이크 시리즈를 만들 때 연출부에 있었다. 그때 젊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나중에 성장해서 나간 형태가 됐다. 

하마 마이크 시리즈도 역시 일반적인 탐정물과 달리 성장영화의 형태를 띤다.
가이조 그렇다. 하마 마이크는 의뢰를 받지 않고 사건을 수사하는데 이는 그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하는 면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하마 마이크 자신의 인생일 텐데 삼부작으로 끝을 냈지만 할 얘기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덫> 이후에 18년이 지났는데 그만큼 나이 먹은 하마 마이크가 지금 다시 등장하면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이조 대단히 만들고 싶다. 실제로 시간이 지난 후에 TV판을 만들어 하마 마이크를 그릴 예정이었는데 그게 좀 여러 가지 상황이 안 좋아져서 손을 떼게 됐다. 지금 다시 만들게 된다면 극장이 없어져버리는 등 많은 게 변해버린 이야기로 구성하고 싶다. 또 한편으론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한국에도 하마 마이크 같은 인물이 있을 수 있으니까 다른 나라에서 같은 설정을 가지고 만들고 싶기도 하다. 

오! 정말 재밌겠다. 한국에는 탐정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탐정영화로 그리는 한국사회가 정말로 기대가 된다.
가이조 혹시 영화로 안 된다면 소설로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소설을 쓴 적은 없지만 앞으로 쓰고 싶긴 하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건 1년에 한 편 이상 만들기 힘든 부분이 있고 아이디어는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영화 만드는 중에라도 소설로 남겨두면 좋을 것 같다.


100인의 탐정을 다룬 ‘탐정사무소5’ 시리즈

‘탐정사무소5’는 일본에서 침체된 탐정영화의 붐을 일으키기 위해 하야시 가이조 감독이 기획한 시리즈다. 탐정사무소5에 근무하는 탐정 500부터 599까지 100명의 사연을 모두 100편에 걸쳐 소개하겠다며 야심차게 기획한 시리즈다. 지금까지 모두 극장판 3편과 인터넷 단편 51편이 제작됐다. 매 작품 주인공 탐정이 바뀌며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우정과 사랑과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이 시리즈에서도 역시 하야시 가이조 감독 특유의 ‘과거’에 대한 집착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전작과 구별된다면 그 형태가 인용으로 드러난다는 것인데 첫 번째 극장판 <카인과 아벨>(2007)에서는 <미션 임파서블>이, <코드>(2009)에서는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에 대한 오마주가 두드러진다. 다만 세 번째 극장판 <코드>가 막대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면서 아쉽게도 시리즈가 중단된 상태다. 다만 현재 일본에서 TV나 만화 등을 통해 탐정물에 대한 인기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중이라 시리즈는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되살릴 예정이라고 하야시 가이조 감독은 전한다.

탐정사무소5 시리즈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됐나?
가이조 탐정학교를 졸업하고 받은 탐정번호가 551번이었다. 그때 많은 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범죄사무소 같은 것을 보면 민사 사건에 따라서, 형사 사건에 따라서 나오는 변호사가 다른 것처럼 탐정도 사건마다 다르면 어떨까 했다. 그래서 종합 탐정단을 떠올리게 됐고 100명의 탐정이 나오는 탐정사무소5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

동서를 막론하고 탐정의 이미지는 중절모와 양복, 그리고 입에 문 담배로 상징이 되는데 가이조 영화에서는 여기에 더해 유독 안경을 착용한다.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의 탐정도 그렇고 하마 마이크도 선글라스를 즐겨 쓰며 탐정사무소5의 탐정들도 하나같이 안경을 쓰고 있다.
가이조 아무래도 내가 안경을 쓰다보니까 그런 게 반영됐다. 그리고 실제로 탐정들은 안경을 많이 쓴다. 선글라스의 경우, 너무 사람들 눈에 띄니까 잘 안 쓰지만 보통의 안경은 변장용으로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 인상이 확 변한다.

실제 탐정학교에서 배운 걸 영화에서 활용한 유일한 요소인가? (웃음)
가이조 학교에서 실제로 안경이 제일 간단한 변장 방법이라고 배웠다. (웃음) 탐정이라는 직업은 눈에 띄지 않는 게 가장 좋다. 도쿄 같은 곳에서 샐러리맨의 복장을 하고 있으면 가장 묻혀서 활동하기 좋다. 그런 의미에서 하마 마이크 같이 화려한 복장에, 컨버터블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 누구나 알아보기 때문에 사건을 해결하기 힘들다. 현실에 그런 탐정은 없을 거다. (웃음)

이 시리즈는 하마 마이크 시리즈처럼 완결하지 못했다. 돈이 된다면 계속 이어갈 생각인가?
가이조 아무래도 한 번 해체한 팀은 다시 모이기 어렵지 않을까. (웃음) 만약 제작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힘들 것 같다. 50편 이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대신 앞으로 탐정사무소5의 탐정들이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형태는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탐정사무소5의 탐정이 파견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한국의 영화 투자자들이 탐정영화에 제작비를 댈 것인지는 의문이다. (웃음)
가이조 내 생각엔 한국에서도 탐정영화가 앞으로 많이 나올 것 같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가이조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즐겨 보는데 극중에 나오는 형사들이 너무 무능하다. 무능해도 어쩜 저렇게까지 무능할까 싶을 정도로 무능해서 그렇다면 탐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봉준호 감독이 계속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는 형사가 무능하게 나올 것이고 일본에서는 한국 형사들을 무능하게 볼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누가 좀 말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한국에서는 딱히 탐정영화라는 장르가 구체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의 어떤 지점에서 탐정영화의 가능성을 봤나?
가이조 내가 존경하고 친하게 지내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의 경우, 유괴 당한 자식을 찾는 어머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탐정영화 같은 요소가 있다. 일본의 탐정영화들은 찾던 걸 못 찾게 되면 그냥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밀양>은 정말 잃어버린 존재를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더 깊은 의미를 지닌 탐정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하마 마이크 시리즈의 경우 세 편 모두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경향이 일본의 탐정물에서 두드러진 이유는 왜인가?
가이조 탐정영화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볼 수 있다. 긴다이치 고스케(‘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같은 추리물의 경우, 사건이 마지막에 잘 정리가 되는 스타일이다. 주인공이 그렇게 잘 안다면 중간에 살인을 막으면 될 텐데 꼭 사람이 다 죽은 마지막에야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웃음) 미국의 하드보일드에는 머리로 추리하기보다 실제 몸으로 부딪히고 피부로 느껴가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 주로 등장한다. 영화적으로 볼 때 추리하는 탐정보다 몸으로 부딪히는 탐정물이 더 어울리는 부분이 많다. 그 결과, 해결보다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다보니 사건이 잘 해결 안 되는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의 추리소설이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일본에서 탐정물이 침체라고 하니 의외다.
가이조 요즘 일본에서는 탐정영화를 잘 안 만든다. 얼마 전에 츠카모토 신야가 <악몽탐정>(2006)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외에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내가 탐정영화 쪽에 있어서인가, 누가 잘 안 들어오는 것 같다. (웃음) 사실 신야가 <악몽탐정> 만들 때도 속으로 ‘왜 탐정영화를 만들지’ 그랬다. 만들 거면 미리 연락이나 주고 만들지 말이야. (웃음) 농담이고. 아무튼 감독이 탐정영화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가이조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를 500만 엔으로 책정해서 만들고 난 이후 지금까지 15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단편까지 포함하면 정말 많은 수의 영화를 찍었다. 그중에는 7억 엔 수준의 큰 영화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전부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를 제일 잘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편으론 내 자신의 감독으로써의 능력에 의심이 들기도 한다. (웃음)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돈을 30억 엔 정도 끌어 쓴 셈이 되는데 25년 동안 영화작업을 해오면서 이제야 큰돈의 영화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내년부터는 50만 엔 정도의 작은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너무 겸손하게 얘기한다. (웃음)
가이조 25년 감독 생활을 하면서 영화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 하마 마이크 시리즈 완결편인 <덫>의 마지막 장면에 ‘라스트 필름’이라는 말을 넣었는데 그걸 끝으로 영화를 그만 두려고 했다. 물론 그 뒤로도 영화를 계속 하게 됐지만 <코드>가 흥행에 실패하고 정말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히 마련해준 내 영화전을 통해 한국의 관객과 감독을 만나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니 새로운 다짐이 생긴다. 다시 또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 고맙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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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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