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보수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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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스가 쓴 <클린트 이스트우드>(이경아 옮김 | 나무 이야기)의 책날개에는 서울대학교의 조국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 평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역할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골수 공화당원으로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인 그는 팀 로빈슨, 숀 펜 같은 대표적인 진보적 영화인들에게도 존경과 경의를 한 몸에 받는 진품 또는 명품 보수주의자다’라고 소개한다.

안 그래도, 이스트우드는 지난 8월 30일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의 지지 연설자로 참석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한 ‘빈 의자’ 발언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미트 롬니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고자 모인 이들을 열광시킨 발언이었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대해 이스트우드는 어느 TV 인터뷰를 통해 “당시 나의 행동이 바보 같았다. 즉흥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행한 연설이었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며 ‘쿨’하게 사과했다.

사람들이 이스트우드를 두고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평하는 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태도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정치적 발언도 그러하거니와 현재의 그의 영화적 경력 역시 젊었을 적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 바탕이 된 것이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이스트우드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필모그래프에서 화음을 추구한다. 머리숱이 풍성(?)했던 때는 마초 캐릭터로, 일흔 살이 넘은 지금은 지혜로운 노인으로 균형을 맞춘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을 향해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총을 발사했던 거친 남자 캐릭터가 시소의 이쪽 끝이었다면 <그랜 토리노>(2008)에서 보잘 것 없는 아시아인 꼬마를 구원하기 위해 총을 놓고 스스로 희생을 택한 구원자의 이미지가 저쪽 끝이었다. 그래서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프에는 변곡점이라고 부를만한 티핑 포인트가 몇 군데 존재한다.

사실 우리가 이스트우드에 대해 떠올리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뭔가를 향해 총구를 겨눈 모습이다. 그 뭔가가 만약 적의 심장이라고 얘기한다면 이스트우드는 <더티 해리2-이것이 법이다>(1973)에서 자신이 연기한 해리 캘러한의 대사를 빌려 이렇게 대꾸할지도 모른다. “나를 오해하는 것 같군.” 그런 대중의 시선을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영화가 있다면 그 첫 번째 목록, 아니 티핑 포인트는 그에게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이라는 명예를 안긴 <용서받지 못한 자>(1993)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스트우드는 연출은 물론 극 중 총잡이 윌리엄 머니로 출연했다. 윌리엄 머니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 눈앞에 거슬리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쏴 죽인 악명 높은 총잡이였다. 하지만 노쇠한 지금은 선량한 여자의 얼굴에 흉터를 남긴 이들에게 심판을 가하는 정의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더티 해리>(1971) 개봉 당시 저명했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로부터 ‘우익의 판타지에 복무하는 캐릭터’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면 경천동지할 만한 변화다.  

이에 대해 이스트우드는 “난 실제 삶에서 폭력을 옹호하지 않는다. 만일 그동안 폭력을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제 다시 그런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이후 그의 영화적 행보는 ‘총을 내려놓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총 대신 카메라(<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권투글러브(<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야구공(<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을 손에 드는가 하면 총이 있더라도 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그랜 토리노>)하는 쪽을 택한다.  

그리하여, 두 번째 티핑 포인트. <그랜 토리노>는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고집스러운 면모 – 손녀의 배꼽티가 맘에 들지 않고, 아들이 일본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는 것이 불만이며, 이웃이 아시아 출신 이민족으로 채워지는 것이 못마땅한 성격 – 때문에 한때 <더티 해리> 시리즈의 최종판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스스로가 법이요, 정의인 <더티 해리>의 해리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코왈스키에게 이와 같은 즉각적이고 마초적인 성격은 이제 반성의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이스트우드는 인상적인 발언을 남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로 감독 데뷔한 이래 거의 매년 한 편씩의 페이스로 지금까지 36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중 스무 편의 영화가 환갑을 넘긴 이후에 나왔다.) “영화를 만들면서 특정한 것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느낀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인생의 다른 지점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갔다.”고 연출론을 밝힌 것이다. 이는 이스트우드의 영화와 캐릭터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나이를 먹고 필모그래프를 쌓아가면서 지혜로워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황한 설명 필요 없이, <그랜 토리노>의 코왈스키는 극 중 이발사 마틴과 욕을 섞어가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그런데 마틴을 연기한 존 캐롤 린치는 <더티 해리>에서 해리가 쫓는 조디악 킬러를 연기한 인물이다. (데이빗 핀처의 <조디악>(2007)에서도 주요한 용의자로 등장했다.) 형사와 범인의 관계였던 이들이 죽마고우로 등장한다는 설정은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사려 깊은 사이라는 걸 예시한다.

어디 극 중에서 뿐일까. 이스트우드가 4년만의 배우 복귀작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를 택한 건 순전히 로버트 로렌즈 감독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로렌즈는 <미스틱 리버>(2003)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 <그랜 토리노>(2008) 등 이스트우드의 주요한 작품에 제작자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이스트우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란 이런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좋게 가져갈 수 있다면 자신의 의지나 신념 따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이야말로 이스트우드가 평생을 추구해온 인생의 균형이자 조화다. 그리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이스트우드가 영화를 만들 때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효율성이다. 그는 지금까지 스튜디오가 정해놓은 예산과 제작 기간을 어긴 적이 없다.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의 경우, 제작비 초과 문제로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를 겪자 과감하게 연출료를 포기했고 <용서받지 못한 자>를 만들 당시에는 제작 기간을 무려 4일이나 앞당겨 마침으로써 워너브라더스사(社)의 고위 간부들을 놀래게 한 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스트우드가 평생을 두고 천착해 온 서부극은 균형과 조화가 중요시되는 장르다. (그는 모두 10편의 서부극에 출연했다.) 물론 피와 시체가 난무하는 스파게티 웨스턴 <무법자>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출하며 가족 혹은 마을 공동체와 같은 집단의 화합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통적인 서부극까지 끌어안았다. 이스트우드 영화의 백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폭주하는 청년의 영화 <무법자> 시리즈와 한발자국 물러설 줄 아는 어른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사이에 변화하는 세월의 힘이 느껴진다는 것.

1930년생인 이스트우드는 2013년 올해로 83세가 되었다. 최근작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를 마치자마자 차기 연출작으로 <스타탄생>의 리메이크를 발표하며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 영화의 출연을 결정한 비욘세는 잘 알려진 민주당 지지자다. 사실 골수 공화당 지지자인 이스트우드의 최근 필모그래프를 살펴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J. 에드가>(2011)), 맷 데이먼(<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2010)), 안젤리나 졸리(<체인질링>(2008)) 등 매 영화 민주당 지지자와 함께 해왔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공화당 전당 대회에 참석해 “할리우드에도 공화당 지지가 많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모쿠슈라 Mokulsha’, 그리스어로 나의 소중한 혈육이란 뜻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여자라는 이유로 문전박대했던 권투선수 매기에게 마지막 인사로 전했던 말이다. 그처럼 이스트우드는 전통적인 보수주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에게 겉으론 적대시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화합이라는 시소의 균형을 맞추듯 결국에는 끌어안을 줄 아는 포용력을 지닌 ‘진짜’ 남자가 또한 이스트우드다. 계속해서 적의 심장을 향해 차가운 총구를 겨눈 모습으로 기억되겠지만 민주당 지지자들과의 작업이 자연스러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고 존경스러울 것이다.

Tip! 폭력경찰에서 이웃집 할아버지까지

<황야의 무법자>에서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을 향해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총구를 겨눴던 사내가 <그랜 토리노>에서는 보잘 것 없는 아시아인 꼬마를 구원하기 위해 총을 놓고 스스로 죽음이라는 희생을 택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에서 이스트우드가 연기했던 거스의 대사를 빌리자면 “내려놓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총을 내려놓기에 이르렀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로 출연했던 7편의 대표작을 통해 그 변화를 알아본다.

1. <황야의 무법자>(1966) 이름 없는 사나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무명배우였다. 하지만 이탈리아로 건너와 출연한 <황야의 무법자>에서의 그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 등 할리우드 웨스턴이 선사했던 우아한 총잡이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두 패거리 사이에서 이간질을 일삼으며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이름 없는 사나이의 활약상은 무법자에 가까웠다. 마을의 화합 따위 개한테나 던져버리라는 듯이 돈의 액수에 따라 움직이며 정정당당한 대결 대신 몰래 뒤로 접근해 뒤통수를 치는 방식이야말로 무법자의 정의요, 질서였던 것이다. 찡그린 표정과 함께 스크린을 뚫어버릴 듯 이글거리는 눈빛, 그리고 구겨 넣듯 입에 물은 시가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이스트우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폭력이라는 딱지가 내 목을 꽉 졸라매고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장면을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블랙유머일 뿐이죠.” (하워드 휴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중)

2.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 데이브 가버
이스트우드의 연출 데뷔작. 관객들은 주로 무뢰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스트우드가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가 연기한 음악방송 DJ 데이브 가버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이름 없는 사나이나 해리 캘러한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였다. 팬이라며 찾아온 여성과 거침없이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그녀가 별안간 집착을 보이며 폭력적으로 돌변하자 여자라고 해서 봐주는 것 없이 그에 걸맞은 최후를 선사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존의 이스트우드 팬들이 가졌던 선입견에 균열을 가하기 충분했다. 안정적인 연출로 <타임> <시카고선타임즈> <뉴욕포스트> 등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고 무엇보다 총이 어울렸던 남자가 에드거 앨런 포의 시를 읽고 재즈와 블루스를 선곡하는 DJ라니, 지적인 면모가 반전의 효과를 발휘했다.  

“여러분들의 신청곡과 함께 ‘감미로운 노래들’을 선사하겠습니다.” (극 중 데이브 가버의 대사)

3. <더티 해리>(1971) 해리 캘러한
해리 캘러한은 조디악 킬러를 쫓는 샌프란시스코의 형사로 등장하지만 법과 질서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폭력을 일삼는다. 점심을 먹다가 은행 강도 소식을 듣고 출동해 핫도그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복면을 둘러쓴 강도 2명을 그 자리에서 사살할 정도다. 다만 그의 폭력적인 행위는 무차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캘러한에게 악을 위한 자비는 그냥 사치일 뿐이다. 예컨대, 조디악 킬러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경찰의 잔혹행위로 방면되자 캘러한은 아예 총살을 가한 후 경찰배지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시체 위로 내던져 버린다. <더티 해리>가 개봉하자 평론가들은 파시스트적인 가치가 도를 넘었다며 반감을 표시했지만 그때까지 이스트우드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거뒀다.

“내가 여섯 발 쐈나, 다섯 발 쐈나 머리 굴리는 중이지? 나도 몰라. 근데 이 총은 매그넘 44야. 엄청난 총이지. 네 머리통 정도는 깨끗이 날려버릴 거야.” (극 중 해리 캘러한의 대사)

4. <용서받지 못한 자>(1993) 윌리엄 머니
이 영화의 제안을 받은 건 1976년이었지만 이스트우드는 좀 더 나이를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연기한 윌리엄 머니는 과거 자신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모두 죽이는 악명 높은 킬러였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돼지치기에 불과하다. 그가 다시 한 번 서부로 나서는 건 칼로 여자의 얼굴을 그은 모리배를 처단하기 위해서다. 다만 이스트우드는 말에 제대로 올라타지도 못하고 비가 오면 감기에 걸리는 병든 총잡이로 등장한다. 즉, 인생의 희로애락을 알아야 할 나이를 기다렸기에 이스트우드는 61세가 되던 해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무법자’ 시리즈라는 과거의 웨스턴 경력을 끌어와 인생무상을 설파하는 자기반영적 영화로 그는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이라는 명예와 함께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난 실제 삶에서 폭력을 옹호하지 않아요. 만일 그동안 폭력을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제 다시 그런 영화는 만들지 않겠습니다.” (하워드 휴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중) 

5.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로버트 킨케이드
로버트 킨케이드는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프에서 유일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당시 그의 나이 63세였지만 이스트우드는 항간의 우려와 달리 멜로드라마에 어울리는 중후한 중년남자의 모습을 멋지게 연기해낸다. 사진작가로 출연하는 까닭에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사랑을 쟁취하는 대신 떠나간 사랑에 아쉬워하는 비운의 남자로 등장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나이 듦’과 ‘내려놓는다는 것’의 주제를 러브 스토리의 구조 속에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웨스턴에서 당당하게 등을 보이고 마을을 떠나던 모습과 달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사랑하는 여인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을 잡지 못해 쓸쓸하게 퇴장하지만 많은 여성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로맨틱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서 여기로 사진을 찍으러 온 건 프란체스카 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소.” (극 중 로버트 킨케이드의 대사)

6.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프랭키 던
나이 먹은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고집 센 노인네가 대부분이다. 전설적인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 던이 전형적이다. 권투를 가르쳐달라며 찾아온 매기(힐러리 스웽크)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문전박대하는 것은 물론 웬만해선 상대도 해주지 않는다. 그건 프랭키의 성격이 못돼서가 아니라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인 까닭이다. 이후 트레이너와 선수로 짝을 이뤄 승승장구하던 중 매기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병상에 눕자 프랭키는 비로소 자상한 면모를 드러낸다. 그래서 예의 없게 구는 매기의 가족이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깨버렸기 때문에 불만스럽고 결국 모든 것을 잃은 매기를 위해 안락사 시키기에 이른다. 프랭키가 보여주는 보수적인 가치란 결국 인간에 대한 존중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모쿠슈라(Mokulsha)는 나의 소중한 혈육이란 뜻이야” (극 중 프랭키 던의 대사)

7. <그랜 토리노>(2009) 월트 코왈스키
<그랜 토리노>는 코왈스키의 거친 면모 때문에 한때 <더티 해리> 시리즈의 최종판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다만 <더티 해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2009년 버전 해리 캘러한인 코왈스키는 성난 청년에서 사려 깊은 노인으로 성장한 이른바 ‘어른의 초상’이다. 까칠한 코왈스키가 보여주는 즉각적이고 마초적인 행동은 그의 전부라고 하기엔 무언가 사연을 감춘 듯한 인상이 짙다. 해리 캘러한이었다면 그런 행동은 오로지 쾌락을 위한 것이겠지만 코왈스키에게는 이제 반성의 대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는 코왈스키가 한국전 참전 당시 행했던 정당하지 못한 일로 심각한 내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50여 년간 마음에 심어두었던 반성의 씨앗이 책임감이라는 신념을 통해 이웃집 꼬마에 대한 숭고한 희생의 열매를 맺으니, 이야 말로 어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성찰이라고 할 만하다.

“장르영화들을 하면서도 특정한 것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느낀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는 장르를 떠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지점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갔어요” (<슈피겔>과의 인터뷰 중)

ARENA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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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week
NO.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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