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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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가 화제다. <타워>는 674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자 독립국가인 ‘빈스토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 물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과학소설(Science Fiction)치고는 비교적 판매량도 높은데다가 그동안 장르소설에 무관심했던 일간지의 인터뷰가 쇄도할 정도로 관심이 높은 것이다.

과거와 달리 장르소설에 대한 독자의 저변이 넓어졌다지만 유독 과학소설에 대해서만큼은 무관심했던 이들이 <타워>를 향해 이례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타워>를 읽었다는 이들의 의견을 샅샅이 그러모은 결과, 설정이 재미있어서, 한국사회를 재미있게 풍자해서, 원래 재미있게 글을 쓰는 작가라서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재미있다’는 사실 하나에서만큼은 의견 통일을 보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타워>가 궁금해졌고, 작가 배명훈이 궁금해졌다.

배명훈과의 인터뷰는 과학소설전문출판사이자 <타워>를 출간한 ‘오멜라스’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주로 <타워>에 대한 것이었지만 결국 작가 배명훈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됐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타워>는 오멜라스에서 처음 출간한 한국 작가의 소설이라고?
배명훈(이하 ‘배’) 이들과 서로 공감을 이룬 상황에서 작업을 했던 게 너무 좋았다. 편집부터 표지 이미지까지, 내가 개념을 설명하고 이미지를 설명한 게 아니라 설정을 동의한 상태에서 이뤄진 게 편하면서 쾌감이 있었다.

반응도 좋은 편이다.
출판사에서 관심을 갖고 잘 해주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출판사 편집자 분들과 함께 고민했다.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분들과 많이 공유했던 책이다. 

‘그분들’ 말씀으로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서 차기 소설 준비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고? (웃음)
애로사항까지는 아니다. 다만 <타워>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현재 쓰는 글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인터뷰가 <타워>와 관련되다보니 현재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타워>뿐 아니라 지금 준비 중인 작품에 대해서도 물어볼 거다. 물론 살짝. (웃음)
(웃음)


<타워>는 어떤 이야기?

<타워>의 배경인 빈스토크(Beanstalk)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하늘까지 솟은 콩줄기 이름에서 차용했다. 높이 2,408m에 이르는 지상 최대의 마천루로 설정된 빈스토크는 일견 현대판 바벨탑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설국열차>를 수직으로 세운 버전으로 이해하는 편이 옳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발가벗겨 교훈을 설파하는 대신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더 정확히는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와 다르다면, 유머를 이야기의 주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타워>의 핵심은 유머가 기능하는 방식이다. 극중에서 밝히길 빈스토크는 ‘어느 나라의 수도에 위치해 있다’지만 <타워>를 구성하는 여섯 편의 단편이 발판삼은 배경은 의심할 바 없이 현재의 서울이요, 실제 대한민국이다. 다만 정색하지 않고 유머로써 현실을 관통하는 필력에는 비관이나 슬픔보다 감동과 웃음이 넘쳐난다. <타워>의 재미와 매력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버즈 두바이’(필자 주_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에 건설되고 있는 높이 810m 높이의 160층 빌딩)를 보고 <타워>를 구상했다는 인터뷰를 봤다.
TV를 보다가 생각했다는 의미에서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이라는 말을 쓴 거다. 발상 자체가 버즈 두바이에서 얻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어떻게 ‘타워’를 배경으로 할 생각을 하게 됐나?
‘타워’를 큰 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명을 좁은 데 집어넣는다고 상상했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사회를 이루는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을 크게 했다.

높이 2,408m, 674층, 인구 50만이라는 수치는 어디에 근거를 둔 건가?
숫자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마지막 단위까지 밝히는 게 의미가 있다. 674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지는 않다. 의미 있는 숫자는 일부러 피하려 했다. 666층을 할까도 했는데 뻔해서 일부러 안 했다. (웃음)

구체적인 살은 어떻게 붙이게 됐나? 빈스토크는 허구의 타워지만 실제로는 서울을 옮겨놓은 것 같은 인상이 짙더라.
도시를 넣은 거다. 문명을 집어넣은 건데 자연을 뺐으니 도시인 거다. 도시 문명을 집어넣은 거니 서울이 맞지 않을까?

<타워>가 현 한국사회에 대한 풍자소설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 그래도, MB정권의 표현자유 억압이 심각한데 그 때문에 서울에 대한, 한국에 대한 풍자라고 단정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웃음)  
그건 오해다. 난 절대 <타워>가 서울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적 없다. 공식입장은 ‘서울이 아닙니다.’다. (웃음)

현 시국을 겨냥해서 쓴 소설은 아니지만 출판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용산참사가 터졌을 당시에 지금이 타이밍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물론 MB정권 하에서는 계속 타이밍일 것이다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과 맞물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MB정권 하에서는 <타워>의 소재가 무궁무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그렇다. (웃음) 세상이 평화로우면 작가들이 적을 발견하기 힘들다고 해야 하나. 안 보이는 적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보이는 갈등요소들이 많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수월하다. 

50만이 거주하는 곳이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으며 더군다나 MB정권인데, 1년 후면 또 얼마나 많은 얘깃거리가 생기겠나. <타워> 시즌2도 기대할 법하다.
다른 책 쓰다가 다시 돌아와 <타워> 시즌2, 시즌3처럼 30년간 써먹을 생각이다. (웃음) 처음 구상했을 때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 소재가 많았다. 다만 책의 주제와 연관이 되는 소재에 집중했다. 이야기 하나하나의 독립된 플롯과 서로 연결이 되게 구성한 건데 <타워>는 실린 이야기보다 훨씬 풍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소재다. 

편지체, 대화체 등 서술의 형식이 다양하다. 다양한 소재에 따라 접근한 형식인가?
이게 대하장편소설로 가도 될 정도로 풀 수 있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했다. 하지만 처음 들어갈 때는 옴니버스 형식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타워>가 굉장히 큰 공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점에서 들어가고 싶었다. 다양한 분석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다양한 서술방식으로 들어가야 그럴수록 더 풍부해지는 소재라고 생각한 거다.

3차원적 공간 구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인가?
할리우드나 일본 영화를 보면 시가전이 등장하는데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그걸 안 하는 것 같다. 건물의 높이나 그 위에서 보는 외부시점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내부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괴물>이나 <김씨 표류기>도 서울이 배경이지만 도시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다. 왜 그런지 의문이다. 우리에게 도시라는 공간이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까. 낯선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타워>도 내부의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내부 시점에서 보는 3차원적 공간으로 절충했다. 그게 한국적인 것 같다. 

머릿속에 그린 빈스토크의 모습은 어떤 형태였나?
처음엔 길쭉한 형태였다. 쓰면서 좀 두꺼워진 건 풍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이하 <동원박사 세 사람>)에서 빈스토크의 공간구조를 권력구조로 재해석한 것처럼 갈수록 3차원적 공간이 강해졌다. 길쭉한 형태면 바벨탑 신화처럼 비판적인 성격이 강해지는 거라 욕만 쓸 것 같아서 넓은 형태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직설적인 현실 비판이 아니라 유머가 있는 우화라는 점에서, 게다가 책 속에 부록으로 ‘타워 개념어 사전’도 있고 <동원박사 세 사람>에 등장하는 개와의 인터뷰도 있고, 본지의 패러디 정신과 흡사한 측면이 많더라.
그런 코드로 연결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재미있자고 풍자하는 건데 유머를 감출 수는 없지. 옛날 세대 같으면 싸우거나 저항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이용하는데 우리 세대는 투쟁의 의미가 좀 다르다. 우리는 놀이로써 투쟁하는데 ‘그쪽’에서는 정색하고 달려드니 웃기지 않나. (웃음) 그게 우리만의 문화적인 정치생활이고 사회생활 방식인 거 같다.


<타워>의 배명훈은 누구?

배명훈은 놀이로써 글을 써왔다. 그에게 글쓰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여기저기 많은 곳에서 글을 발표해왔다. 대학 재학 시절 <테러리스트>(2004)로 ‘대학 문학상’을 받았고 <스마트D>로 ‘과학기술창작 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면서 이후 환상문화 웹진 ‘거울’(http://mirror.pe.kr), 장르잡지 <판타스틱> 등을 통해 활발하게 글을 발표해왔다. 이제야 그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책이 나온 것도 글쓰기를 직업이 아닌 놀이로 접근한 탓이 크다. (그는 김보영, 박애진과 함께 <누군가를 만났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라면 ‘배명훈 월드’의 문법에 익숙하다. ‘은경’이라는 캐릭터의 잦은 출연, 전편에서 등장했던 상황이 다음 작품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등 작가와 그의 독자들만이 알 수 있는 코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작가에게 그만의 세계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면 배명훈은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배명훈 월드’는 어떻게 축조된 것일까. 

<타워>가 더욱 남다른 건 본인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첫 번째 책이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느낌이다. 그 전에는 책을 냈어도 마치 석사학위 있는 사람이 논문을 발표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작가라고 하기 애매한 게 있었는데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오니까 보는 시선이 여러 모로 달라졌다.

<타워> 발표 전까지는 특정 독자층에게 어필했다면 이번엔 일반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간 느낌인데?
동료작가가 이때까지 접하지 못한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갔다는 말을 해줬다. 그 얘기는 나의 글 쓰는 과정이 변한 게 아니라 내 이름으로 책을 발표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달라진 효과 중에 하나다.

과학소설 작가로 알려졌지만 <타워> 홍보에서는 ‘SF’란 단어를 철저히 사용하지 않았다고?
내 작품들은 꽤 스펙트럼이 넓다고 본다. 장르 속에 들어간 글도 있고 농도가 쫙 빠진 글들도 있었다. <타워>의 경우, 특정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니다. 장르의 선이 어디인지 알지만 넘어 다니는 게 자유롭다는 의미다. 특정장르에 얽매여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처음부터 ‘SF작가’ ‘장르작가’로 불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나?
고민한 지 몇 년 됐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그걸 넘어서는 글쓰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작품이건 국내에서 SF라고 과감하게 홍보하는 책은 없는 것 같다. (웃음) SF에 대한 편견인데, 그게 제대로 된 이미지가 아니면서 악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빼려고 하는 거다. 나도 처음에 이에 대한 신경을 쓰고 장르의 문법이 무얼까 고민도 하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선입견을 가지고 플롯을 끌고 가는 방법도 있으니까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과학소설은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장르 아닌가. 그런 점이 한국에서는 무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상상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다만 수습하는 게 문제다. 설득하는 게 문제다. 회사에서 참신한 생각을 요구하지만 참신하게만 생각해오면 싫어하지 않나. (웃음)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럴싸한 가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단편으로 시작해 연작소설을 발표했고 현재는 장편을 준비 중이다. 굉장히 체계적인 성장과정으로 비쳐진다.
의도한 건 아니다. 단편은 예전부터 한 달에 한 편 정도 계속 써왔고 그걸 묶을 수 있을 때가 되면 책으로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워> 이후 장편소설이 출간되면 처음이지만 이번이 장편을 처음 쓰는 건 아니다. 예전에도 썼다. 물론 나 혼자만 가지고 있지만. (웃음)

원래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나? 아니면 소설이 좋아서 쓰기 시작했나?
글쓰기를 좋아한다. 취미가 읽는 게 아니라 쓰는 거다. 책은 일반인보다는 많이 읽는 편이지만 동료작가에 비해서 워낙 안 읽으니까 그걸 이해 못하는 주변 분들이 많다.

그래서 단편 작업이 월등히 많은 건가?
단편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근데 한 작품을 몇 개월을 두고 완성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글을 쓰는 스타일이다. 베타버전을 내놓는다는 생각으로 한 편을 완성한 후 그걸 다시 발전시키는 형태로 연습한다. <동원박사 세 사람>의 경우, 그 전에 발표한 <초록연필>을 발전시켜 다음 단계로 나아간 거다. <초록연필>이 어떤 현상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추적했다면 <동원박사 세 사람>은 그걸 이론화시킨 거다. 그렇게 발전시키면서 글을 쓰고 있다.

맨 처음에 썼던 작품은 어떤 이야기였나?
십년 전이었나, 대학 재학 시절 여름방학이었는데 러브스토리였다. 러브스토리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쉽다. 서로 만났는데 제약이 생기면 갈등구조가 커지고 결말은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니까. 이렇게 구조가 명확해서 글을 쓰기 좋았던 것 같다.

<타워>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게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이었는데 러브 스토리다.
처음엔 지금 실린 것보다 더 말랑말랑하게 가려고 했다. 근데 사랑의 의미가 더 확장됐다. 처음에 하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사랑이 돼버렸다. 어느 공간인지에 상관없는 러브 스토리를 구상했다면 작게 갔을 텐데 빈스토크라는 소재의 무게가 개입을 하자 더 큰 잠재력이 보였다.

<스마트D>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웹진 ‘거울’에서 활동했다. 그러면서 장르의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발표했던 <이웃집 신화>는 장르의 클리셰로 전개를 하지만 결국 클리셰가 아닌 이야기로 귀결된다. 비로소 이 작품을 쓰고 나서 장르의 선을 넘을 수 있었다. 

장르작가는 특정 장르에 구애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신 역시 <355 서가>라는 공포물도 썼고 <이웃집신화>처럼 러브스토리와 미스터리, 공포가 뒤섞인 작품도 발표했으며 <누군가를 만났어>처럼 특정장르라고 지칭하기 힘든 작품도 있다.
나는 다양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고집할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미리 정할 수 없다. 쓰면서 풀어 나가는데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공모전에 응모했던 <스마트D>는 심사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글을 썼다. 그때 처음으로 이야기에 맞는 방식의 글쓰기를 제대로 공부한 것 같다.


<타워> 그 후

배명훈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영화화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과학적인 설정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순수하게 소설만의 미학을 추구한다. 배명훈 소설의 독특한 지점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배명훈의 작품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구성은 바로 이질적인 두 요소의 충돌에 따른 예상치 못한 연결점이다.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처럼 인도 뭄바이의 현실이 우주여행과 연결이 되고 <초록연필>처럼 평범한 사무실의 일상이 스페인의 예언자를 매개로 하여 지구 멸망 이야기로 끝맺음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소설 특유의 글쓰기 상상력이 빚어낸 설득력이 있다. 그의 작품이 발산하는 카타르시스는 오로지 글의 힘에서 나온다. 배명훈이 현재 준비 중이라는 장편 역시 글로써만 표현 가능한 작품이 될 예정이다.

<스마트D> 이후 벌써 5년이 지났는데 글 쓰는 환경은 많이 나아졌나?
본질적으로 변한 게 없다. 내 경우는 공모전이 있었고 장르잡지도 나오고 장르 관련 단행본 기획도 늘어나면서 마치 문단의 작가들이 신춘문예 데뷔하고 잡지에 글 발표하고 단행본 내는 등의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못하고 있다. 데뷔 기회가 생기긴 했지만 제도화돼있지가 않다. 작가로 데뷔하더라도 앞으로도 좋아질 거라고, 현 상태를 유지할 거라고 보장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20대 초반까지 소설 습작을 하다가도 취직하면 거의가 절필한다는 점이다. 회사가 여섯 시 퇴근만 지켜줘도 작가도 많이 생기고 책 판매량도 확 늘어날 텐데 그게 불가능한 거다. 본질적으로 암울한 문제인 것 같다.  
 
그럼 작가를 직업으로 갖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게 아닌가?
소설가를 직업으로 갖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돈이 안 된다는 면도 있지만 사실 그게 문제라기보다 직업으로 가는 경로가 없지 않나. 운이 좋아서 작가로 풀린 거지 작가가 될 거라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이제는 직업작가인 셈인데?
나는 자리를 잡더라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앉아서 글만 쓴다면 나중에 쓸 얘기가 별로 없을 것 같다. <타워>도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글이었다.

직장을 다녔다고?
작년까지 연구원으로 직장을 다녔다. <동원 박사 세 사람>을 보면 연구원 얘기가 나오는데 연구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 때문에라도 직장을 그만 두고 계속 이 상황이 되면 나중에 오십 살이 돼서 뭘 써야 하나, 지금부터 이십 년간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그때 가서 뭘 쓸 수 있을까 고민이다.

그럼 다시 직장을 알아볼 계획인가?
지금 당장은 아니다. 더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뭔가 마련을 해놓고 회사를 다녀야 할 것 같다.

그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장편인가?
홍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SF를 쓰고 있다. (웃음) 15만년 뒤 어느 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긴데 다른 외계행성과 다른 점이라면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곳이다. 거기에는 신이라고 알려진 행성이 궤도를 돌고 있는 스위치가 꺼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잠든 신에게 도달하려는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인데 당신의 작품은 지금 준비 중인 장편도 그렇고 어느 작품 하나 영화화가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걸 피한다. 영화에 종속되는 서사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미학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과 글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은 다른데 영화를 염두에 든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의 미학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면 글의 맛을 모르는 세대가 나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우선한 작업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진 편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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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6.29)

4 thoughts on “<타워> 배명훈”

  1. 배명훈씨 인터뷰 하셨군요~ 안그래도 어제 주문했던 ‘타워’ 가 도착해서 슬슬 읽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_^

    1. 셀피쉬님 이쪽 계열 소설 좋아하시는군요. < 타워> 재미있어요. 옷, 혹시 표지가 예뻐서 구입하신 거? 농담임돠. 재미나게 읽으세요. 흐흐 ^^

  2. ㅎㅎ 오멜라스에서 처음 나오는 한국작가라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책 표지에 쓰여있던….양주병이 개에게 가서 멈췄다는.. 글을 읽고 서점에서 뒤집어 졌습니다. ㅋㅋ 단박에 구매 결정을 했죠.

    1. 권력의 최상부에는 바로, 개가 있었다 ㅋㅋ 정말 웃기죠. 다만 지금은 개만도 못한 것들이 있어서 문제지만… 개야, 지못미 ㅜㅜ 난 쥐도 좋아했었는데, 쥐야 너도 지못미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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