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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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애스: 영웅의 탄생>(2010, 이하 ‘<킥 애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를 연출한 매튜 본은 코믹 북의 허구성에 매료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점이 바로 관객을 사로잡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킹스맨>’)는 <킥 애스>를 작업하면서 인연을 맺은 동명의 코믹 북 원작자 마크 밀러와 함께 자신들이 열광했던 1960년대 스파이물, 즉 에스피오나주(espionage) 장르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의기투합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국제 비밀정보기구 ‘킹스맨’의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는 학교도 중퇴한 채 길거리에서 싸움이나 벌이는 에그시(태런 에거트)를 눈여겨본다. 높은 아이큐와 주니어 체조대회 우승 경력 등 요원으로서 특별한 재능을 갖췄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둘 사이의 남다른 인연이 작용한 탓도 있다. 에그시의 아버지 또한 킹스맨의 요원이었는데 작전 중 해리를 구하다 목숨을 잃은 것. 해리의 바람대로 어려운 요원 테스트를 척척 통과하던 에그시는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혼탁해진 세상을 정화하겠다며 전 인류를 몰살할 계획을 세운 발렌타인(사뮤엘 L. 잭슨)과 맞선다.

<킹스맨>은 <킥 애스>의 메인 스토리 작가 마크 밀러와 <왓치맨>의 아트 마스터 데이브 기븐스가 함께 한 코믹 북으로 알려졌지만, 원안(based concept)은 매튜 본과 마크 밀러의 채팅 중에 나왔다. <007> <본> <미션 임파서블> 등 지금 대세인 스파이물 시리즈에 대한 잡담을 나누던 중 심각 일변도로 흐르는 극 중 분위기가 아쉽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들 영화의 설정을 기본으로 <킥 애스>와 같은 슈퍼 히어로물의 허구성을 접목하면 좀 더 재밌는 스파이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시나리오를 받아 든 배우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존 르 카레(<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소설가)부터 <오스틴 파워> 시리즈까지, 스파이물의 반세기 역사를 모두 아우른다.”(콜린 퍼스), “제임스 본드가 <킥 애스>의 세계에서 활약을 펼치는 <007>을 보는 기분이다.”(마크 스트롱) 예로 든 작품은 다르지만, 1960년대 스파이물과 현대의 슈퍼히어로물의 결합이라는 의견에는 대체로 일치를 본다. 이를 두고 매튜 본은 “사실적인 에스피오나주 영토에 슈퍼히어로물 부대를 침공시켜 허구로 독재하려 했다.”는 재미난 표현을 썼다.  

두 개의 장르와 시대를 이종교배하는 작품인 만큼 1933년생인 마이클 케인과 1989년생인 태론 애거트가 강아지 이름 ‘JB’를 두고 벌이는 설전(?)도 이 영화의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1960년대 당시 대표적인 스파이 시리즈물이었던 <국제첩보국>(1965) <베를린 스파이>(1966) <10억 달러짜리 두뇌>(1967)에서 머리 좋고 젠틀한 영국 첩보원 출신의 해리 팔머를 연기한 마이클 케인은 제임스 본드를, <킹스맨>과 같은 큰 프로젝트가 처음인 태론 애거트는 <24> 시리즈의 잭 바우어를 언급하며 세대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그 두 세대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극 중 낀 세대라 할 수 있는 해리 하트가 맡은 셈이다. 그래서 <킹스맨>은 해리의 가르침을 에그시가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핵심이다. 이의 입체성을 부여하는 건 다름 아닌 인용(하단의 Tip! 참조)이다. <킹스맨>에는 <007>과 같은 유명 스파이물부터 <킥 애스>와 같은 매튜 본 자신의 작품까지, 심지어 별 관계없어 보이는 <샤이닝>(1980) <킬 빌>(2003) 등 수십 편의 영화가 참조되고 오마주 된다. 왜 아니겠는가. 선배 요원의 비결을 물려받은 새내기가 유능한 요원으로 거듭나는 사연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연출 역시 선배 작품들의 빛나는 설정과 명장면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데 주력한다.

그 안에서 자기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여러 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액션 연출이다. <킹스맨>의 액션은 초근접 촬영을 기본으로 좀 더 과장된 액션과 리액션을 박진감 있게 전달하고 신체 훼손과 같은 에두르지 않는 잔인 묘사로 허구성을 극대화한다. 매튜 본은 1960년대 스파이물과 2000년대의 슈퍼히어로물이 멋지게 결합한 <킹스맨>을 통해 익숙한 영화적 설정과 어디서 본 적 없는 액션 묘사가 더해진 새로운 스타일의 에스피어나주를 제시한다.

Tip! <킹스맨>의 뿌리를 찾아서

<킹스맨>은 매튜 본이 직접 인용하거나 참조한 영화의 목록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작품이다. 가장 주요하게 가져온 10편의 영화와 함께 극 중 어떤 방식으로 변용했는지를 알아본다. (주의!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007 여왕 폐하 대작전 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8)
본드의 최강의 적으로 꼽히는 브로펠드가 알레르기 체질의 미녀를 모아 세균 화장품을 개발, 전 세계에 퍼뜨리려 한다. 이를 막기 위해 본드가 브로펠드의 연구소를 공격하는 이야기. 매튜 본은 이에서 <킹스맨>의 주요 설정과 공간을 잡았을 뿐 아니라 국내에는 ‘시크릿 에이전트’로 소개된 부제 ‘Secret Service’도 그대로 가져왔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 Star Wars : Episode IV – A New Hope>(1977)
<킹스맨>의 아놀드 박사는 마크 해밀이 연기했다. 루크 스카이워커를 연기한 바로 그다. 또한, 매튜 본은 다스 베이더처럼 악당 발렌타인이 검은 옷을 즐겨 입게 했고 호위 병사들은 스톰 크루퍼처럼 하얀 군복을 입혔다. 무엇보다 루크가 오비완 케노비와 요다에게 수련 받는 것처럼 에그시는 해리와 멀린(마크 스트롱)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설정이 닮았다.

<킥 애스: 영웅의 탄생 Kick-Ass>(2010)
에그시는 <킹스맨>의 ‘킥 애스’이자 ‘힛 걸’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가정사는 누명을 썼던 아버지와 그로 인해 엄마가 목숨을 잃었던 힛 걸의 사연을 연상시킨다. 지질한 사내아이였다가 슈퍼히어로가 된 킥 애스처럼 에그시는 새로운 첩보영웅으로 등극한다. 그리고 불우했던 과거의 보상심리처럼 적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오스틴 파워 Austin Powers: The Spy Who Shagged Me>(1999)
<킹스맨>이 <007>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영화를 참조한 것처럼 <오스틴 파워> 역시 <007>에 대한 패러디가 무수히 많다. 핵심은 코믹 하다는 것. <킹스맨>은 <오스틴 파워> 만큼 시종일관 유머러스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코믹한 정서가 동일한 장르 계열로 엮일 만하다. 원색의 무대 배경과 의상 또한 매튜 본이 <킹스맨>에서 도입한 요소다.

<테일러 오브 파나마 The Tailor of Panama>(2001)
존 르 카레가 시나리오를 집필한 <테일러 오브 파나마>는 파나마에서 고급 양복점을 운영하는 재단사를 정보원 삼은 영국 정보원의 이야기다. 국제 비밀정보기구 ‘킹스맨’의 본거지 또한 고급 양복점으로 은신한 지하로 설정되어 있다. 5대 ‘제임스 본드’를 역임한 적 있는 피어스 브로스넌의 출연까지, <킹스맨>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은 영화다.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2011)
역시나 존 르 카레의 원작으로 만든 영화. 콜린 퍼스는 고위급 스파이 빌 헤이든 역할을 맡아 마크 스트롱이 연기한 현장요원 짐 프리도와 사랑하는 사이지만, 비극적 최후를 맞는 관계로 동반 출연했다. <킹스맨>에서도 이 둘은 같은 소속으로, 에그시를 최고의 요원으로 길러내는 데 의기투합 하는 모습을 과시(?)한다.

<올드보이 Oldboy>(2003)
매튜 본은 발렌타인의 음모에 빠진 해리가 이성을 잃고 역시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과 한바탕 싸움을 펼치는 교회에서의 액션 장면을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4분여에 달하는 장면을 단 한 컷의 편집 없이 원테이크로 끌고 가는 것. 말끔한 슈트를 차려 입은 해리가 장도리 대신 우산을 들고 영국식으로 완성했다.

<킬 빌 Kill Bill : Vol. 1>(2003)
<킬 빌>의 하이라이트는 브라이드가 수백 명을 상대하는 청엽옥에서의 전투다. <킹스맨>의 결말도 비슷하다. 발렌타인이 자신의 음모에 동조한 이들만을 모아 둔 비밀기지 내의 피난 장소는 청엽옥의 클럽 버전에 가깝다. 이곳에서 에그시와 가젤은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의 절단된 팔과 다리와 머리통이 스크린에 난무하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Dr. Strangelove>(1964)
발렌타인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칩으로 된 폭탄을 삽입한다.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서 냉전 중이던 미소가 핵으로 전 세계를 날려버리려는 위험한 시도를 연상케 한다.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킹스맨>의 결말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우아한 엔딩곡에 맞춰 아름답게 피어나는 핵 구름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라도 박수를 칠만한, 단언컨대, 올해의 결말이다!

<샤이닝 The Shining>(1980)
에그시는 발렌타인의 칩이 작동하면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측근을 시켜 엄마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는 즉시 어린 딸을 화장실에 피신시키라고 신신당부한다. 때마침 칩이 작동을 하면서 엄마는 이성을 잃고 화장실 문을 부순 뒤 그 틈으로 딸을 쳐다본다. <샤이닝>의 그 유명한 “쟈니가 왔어요 Here’s Johnny” 장면을 패러디했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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