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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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가 화제입니다.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했기 때문인데요. 우리에게는 낯선 영국 왕실의 이야기입니다. 3년 전이었죠, 엘리자베스 2세를 다룬 <퀸>(2006)이 개봉한 적이 있었는데요. <킹스 스피치>는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 그러니까 조지 6세의 일화를 다룹니다. (그러고 보니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이 아카데미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네요.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한 헬렌 미렌이, 조지 6세를 연기한 콜린 퍼스가 말이죠.)

영화는 심각한 언어장애로 인해 사람들 앞에 나서기 꺼려했던 조지 6세(콜린 퍼스)가 괴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를 만나 대중 공포증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지 6세의 아버지인 조지 5세가 처음으로 국민을 상대로 한 라디오 연설을 했다고 하죠. 왕이 국민의 편에 서있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인 행위였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국민을 상대로 왕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건 치명적인 결격사유에 해당됩니다. 더군다나 적국 독일의 히틀러가 엄청난 선동 능력으로 자국민을 휘어잡으며 세를 넓혀가던 때이니까요. 그래서 조지 6세에 앞서 형인 에드워드 8세가 조지 5세의 왕위를 물려받게 되는데요. 국가 대신 사랑을 택한 형이 물러나자 조지 6세는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로그의 치료를 받으면서 히틀러의 야욕에 맞서 국민을 단합시킬 감동의 연설을 준비하게 됩니다.

<킹스 스피치>는 한마디로 장애를 가진 인간의 극복기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말을 더듬는 조지 6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언어장애를 치료하는 로그 역시도 일종의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대에 서고 싶은 배우 지망생이지만 재능 부족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대신 언어치료사로 나서 조지 6세와 같은 말더듬 증세를 교정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죠.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영국 왕실이 무대로 등장하지만 <킹스 스피치>의 스케일은 굉장히 소박합니다. 영국왕실과 로그의 언어치료실 외에 카메라가 외부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죠. 조지 6세의 연설도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기 때문에 엄청난 군중씬도 영화 시작 부분을 제외하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감독 톰 후퍼는 <킹스 스피치>를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지 6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로그와의 우정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킹스 스피치>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데이비드 핀쳐의 <소셜 네트워크>나 코언 형제의 <더 브레이브>를 응원하는 쪽이었지만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킹스 스피치>는 보수적인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영화입니다. 장애를 가진 인물이 이를 극복하고 대중의 박수를 받는다, 거기다 우아하고 지적인 영국 왕실의 이야기이니만큼 표가 몰릴 수밖에 없었겠죠. 거기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드라마틱합니다. <킹스 스피치>의 각본을 쓴 이는 데이비드 세이들러로,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자 중 역대 최고령 작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어쩌면 훨씬 일찍 받을 상이었는데요.

원래 데이비드 세이들러도 미세한 말더듬 증상이 있었답니다. 그가 10대인 시절, 말더듬이 조지 6세의 감동적인 연설을 듣고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조지 6세의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편지를 보냈습니다. 근데 왕비로부터 답변이 왔더랍니다. 자신이 살아있을 때는 결코 만들지 말라는 비보(?)였죠. 데이비드 세이들러는 그 약속을 지켜 70세가 넘어서야 <킹스 스피치>의 각본을 쓰게 되었고 73세가 되던 해에 각본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도 감동적이죠. 그러니 어찌 우리의 아카데미 심사위원님들께서 <킹스 스피치>를 외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연출을 맡은 톰 후퍼의 감독상 수상은 동의하지 못하시겠다고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같은 거장도 7전 8기 끝에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어디 애송이가 처음 노미네이트된 그해에 감독상을 수상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다만 그게 아카데미의 정치성이니 어쩌겠어요. 그래도 톰 후퍼가 <킹스 스피치>의 가장 어울리는 연출자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역사극에서, 더 정확히는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는데 능통한 감독입니다. 필모그래프를 살펴보면, <엘리자베스 1세>(2005)와 미국 1대 부통령을 조명한 <존 아담스>(2008)처럼 실존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운 TV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지 6세의 일화는 톰 후퍼 감독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이었던 셈이죠.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콜린 퍼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는 정말 <킹스 스피치>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는 파격 연기를 선보입니다. 콜린 퍼스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맘마미아!>(2008)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대체로 수다쟁이 영국 신사 같은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된 배우가 아닙니까. 그런 그가 <킹스 스피치>에서 말을 잘 못하는 배역을 맡았다니 정말 신선한 충격이죠. 원래 조지 6세 배역에 거론된 배우는 폴 베타니였다고 합니다. <다빈치 코드>(2006)에서의 사악함과 <윔블던>(2004)에서의 친근함이 조지 6세의 다층적인 면모를 드러내는데 가장 잘 맞는 조건이었다고 하는데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콜린 퍼스가 조지 6세를 연기하게 됐고 나중에야 폴 베타니는 <킹스 스피치>에 출연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고 하죠.

왕의 운명을 타고 나기란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배우가 자신의 연기 옷에 딱 들어맞는 배역을 만나는 것도 힘든 일이죠.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린 일입니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거죠. 조지 6세의 일화도 그렇고 콜린 퍼스의 연기 또한 그렇습니다. 조지 6세야 앞서 설명한 그대로고, 콜린 퍼스는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싱글맨>(2009)으로 노미네이트됐지만 고배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킹스 스피치>는 여러 모에서 콤플렉스를 극복한 감동적인 도전기라고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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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entertainment report
EBS Radio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에 대한 6개의 생각

  1. 21세기에 왕실이 존립되야 할 이유가 대체 뭐야. 비아냥 대면서도 왕실이야기를 훔쳐보는건 솔직히 재밌는것 같아요;; 킹스 스피치는 심플한 플롯이지만 시종 자잘하게 긴장감이 깔려 있어서인지 지루하지 않게 보았습니다. 음…영화후에 기억나는건 마치 연극무대 같았던 로그의 집안, 그리고 귀여운 코기들이네요^^

    1. 디케님, 안녕하세요 ^^ < 킹스스피치> 보셨군요. 소박하니 재밌죠. 전 제프리 러쉬 할배 연기가 좋더라고요. 왕을 갖고 노는 모양새라니 ^^; 빌려주신 < 배트 빌리>는 잘 보았습니다. 전 되게 재밌더라고요. 음, 근데 성경에 등장하는 박쥐라니, 좀 깨는 부분도 있더군요. 다음 번엔 제가 < 반지의 제왕> DVD를 준비해놓겠습니다. ^^

    2. 3권 장만해놨어요. 3권부터는 비밀의 두루마리의 정체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던데요^^ 근데 요건,,,, 반지의 제왕의 반지같기도 하고, 슬슬 재밌어지고 있어요!

    3. 옷! 3권이 나왔군요 앗싸 ^0^ 근데 우라사와 나오키는 스케일만 좀 줄이면 더 좋을 텐데 너무 막나가버리는 설정은 어떨 때는 독자를 좀 지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결말이 용두사미 격이 될 때가 많아서요. 물론 그 방대한 스케일이 나오키 만화의 매력이긴 하지만요.

    4. 맞아요, 빌리배트에서는 나오키 작품의 안드로메다 스케일의 진수를 볼 듯해요^^3권에서는 무려 오다 노부나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더라는..(스포일러 금지!이만 끝!)

    5. 악! 스포일러 반사 ㅋㅋ 그러니까, 지금 제가 성경을 샅샅이 훑어보게 된다면 창세기 2장 34절에 박쥐 마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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