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이송희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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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은 영화감독이고 굳이 분류하자면 독립영화 감독이며 한편으론 인디포럼 의장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활동이 모두 겹치면서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바쁜 나날을 보냈다. 신작 <탈주>의 후반작업과 <불안>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2009)의 개봉, 그리고 9월 12일 열렸던 인디포럼 주최의 ‘그렇다면 십시일반-인디포럼 채무변제 파티’(이하 ‘채무변제 파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것.

그런 이유 때문에 이송희일 감독이 만나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아>(2006)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탈주>가 궁금했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면서 정식 개봉에까지 이른 <황금시대>에 대해 묻고 싶었으며, 예사롭지 않은 행사명이 눈길을 끌었던 채무변제 파티의 후일담도 듣고 싶었다. 

이송희일 감독과의 인터뷰는 원래 채무변제 파티 이틀 후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주>의 후반 작업 관계로 예정일보다 미뤄진 9월 17일 혜화동에 위치한 인디포럼 사무실에서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요즘 많이 바쁠 것 같다.
이송희일(이하 ‘이’) 안 바쁘다. (웃음) <탈주> 후반작업 하는 거 어쩌다 한 번 나가서 체크만 하면 되는 거고. 대신 마음이 좀 바쁘다. <탈주> 이후에 생각하고 있는 작품 때문에.

채무변제 파티는 잘 치렀나?
경황이 없어서 얼마나 오셨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판매한 티켓 값만 천4백 정도. 티켓 한 장당 만원인데 그 정도면 굉장히 많이 온 거다. 뻔뻔하기도 하고 제목을 참 잘 지은 거 같아. ‘걔네 마음 다 알아. 토요일 밤에 하는데 거기 가서 술 마셔야겠다.’ (웃음) 근데 너무 미안했다. 우린 넓은 데 잡는다고 잡았는데 그 이상이 오셔서. 


독립영화의 자생성을 기른다.

채무변제 파티는 말 그대로 빚 청산(?)을 위해 기획된 행사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난한 영화제이기도 한 인디포럼의 이번 행사명 중 ‘채무변제’는 단순히 돈 갚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지원금에 상당부분을 의존했던 인디포럼은 이명박 정권 들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강한섭 체재로 바뀌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독립 장편영화에 주어졌던 마케팅 비용 지원이 중단된 것은 물론 아예 지원에서 독립영화라는 이름이 쏙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 하지만 이송희일 인디포럼 의장은 이를 정권 교체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대신 너무 지원금에 길들여진 까닭에 자생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치열한 사유를 우선했다. 이번 채무변제 파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래서다. 지원금에 종속됐던 저간의 상황을 청산하고 자생성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일종의 출발점이자 선언에 해당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용산이나 재개발 지역에만 철거가 있는 게 아니라 영화계, 특히 독립영화에도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인데 용산도 그렇고 개발을 결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이게 이명박 정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때도 이런 문제로 치열하게 싸웠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경계한다. 그래서 이명박, 한나라당 탓만 하는 거는 한편으론 가라앉히고 봐야한다. 이건 이명박 정권이든 기존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든 국가권력과의 어떤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하에서 나와야 된다. 단지 길거리에 나앉았다고 그러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채무변제 파티가 갖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진작 그렇게 했어야 됐다. 전주시민영상제라고 전주독립영화협회에서 매년 주최하는 영화제인데 거기서 세미나 요청 연락을 받았다. 세미나 주제가 ‘독립영화의 자생성’이다. 프로그래머가 말하길, 채무변제 파티에서 영감을 얻어 독립영화의 자생성에 대해 세미나를 해 달라 하더라. 정말 채무변제 파티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근 5년 동안 이렇게 호응을 얻었던 영화제 관련 모임이 있었나, 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나 답답한 부분을 찔러준 게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우리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이 시대가 만들어 낸 케이스 같다.

그럼 이번 채무변제 파티의 주최는 인디포럼이지만 기획은 MB정권이 되는 건가? (웃음) 
이 정부에서는 부인을 하지만 암암리에 표적 감사가 있지 않았나. 그렇게 영화계를 뒤흔들 때 든 생각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받은 지원들을 정리해야겠다. 국가권력을 민영화하면서 지난 10년 동안의 정권이 도움은 주되 간섭은 하지 않는 형태로 지원을 지속했었다. 하지만 정권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이렇게 영화 관련 단체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인권단체, 영화제 모두 국가 지원에 종속되다보니 한 번 이렇게 뒤흔들면 난리가 난다. 영화제가 없어지네, 지원이 없어 죽네 사네 이런 걸 보니 반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떤 점을 반성해야 할까?
두 가지 정도에서 반성을 해야 되는데, 하나는 국가 예산의 성격이 묻지마 지원들이라 매년 지원금을 위해서 사업을 계획하고 거기에 맞게 행사를 치루니 우리가 종속되는 성격이었다. 앞으로 향후 발생하는 지원의 성격들이, 내가 생각하는 건 특이한 개입인 건데 지원금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간다든가, 관리를 하는 방식으로 자생성을 갖출 수 있게 계획을 짤 생각이다. 두 번째는 국가권력, 정권 색깔에 따라서 눈치 볼 필요가 없지 않느냐. 자생성을 우선 시 해야 되는데 우리가 그동안 게을렀다. 이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채무변제 파티는 신호탄인가?
사실 막막하다. 시민단체나 인권단체, 영화단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도 지원금 때문인데 그걸 버리고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진 채 자생성을 추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기업들이 국제영화제 급이면 모를까 어디 인권영화제나 서울노동영화제, 인디포럼에 지원을 하겠나. 그렇다면 다른 방법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가지고 창안하고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인디포럼에서 매달 여는 ‘월례비행’도 그런 일환에서 나왔다. 다만 관객들을 특화하거나 게토화하면 안 된다. 우리가 월례비행을 할 때 상영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와 성격이 닮았다싶으면 관련한 시민단체나 학생들을 초청해 무료로 보여드린다. 그러면 많이들 오신다. 이분들이 나중에 독립영화의 잠재적인 관객들로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게 된다. 그리고 오신 분들에게는 적극적으로 CMS(컴퓨터, 전화 등 통신라인을 이용한 후원)를 권유했고 7~8개월 동안 추진하면서 많이 모았다. 1~2년 더 하면 큰 도움이 되겠더라. 그런 방식 뿐 아니라 채무변제 파티처럼, 물론 계속 손을 내밀 수는 없기 때문에 서로 밑지지 않는,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놀 수 있는 아이템들을 자꾸 개발하려 한다.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 대신 바쁘다. 왜냐면, 안에서 스트레스가 생기는 게, 다른 영화제 같은 경우는 자원봉사 개념과 활동의 개념이 나뉘는데 인디포럼은 이게 섞여있다. 대부분 작가들이다보니 자기 일이 있지 않나. 그래서 활동이 많아지면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다. 균형추를 잘 잡아야겠더라. 오히려 돈이 생기면 비축만 할 게 아니라 사무국을 강화해서 이 사람들이 조금 더 움직일 수 있게끔 한다든지 그런 방법을 생각중이다. 우리 상황도 그렇고 남한에 존재하는 인권단체나 시민단체 모두 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에 여러 모로 고민을 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채무변제 파티에서 생산적인 논의가 있었나?
굉장히 많은 분들이 오셨다. 충무로에서도 오셨고 영화제 관계자들도 오셨고. 그런 걸 보면 미약하나마 다들 십시일반해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그 힘을 얻고 가는 거다. 국가권력과 싸워서 이길 수 있나, 못 이기지. 버티거나 그걸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작은 연대들이지만 힘 약한 놈들끼리 어깨 걸고 해야 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략으로 가야된다. 직접적으로 대중들,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생각하려고.

영진위에도 초청장을 보냈다면서. 왔나?
오겠어요? (웃음) 채무변제 파티 당일까지도 ‘올지 몰라’ 했다. 이번에 영진위 수장이 된 조희문 위원장의 경우, 엉뚱하면서도 쾌활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혹시 올까 했는데 안 오셨다.

강한섭 위원장에서 조희문 위원장으로 영진위 수장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 독립영화 진영의 입장은 어떤가?
기존의 어떤 흐름들, 반(反)독립영화의 흐름이 더 강화되겠지. 강한섭 위원장 때는 지원에서 아예 독립영화라는 이름을 싹 빼면서 단편영화 지원으로 하고, 독립영화 장편이 만들어지면서 생겼던 마케팅 지원도 아예 없애버리고, 저예산 인디영화, 독립영화 활성화를 위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위해 마련했던 잡지 <넥스트 플러스>도 날렸다. 그래서 이제는 하던 일 못하게 하지 않는 이상 더 큰 벽은 없을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정권과 영진위가 영화계를, 특히나 독립영화 쪽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권이나 현 영진위는 독립영화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이전까지 단편과 다큐멘터리 위주였던 한국 독립영화가 2000년대 초반 쯤 해서 디지털 시대의 혁명의 힘을 빌려 아주 적은 돈으로 장편영화가 가능해졌다.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2003)부터 해서 극영화까지 이어지며 한 4년 동안 작은 기적을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영화 시장이 ‘열려라 참깨’하는 순간, 현 정권이 찬물을 확 끼얹었다. 시장이 넓혀지려는 순간에 어깃장을 놓는 행태, 정작 그렇게 한 장본인들은 그걸 모른다. 그 와중에 조희문 위원장은 ‘한국영화 잘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걸 보니 아주 딴 세상에 있다. 노무현 정권 때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러시아 직후의 혁명 상황과 같다는 얘기를 하는데 무슨 개뿔 노무현 정권을 가장 앞장서서 씹었던 사람들이 독립영화 진영인데 말이다.  

인디포럼을 비롯해 일부 영화단체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금 중단에 대한 위헌 가능성(씨네21 718호 ‘견해차에 따른 차별은 위헌이다’)이 제기 되지 않았나. 소송도 생각하고 있나?
고민이 된다. 인디진영 쪽에서는 스크린쿼터 연대, 인권영화제, 인디포럼, 서울 독립영화제까지 네 단체인데 소송 부분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회의도 하고 채무변제 파티 때 오셨던 인권영화제 스태프들과도 이후에 얘기를 해볼 계획이다. 근데 지원금 중단과 관련된 네 개 단체가 모여서 이렇게 진행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서 섣불리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이게 맞나 하는 갈등이 든다.

인디포럼 의장으로써 고민이 많다.
집에서 가만히 있을 때면 뭘 할까 생각한다. 사실 인디포럼 의장도 올해 영화제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이놈의 새끼들이 다들 안 하려고 해서. (웃음) 나는 선한 권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권력이라는 형태는 고이면 안 좋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과 그리고 나한테 길들여진 시스템이나 이런 걸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관두려고 하는데. 내 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웃음)


<황금시대> 옴니버스 영화의 한계를 느끼다 

9월 9일 개봉한 <황금시대>는 ‘돈’을 주제로 열 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다. 열편의 작품이 굴비처럼 엮인 <황금시대>는 이야기적으로나 장르적으로 겹치는 것이 없고, 무엇보다 자기 세계에 빠져 관객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영화가 단 한편도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고른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송희일 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불안>이다. 한적한 시골 길을 드라이브 하던 중 부인(박미현)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주식투자에 실패한 이후 보험에 든 남편(박원상)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내용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기대한 것만큼의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것이 <황금시대>가 처한 작금의 상황이다. <황금시대>를 향한 언론의 호의적인 목소리가 많았기에 비슷한 목소리를 하나 더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찾지 않는 그 배경에 대해 묻기로 했다. 

이제 ‘영화감독’ 이송희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웃음) <황금시대>가 개봉했다. ‘돈’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이야기도, 장르도 너무 다양하더라.
인디포럼에 소속된 감독만 네 명이다. 이 친구들이 인디진영에서 컸기 때문에 오백만원만 줘도 그 안에서 퀼리티 있게 찍는다. 나머지 감독들도 단편영화제, 독립영화제에서 했던 경험이 있는 까닭에 오히려 충무로에서 몇 천만 원 들여 만든 영화보다 완성도가 높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일반극장에서 관람했는데 안타깝게도 관객이 너무 없다.
난 원래 이 프로젝트 안 하려고 했다. 한국에서 옴니버스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은 이야기 좋아하지 않나, 드라마 좋아하고 서사가 강한 영화를 선호한다. 내가 <황금시대>까지 옴니버스 영화를 세편(<동백꽃>(2004) <사자성어>(2002)) 개봉시켰는데 관객들이 옴니버스라는 형태를 낯설어한다. 그렇게 브랜드가 높은 박찬욱 감독님(<여섯 개의 시선>(2003))이나 봉준호 감독님(<도쿄!>(2008))도 옴니버스를 했지만 관객이 안 들었다.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오감도>(2009)의 경우도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스타급 배우들이 총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별로 안 좋았다. 에로스로 밀어도 안 된다 말이지. (웃음) 그래서 옴니버스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다.

옴니버스 영화가 한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었음에도 시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계속 시도가 되고 있다. 옴니버스가 영화 길이에 비해서 제작 단가가 낮다. 그러다보니 저예산 영화 쪽이나 인디영화 쪽에서 장편영화 포맷 형태로 옴니버스를 선호한다. 다만 아쉬운 건 관객들과 만나는 지점에 대해서는 고려가 부족한 것 같다. 옴니버스 형태로는 못하는 거지. 나도 실은 힘들었다. 열 개를 어떻게 봐. 나중엔 지치더라니까. (웃음)

그래도 감독님의 <불안>은 <황금시대> 네 번째 작품이라 중간에 상영돼서 관객들이 지치진 않았을 것 같다. (웃음)
사람들이 졸진 않았다. (웃음)

옴니버스 영화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일까?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옴니버스처럼 여러 개가 섞여있는 걸 관객이 잘 못 견뎌한다. 마치 흑백영화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옴니버스 영화를 몇 편 개봉시키고 나서 열의가 안 생긴다. 나는 <불안> 만들고 나서 따로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영화는 계속 찍고 싶다. 그것만이 갖는 장편영화와는 다른 고유한 느낌이 있는데 옴니버스는 묘하다. 한 주제로 묶여서 나오면 단독일 때 발생하는 고유한 힘이 살짝 떨어지는 것 같다. 

<불안>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이 제작비가 많지 않아서 간단하게. 스태프도 별로 없으니 하루 만에 찍어야 하고, 사람 많으면 통제해야 되니까 어디 한적한 데 가서 장소도 한군데, 그리고 배우도 많이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단 두 명. 그렇게 <불안>의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돈’이라는 주제 외에 다른 조건은 없었고?
10분 이내에 할 것. 돈이 한번 나와야 할 것. 그리고 돈에 관련된 것. 근데 이 인간들이 다 어기더라. (웃음) <불안>은 8분 좀 넘는데 나중에 완성된 영화들 보니까 다들 10분 넘고. 돈 안 보여준 감독도 많다. 내 영화하고 <톱>(김은경 감독) <담뱃값>(남다정 감독) <동전 모으는 소년>(권종관 감독) 그렇게 네 편만 조건을 지킨 것 같다. (웃음)

왜들 그렇게 약속을 안 지켰을까? (웃음)
근데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일부 옴니버스 영화 보면 ‘왜 찍은 거야’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황금시대>는 돈이라는 매개를 가지고 소재와 주제를 잘 지켜준 것 같다.


<탈주> 군인이 탈영하다

이송희일 감독의 신작 <탈주>는 알려진 바에 따르면 탈영병 이야기다. 재훈(이영훈)은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이유로, 민재(진이한)는 군 간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탈영을 감행한다. 여기에 재훈과 알고 지내던 누나 소영(소유진)이 합류하면서 이들은 끝을 알 수 없는 탈주를 펼친다. 이번 작품은 여러 모에서 흥미롭다. (<똥파리>(2008)가 나오기까지 독립영화의 극영화 부문 최다 관객 동원이었던) <후회하지 않아> 이후의 신작이란 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탈영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탈영영화 관련 자료도 마땅치 않았고 제작사나 감독에게 모두 첫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좌충우돌이었던 <탈주>에 대해 이송희일 감독은 ‘장르영화에 가까운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탈주>는 구소련 그리고리 추크라이 감독의 <병사의 시>(1959)에서 출발했다.
<병사의 시>는 탈영 얘기가 아니라 휴가 이야기지만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예전부터 탈영영화를 찍고 싶었다. 이번에 제대로 못해서 아쉽긴 한데 탈영병 얘기에 대해서 매혹된 게 있었다.

탈영을 소재로 한 소설도 쓴 적 있지 않나?
20대 초반에 소설도 썼었다. 탈영한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군대 내부 얘기가 금기시되긴 하지만 영화나 소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 형태로 풀어지고 있지 않나. 근데 어떻게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탈영 얘기가 없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마 뒤져보면 전후(戰後) 영화들에 있었을 것 같다. 탈영을 주제 삼지 않고 에피소드로 다뤘을 법 하지만.

그 당시에 탈영을 주제로 한 영화 만들었다면 바로 잡혀갔을 거다. (웃음)
탈영하는 장면이 있더라도 바로 총살당하는 영화여야 됐겠지. (웃음) 그런 에피소드는 등장했을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탈주>의 완성도에 대단히 불만족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슈화될까봐 걱정이다. ‘얘는 <디 워>도 그렇게 씹어서 시끄럽게 하더니 탈영병 영화나 찍고 말이야’ 이런 소리 나올까봐. 그게 좋은 쪽의 논쟁이 된다면 좋겠지만 한국 같은 경우는 아직 멀었잖아.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부분이 있나?
민감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후반업체에서 ‘감독님 영화 나오면 잡혀가는 거 아니에요?’ 이러는데 아니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해. (웃음)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 같고. 그 사람들은 민감하게 생각을 하는데 나는 그게 익숙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애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도 계속 민감한 게 아니라 경계에 걸쳐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20대에 썼다는 소설이 <탈주>의 원작은 아니겠지?
아니다. 그거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되게 단편스러웠던 얘기다. 내가 대놓고 메시지를 주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이번 영화는 탈영한 두 남자의 이야기다. 각자 사연들이 있겠지. 군대 얘기라면 떠올릴 남북한 논쟁도 안 나오고, 군대 내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탈영한 그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

<탈영>은 탈영병 두 명과 여자 한 명의 구도다. <삼포가는 길>(1975) 이후 한국의 로드무비는 2남 1녀의 구도가 클리셰처럼 정착됐다. 사실 <후회하지 않아>도 1970,80년대 한국 호스티스물의 변형이기도 했는데 <탈영>의 캐릭터 구성을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
한국영화 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들도 보면 남자 둘, 여자 하나 이렇게 셋의 구도가 되면 성적인 긴장감이 흐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교환하는 삼각구도와 관련해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런 어려운 얘기는 아 몰라 귀찮아. (웃음) 물론 그런 조합을 어떻게 세팅할 건지 초반에 고민이 됐다. <탈영>에서는 성적인 긴장감은 완전히 빼버렸다. 멋진 남자들이 많아야 되고 탈영한 남자들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다 남자만 나오면 퀴어영화로 볼 거 아냐. 그래서 2남 1녀의 구도를 취했다.

<탈영>에는 퀴어적인 요소가 없나?
나는 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웃음)

그럼 액션에 좀 더 치중했나?
장르영화인 것 같다. 되도록 어렵지 않게 친숙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친숙한 장르의 어법을 빌리고 싶었으나 탈영영화가 처음이라 참조할 작품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촬영 중간에 텀도 생기고 좌초되는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계속 고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기존에 알려진 이야기에서 큰 변화가 있나?
시놉이 크게 바뀐 건 아니다. 중간 중간에 제작비가 없으니까 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바꿔야 하는 힘든 여정이 있었다. 제작사인 청년필름도, 나도 로드무비를 처음 찍는데다가 90% 이상이 지방촬영이라 제작비와 관련한 선택 중에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낀 케이스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웃음)
로드무비에 맞는 가벼운 카메라를 선택해서 가볍게 터치를 했어야 됐는데 ‘바이퍼’라고 하는 괴물 같은 카메라로 촬영했다. 바이퍼 카메라가 하드저장 방식이라서 카메라보다 카트가 훨씬 크다. 이걸 끌고 산을 올라가는데 컷이 한 번 바뀌면 세팅하는데 최소한 20~30분이 걸린다. 나는 ‘촉수달린 괴물’이라고 하는데 카메라 뒤에 촉수처럼 라인이 엄청 많다. 그래서 한 번 바꾸려면 라인 다 빼고, 나중에는 확 집어 던지고 싶었다. ‘누가 바이퍼 하자고 그랬어!’ (웃음) 지금 다시 만들라고 하면 화질은 떨어지더라도 가벼운 걸로 고를 거다. 

바이퍼 카메라는 데이빗 핀처의 <조디악>(2007)에서 대표적으로 쓰였다.
그렇다. 바이퍼가 세트용이더라. 그래서 할리우드처럼 시스템이 갖춰져 있거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처럼 세트촬영을 하면 되는 거다. <조디악>의 경우, 테스트 촬영 많이 하고 DI(디지털 색보정)까지 염두에 둔 데이터를 가지고 촬영에 임했는데 우리도 물론 테스트를 했지만 조명의 여건이나 그걸 구현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어려웠다. 바이퍼는 마치 바둑을 둘 때 처음 착점하는 것 같다. 바이퍼 카메라에 맞춰서 스텝을 세팅해야 하니까 스태프들이 많아야 하고 불편한 여건들이 많아졌다. 대신 많이 배웠다. 앞으로도 로드무비 찍을 것 같은데 그때 찍을 수 있는 노하우를 많이 깨지면서 배웠다. 로드무비는 무조건 스태프가 적어야 한다.

<탈주>는 원래 2008년 개봉작이었다. 자금이나 바이퍼 카메라와 같은 문제들 때문에 올해로 연기된 건가?
돈이 없어서 후반작업이 너무 힘들었다. <황금시대>는 후다닥 찍으니까 먼저 개봉할 수 있었는데 <탈주>는 후반 업체들 일정 봐 가면서 모자이크 하듯이 그렇게 했다.

6억 정도의 제작비로 알고 있는데 자금 조달이 힘들었나?
조금 더 복잡하다. 이게 영진위 지원작인데 거기에 더해 투자를 받았다. 근데 돈이 회수되는 시점이 조금 걸렸다. 그걸 제작사에서 대비했어야 했는데 미리 못한 것도 있었고 우리 역시 그걸 확인하고 촬영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못했다. 마케팅비까지 포함해서 나중에 투자받은 돈이 결제라인이 상당히 복잡하던데 아, 모야. (웃음) 그래서 작년 부산영화제 기간에 약 한달 동안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후회하지 않아>에 비해서 제작비가 6배 더 늘었는데 거기에 대한 부담도 있겠다.
당연하다. 마케팅 비용까지 합해서 8억이 되니까, 20만 정도가 PP(손익분기점)라고 들었다.

제목도 <탈주>로 확정인가? <사냥꾼의 밤>에서 <질주> <탈주>까지, 제목이 계속 바뀌었다.
사실 ‘~의 밤’은 재미로 붙인 건데 다음 작품도 그렇게 가려고. ‘~의 밤’으로 해서 떡밥 던질 거다. (웃음)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최초 공개가 확정됐다. 개봉도 정해졌나?
부산영화제 갔다 와서 가을쯤에. 배급사는 정해졌고 개봉 시기는 저울질하고 있나 보더라. 나도 정확히는 모르고 가을에 하겠다, 정도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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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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