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스> 자본주의라는 뱀파이어가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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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월 6일 <코스모폴리스> 이후 홍대의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진행된 ‘영화로 보는 영문학 GV’ 시간에 제가 관객들과 나눈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

<코스모폴리스>를 보면 사실 별 얘기 없는 것처럼 보인다. 월스트리트의 거물 투자가 에릭 패커(로버트 패틴슨)의 하루를 따라가지만 하얀 리무진 안에서 큐레이터, 회계전문가, 사회학자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현재 이 세계를 움직이는 경제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풍부한 해석의 결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신(新)자본주의의 신화

<코스모폴리스>가 보여주는 건 신(新)자본주의라고 불리는 현대판 부호의 신화다. 과거의 부호라고 하면 오랜 세월 동안 기업을 운영하면서 금고에 넣지 못할 정도의 현금을 손에 쥔 거구의 나이 먹은 남자를 생각하게 된다. 마치 이 영화에서 에릭 패커의 머리를 잘라주는 이발소의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많이 변했다. 증권이나 신탁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형태의 부가 경제 시스템을 장악하면서 이제 고작 28살 밖에 되지 않은 에릭 패커와 같은 시퍼렇게 젊은 놈이 거물로 등극했다.

하얀 리무진을 탄 에릭 패커가 초반에 만나는 이들을 한 번 보자. 가장 처음에 만나는 전산 담당의 샤이너라는 인물은 그냥 봐도 젊은이다. 두 번째로 만나는 마이클도 보자. 외환 전문가인데 22살 밖에 안되었다. 아마도 그런 점을 부각하기 위해 에릭 패커가 마이클에게 대체 나이가 어느 정도나 되냐고 묻는 것일 테다. 정말 가관은 아이패드 같은 걸 들고서 만지작거리는 게 꼭 오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을 보면 투자재무표나 주가거래표가 떠 있다. 이런 어린놈들이 작금의 경제시스템을 주무르고 있는 거다.    

이것이 작금의 신자본주의의 신화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 <코스모폴리스>를 신화처럼 다루고 있다는 건 극 중 인물들이 바벨탑이나 이카로스의 추락과 같은 신화를 언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신자본주의의 신화는 성공의 신화라기보다는 실패의 신화 쪽에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거물투자가로 군림하던 에릭 패커는 거액을 투자했다가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하루 만에 망하기에 이른다. 샤이너가 이런 말을 했던가. “돈이 돈을 벌잖아요. 하지만 만질 수는 없죠.” 그렇게 신자본주의의 신화는 얄팍하고 허망하다.

결국 에릭 패커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발소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에릭 패커는 아침에 리무진에 탈 때부터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가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죽음을 향해서 가는 것일 테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 영어로는 ‘hair cut’으로 표기가 된다. 그런데 죽음과 연관을 한다면 ‘head cut’, 즉 머리가 잘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아주 짧은 순간에 살아온 일생이 머릿속에서 슬라이드처럼 돌아간다고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이 어울린 텐데 이발소에서 에릭 패커가 앉은 자리 옆에는 아이들 장난감 자동차 모형의 자리가 또 하나 있다. 할아버지는 에릭 패커에게 바로 저 장난감 자동차 자리에서 4살적 패커의 머리를 처음으로 잘랐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총이 없으면 어떡하느냐며 구식의 총을 건넨다. 패커의 죽음을 예견한 것이다.

전립선과 같은 세상의 이치

그런데 에릭 패커의 몰락은 신자본주의의 경제 시스템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그릇된 판단에서 기인한다. 에릭 패커는 투자가다. 사회학자 비야(사만다 모튼)가 이렇게 얘기했다. “미래를 만드는 건 ‘사이버 자본’이에요.” 에릭 패커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사이버 자본의 수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느라고 애쓴다. 그가 타고 있는 리무진의 첨단 기기의 화면이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수치화되고 그래프로 보여지는 사이버 자본들이다. 에릭 패커는 모든 게 딱 떨어져야만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그의 외모를 보자. 머리도 9:1도 정확히 나눠서 가르마를 타고 있다. 또한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모습에서는 전혀 흐트러짐을 엿볼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릭 패커는 점점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여성들과 섹스를 나눌 때마다 넥타이가, 재킷이 하나하나 없어진다. 루마니아 출신의 반체제 과격인사 페트레스쿠(마티유 아말릭)에게는 얼굴에 파이 세례를 받는다. 특히 수치화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가장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그의 머리는 이발소에서 제대로 깎지를 못해 대칭이 어긋난다.

이에 대해서 베노 레빈(폴 지아마티)은 “세상의 이치가 전립선 같다.”는 얘기를 한다. 하얀 리무진 안에서 건강검진을 받던 패커에게 임시 검진의사 이그램 박사는 전립선의 대칭이 맞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이는 에릭 패커의 수치화된 예측이 잘못됐다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노 레빈은 에릭 패커의 몰락을 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시장은 네 분석을 벗어나 움직일 수 있다는 거. 네 비대칭 전립선 안에 정답이 있었지.” 극 중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세상에 완벽한 좌우대칭은 없다. 예컨대, 이 세상의 부만 해도 ‘빈익빈 부익부’라고 할 정도로 소수에게 쏠려있는 형국이다.  

전립선은 사실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돈 드릴로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은 베노 레빈의 고백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전립선 비대칭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영화에서는 에릭 패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에릭 패커의 리무진과 베노 레빈의 집이 바로 이 비대칭 전립선을 형상화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에릭 패커거 베노 레빈의 집에 들어가기 전 리무진에서 내릴 때 패커는 오줌을 싼다. 에릭 패커가 베노 레빈의 집에 들어섰을 때 레빈도 화장실에서 나온다. 에릭 패커가 리무진 속의 각종 첨단 기기 들로 정보를 획득하는 것에 반해 레빈은 책상에 수많은 종이와 책들이 놓여있듯 아날로그 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취득한다. 그렇게 세상의 부는 비대칭이고 그를 향유하게 만드는 정보에 있어서도 불공평하다는 것을 영화는 전립선을 은유하여 보여준다.
 
왜 자꾸 섹스가 언급되나?

이발소, 전립선만큼이나 중요한 극 중 상징적 행동은 바로 ‘섹스’다. 게다가 <코스모폴리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결혼한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은 에릭 패커는 택시에 있는 부인 앨리스를 만나자마자 섹스에 대해 얘기를 한다. 그 뒤 식당에서, 서점에서, 또 다시 식당에서 그녀를 만나는데 그 때마다 에릭 패커는 계속 섹스 타령이다. 그뿐인가. 에릭 패커는 리무진 안에서 큐레이터 디디(줄리엣 비노쉬)와 섹스를 하고 흑인 경호원 켄드라와는 호텔에서 한다.

실제 섹스는 아니지만 은유로의 섹스도 등장한다. 경제이론가 제인이다. 제인을 만나고 있을 때 이그램 박사도 동행을 하는데 그때 박사는 에릭 패커를 검사하면서 상의를 벗게 한다. 그 후 에릭 패커는 다시 제인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의 동작들이 흥미롭다. 상반신을 탈의한 에릭 패커는 정면으로 제인을 응시하고 제인은 손에 들고 있던 페트병을 자신의 사타구니 안에 끼어 넣는다. 이 장면은 유사 성행위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이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기까지 한다.

그런데 유사 성행위를 하는 가운데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에릭 패커가 투자한 부문에 대한 두 가지 유리한 정보에 대해서다. 그 정보 자체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라 ‘유리한’ 정보라는 게 중요하다. 에릭 패커가 젊은 나이에 거물 투자가가 된 건 아버지의 영향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 고급 정보를 먼저 얻은 까닭이다. 디디와 섹스 후 그는 로스코 그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제인은 말한 그대로다. 이것이 은유하는 것은 명백하다. 에릭이라는 투자가가 섹스라는 행위로 정치권, 경제권 등과 결탁을 하는 거다.

그럼 경호원 켄드라와의 섹스는 무엇이냐고? 이게 참 재미있다. 사실 에릭 패커가 서점에서 부인 앨리스를 만나는 장면에는 이 둘 뿐만 아니라 경호원 켄드라도 있었다. 이 장면에서의 켄드라의 눈빛은 뭔가 비밀스러운 데가 있다. 서점에서 에릭 패커는 부인 앨리스에게 이 부근에 두 군데 호텔이 있으니 가서 섹스를 하자고 유혹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이번에도 섹스를 거부한다. 대신 켄드라가 에릭의 섹스 파트너가 된다. 그럼 여기서 드는 또 하나의 의문. 앨리스는 왜 남편 에릭 패커와의 섹스를 계속 거부할까?

예술은 마지막 저항선

앨리스는 재벌가의 집에서 태어난 딸이다. 근데 이 결혼은 에릭과 앨리스의 사랑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걸로 보인다. 식당에서 에릭과 앨리스가 나눈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당신 엄마의 가슴과 당신의 가슴이 닮았어” 나는 이 앞에서 섹스는 결탁을 의미한다고 얘기했다. 에릭 패커는 재벌가 부인과의 섹스를 통해 딸을 얻는 거래로 더 많은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다만 앨리스가 에릭 패커와의 섹스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애정 없는 결혼을 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직업은 시인이다. 예술가다. 예술가는 사회를 반영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코스모폴리스>의 오프닝 크레딧에서는 스텝과 배우의 이름이 소개되는 가운데 아래 화면으로 물감들이 마구 튄다. 이는 잭슨 폴록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잭슨 폴록은 붓에 물감을 묻혀 뿌리는 ‘액션 페인팅’ 기법으로 유명하다. 그런 액션 페인팅이 극 중간에도 등장을 한다. 뉴욕 거리에 모인 시위대가 신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에릭 패커의 리무진을 발견하고 페인트를 뿌리고 래커로 낙서를 한다. 그야 말로 액션 페인팅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오프닝 크레딧의 액션 페인팅 이미지를 통해서 영화 속에 보이는 신자본주의에의 저항을 표시한다. 앨리스가 바로 그런 저항의 은유라고 할 만하다. 그녀가 에릭 패커와의 섹스를 거부하는 배경에는 앨리스의 예술가적 감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술가의 중요한 촉수는 예민한 감수성과 관찰력이다. 예컨대, 그녀는 디디와의 섹스 후 서점으로 찾아온 에릭 패커에게 “섹스 냄새가 난다”고 의심을 한다. 경호원 켄드라와의 섹스 후 에릭 패커가 길거리에서 앨리스를 발견하는 장면도 있다. 여기서 패커는 대화를 시도하는데 앨리스는 남편에게 “당신 호텔에서 나오는 거 봤어”라고 얘기를 한다.

앨리스는 에릭과 결합하기 싫었을 거다.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이 작품을 만든 것 자체가 자본에 대한 예술의 저항을 의미한다. <코스모폴리스>의 원작소설을 쓴 돈 드릴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예술들이 인용이 된다. 잭슨 폴록은 말할 것도 없고 추상적인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인용은 미국의 추상화가인 로스코의 그림으로 표현이 된다. 엔딩 크레딧에 제시되는 그림이 바로 로스코의 추상화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예술의 인용이 있다. 신화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바로 ‘뱀파이어’다.

로버트 패틴슨, 현대의 뱀파이어

에릭 패커 역에 로버트 패틴슨이 낙점됐다고 하자 이런 비아냥이 있었다고 한다. ‘뉴욕으로 간 뱀파이어’라며 <트와일라잇> 시리즈 이후 변하지 않는 그의 연기 실력과 작품 활동을 비꼬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단순히 로버트 패틴슨의 인기를 이용해 흥행을 하려는 목적으로 캐스팅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를 캐스팅한 결정적인 이유는 뱀파이어 이미지 때문일 거다.

영화 중간에 에릭 패커가 내다보는 창밖 사이로 ‘자본주의의 악령이 떠돌고 있다’는 전광판문구가 지나간다. 자본주의는 정말 불멸인 것 같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사회주의 역시 힘을 못 쓰는 가운데 자본주의는 이제 신자본주의로 진화할 정도로 정말 독점을 하고 있다. 근데 이 자본주의의 영생에는 돈이 자리하고 있다. 그냥 돈이 아니다. 99%의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말하자면 흡혈한 돈이다. 에릭 패커가 리무진에서 만나는 이들 중에는 힙합 가수 브루타 페즈의 죽음을 알리는 음악계 인사 코즈모도 있다. 그때 이들은 이런 주제의 얘기를 한다. “브루타 페즈의 죽음이 음반 판매량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죽음을 먹고 생명력을 유지한다. 뱀파이어인 셈이다.

에릭 패커도 뱀파이어일 거다. 리무진에서 가장 첫 번째로 만나는 샤이너의 대사는 결정적이다. “정보가 최고야. 혈관을 흐르는 피 같아” 에릭 패커가 리무진에서 만나는 전문가들에게 듣는 정보는 결국 99%의 돈을 빼앗기 위해 흡혈한 정보라고 할 만하다. 아시다시피, 로버트 패틴슨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뱀파이어 역할을 맡아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의 외모 자체가 그렇다. 창백한 피부와 파란 눈빛, 그리고 두드러진 이빨을 보라. 게다가 검은 색 양복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있다. 그의 활동 반경을 보라. 맨 처음 아침에 등장할 때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가 중간에 몇 번 밖에 나오는 걸 제외하면 마지막에 가서야 날이 어두워졌을 때 맨 얼굴로 등장한다.

뱀파이어는 타인의 피를 쪽쪽 빨아먹어야 불멸을 담보 받는 존재다. <코스모폴리스>의 에릭 패커가 부호가 된 배경에는 뱀파이어적인 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가 타고 다니는 하얀 리무진은 드라큘라의 성인 것 마냥 군중 속에서도 고립되어 있고 철저히 폐쇄적인 형태를 띈다. (리무진의 의미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드넓은 전 세계의 경제가 이렇게 조그만 차 안에서 이뤄진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영화가 시작하면 인용되는 ‘들쥐가 통화 단위가 되었다’는 자막처럼 하얀 자동차가 쥐새끼처럼 은밀하게 구석구석을 돌며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결국엔 사람들이 뿌린 페인트나 낙서로 인해 들쥐가 된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에릭 패커는 마지막에 죽지 않느냐고? 사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죽었으면서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돈이 되는 사회잖나. 에릭 패커가 부호의 위치에 오른 것도 아버지 마이클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죽은 사람의 피를 마시고 부호의 위치에 오르는 게 신자본주의 신화의 바탕인 것이다. 영화는 이에 대해서 관객의 상상에 맡기지만 만약 에릭 패커가 베노 레빈의 총에 맞고 죽었다면 그 죽음으로 분명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자본주의라고 해두자. 그렇게 자본주의는 죽음을, 피를 먹으며 영생을 담보 받고 있는 것이다.
         

상상마당 시네마
‘영화로 보는 영문학 GV’
(20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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