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상상을 현실로 재현하는 첨단의 엔터테인먼트지만 한편으로는 스펙터클한 이미지 뒤로 미국의 기독교적 보수주의를 전파하는 전령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미국적 보수주의의 가치를 설파하는 두 편의 영화, <크리스마스 캐롤>과 <2012>가 개봉했다. 두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보수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이를 드러내는 태도는 천양지차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언제나 영상의 신기술 도입에 가장 빠른 대처를 보여줬던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은 <폴라 익스프레스>(2004) <베오울프>(2007)에 이어 <크리스마스 캐롤>로 ‘퍼포먼스 캡션’의 정수를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그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동명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천하의 구두쇠로 악명을 날리는 스크루지(짐 캐리)가 크리스마스 새벽에 찾아온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나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약관화하다. 빈자와 약자, 그리고 힘없는 자를 보살펴 도와 천국의 삶에 이르라는 것.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은 이것이 기독교의 가치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스크루지를 찾아오는 유령의 형상 중 하나가 백인 예수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요,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God Bless You!’ 바로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다.
로버트 제메키스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온 관객에게 이런 종류의 메시지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다만 <포레스트 검프>(1994) <콘택트>(1997) <캐스트 어웨이>(2000)를 통해 미국의 보수주의적 가치를 옹호했다면 <폴라 익스프레스>를 기점으로 급격히 훼손되고 있는 미국의 가치에 대한 풍자적 성격이 강해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를 테면, <베오울프>에서 미국의 자존심과 다를 바 없었던 독보적 영웅의 가치가 예전 같지 않음을 반영한 것에 더해 <크리스마스 캐롤>에서는 미국의 훼손된 가치의 복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하게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은 메시지와 첨단의 이미지 간의 상관관계다. 영화의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관객의 상상력은 줄어든다. 할리우드 특유의 거대한 스펙터클은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정보를 주입한다. 로버트 제메키스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실사에 끌어들였고 <포레스트 검프>에서 CG 합성의 새 영역을 개척했으며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는 퍼포먼스 캡션을 끌어들였다. 매 작품 업그레이드되는 특수영상 기술에 맞춰 제메키스의 메시지는 더욱 더 수면 위로 드러나는 대신 이미지는 더 현란해지고 더욱 화려해졌다.
그에 반해 <2012>의 롤랜드 에머리히는 거대한 이미지 자체가 메시지인 영화를 만든다. <해운대>의 쓰나미 따위 우습다는 듯 현존하는 재난은 모두 끌어들여 지구 전체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 기저에는 어떤 우월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미국만이 세계 평화를 지키고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거대한 파괴의 이미지로 보는 이의 불안감을 조장한다. 불안감은 구원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 <2012>를 위시한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는 팍스 아메리카나로써 지구를 재건할 백인 구원자의 아우라를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와 로버트 제메키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은 메시지를 위해 볼거리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겉보기엔 닮았다. 하지만 볼거리에 담긴 메시지의 가치는 같은 듯 다르다. <2012>가 보수주의적 가치를 앞세워 무시무시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전파한다면 <크리스마스 캐롤>은 말 그대로 기독교적 보수주의, 즉 전통적인 가치를 옹호한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노림수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면 로버트 제메키스는 적어도 자신이 옹호하는 가치에 솔직하다. 에머리히의 영화가 오로지 박스오피스의 숫자로 평가받는 것에 반해 제메키스의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다.

(2009.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