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Break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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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 감독은 단편(<슈가힐><굿로맨스><마초사냥꾼>) 시절부터 장편 데뷔작 <후회하지 않아>(2006)까지 소수자의 당연한 권리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굴절되는지를 일관되게 다뤄왔다. 다만 감독이 겨냥하는 비판 대상이 추상적인 형태의 남성 지배 권력이었다면 두 번째 장편 <탈주>에서는 ‘군대’라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했다는 점에서 더한 결기가 느껴진다.

영화는 에두르는 것 없이 다급하게 쫓기는 군인의 모습으로 포문을 연다. 재훈(이영훈)은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이유로, 민재(진이한)는 군 간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모멸감을 이기지 못해 함께 탈영을 감행한다. 이들을 막겠다며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고 여기에 재훈과 알고 지내던 누나 소영(소유진)까지 합류하면서 이들의 탈주는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한국에서 군대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건 여전히 금기에 가깝다. 특히 탈영처럼 민감한 소재는 주로 코미디 영화에서나 에피소드로 다뤄졌지 <탈주>처럼 주제로 삼은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내일을 향해 쏴라>(1969)와 같은 친숙한 할리우드 탈주극의 어법(2남 1녀의 구도, 선으로 그려지는 범죄자와 악으로 묘사되는 국가 권력, 로드무비의 형태 등)을 빌린 이유가 크다. 다르다면, 주인공의 일탈(?)을 옹호하는 낭만적인 정서와 공권력을 향한 조롱이 전무하다는 점인데 여기에 바로 <탈주>의 진가가 있다.

<탈주>는 군대라는 초국가적 집단에 의해 한낱 소모품으로 관리되고 버려지는 개인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춘다. 재훈과 민재의 탈영은 군의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전복하려고, 또는 범죄를 도모하기 위한 이유와는 무관하다. 국가를 내세워 개인의 감정과 사연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군의 처사에 못 이겨 최후의 수단으로 탈영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군대는 한국 사회의 개인에 대한 폭력성과 국가라는 이름의 폐쇄성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기호다. 이런 환경에서 사생활을 보호하고 방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재훈과 민재, 소영은 군과 경찰의 미행 속에 미디어에 노출되고 심지어 사살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서 대개 밤에 이동하거나 숨기 편한 숲속을 탈주 이동로로 삼는다. 이처럼 극중에서나 촬영 현장에서 잦은 이동이 필수적인 <탈주>는 흥미롭게도 기동성 있는 카메라 대신 육중한 ‘바이퍼’를 선택했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바이퍼의 사용은 꽤나 상징적으로 비친다. 데이빗 핀처가 연출한 <조디악>(2007)의 카메라로 유명한 바이퍼는 어둠의 디테일에 뛰어나고, 특히 밀폐의 느낌을 주는 공간 구현에 위력을 발휘한다. 이송희일 감독이 의도한 극중 인물의 불안한 심리와 공황 상태를 표현하는데 (촬영 현장에서의 고생과 상관없이) 이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탈주>는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결국에는 한국이라는 거대한 폐쇄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더 나아가 한국 구성원들의 비극적 운명에 관한 영화다. 탈영을 다루지만 과정보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우리 사회의 풍경에 주목한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극중 재훈은 탈영 후 입버릇처럼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아”라고 말한다. 과연 그들은 이 지긋지긋한 한국을 탈영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도 그렇고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한 대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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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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