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스> 로버트 패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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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스타’ 로버트 패틴슨이 <코스모폴리스>에 캐스팅됐다고 하자 팬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각광을 받은 그가 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를 마다하고 소수의 팬들이 열광하는 예술주의 계열의 영화에 출연을 하느냐는 거다. 이에 대한 로버트 패틴슨의 답변은 간단했다. “거장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과 작업하고 싶었다.”

<코스모폴리스>는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28세의 젊은 거물 투자가 에릭 패커(로버트 패틴슨)의 하루를 따라가는 영화다. 에릭은 하얀 리무진을 탄 채 미국 대통령의 카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유명 힙합 가수의 장례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러는 동안 차 안에서 회계전문가, 경제전문가 등을 만나면서 투자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하지만 위안화가 폭락하면서 그는 파산 위기에 몰린다.

별 내용이 아닌 것 같지만 <코스모폴리스>가 보여주는 건 신자본주의라고 불리는 현대판 부호의 신화다. 과거의 부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기업을 운영하면서 장사로 생기는 현금을 긁어모아 금고에 쌓아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증권, 신탁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부가 경제 시스템을 장악하면서 에릭 패커와 같은 월스트리트의 시퍼렇게 젊은 놈(?)이 거물이랍시고 세계에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에릭 패커는 현대의 신화 같은 존재다. 로버트 패틴슨이 꼭 그렇다. 2004년 <베니티 페어>로 데뷔하며 <해리 포터와 불의 잔>(2005)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2007) 등에서 작은 배역을 맡으며 무명의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트와일라잇>(2009)에 출연하며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고 극 중 연인으로 출연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그야말로 할리우드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배역은 ‘뱀파이어’ 에드워드 컬렌이었다. 원작소설에서 ‘창백한 얼굴, 붉은 입술, 짙은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로 묘사됐는데 그것은 거짓말처럼 로버트 패틴슨의 얼굴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방점은 뛰어난 외모가 아니라 로버트 패틴슨의 외모가 뱀파이어를 연상시킨다는 데 있다.

뱀파이어는 타인의 피를 쪽쪽 빨아먹어야 불멸을 담보 받는 존재다. <코스모폴리스>의 에릭 패커가 부호가 된 배경에는 뱀파이어적인 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가 타고 다니는 하얀 리무진은 드라큘라의 성인 것 마냥 군중 속에서도 고립되어 있고 철저히 폐쇄적인 형태를 띈다. 혹시나 누군가가 리무진에 접근하기라도 하면 바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보디가드가 차 밖에서 밀착 마크를 하는 등 감시 또한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 속에서 에릭 패커는 드라큘라처럼 검은 옷을 입고 그에 대한 반사효과처럼 창백한 피부를 뽐내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불릴 수 있을까 골몰하며 시간을 보낸다. 당연히 합법적인 방법일 리가 없다. 그가 투자 목적으로 구입을 고려하는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대해 큐레이터가 불가능이라고 하자 에릭 패커는 아예 그림이 전시된 성당을 통째로 사들이겠다며 억지를 부릴 정도인 것이다.

그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지만 일련의 행동으로 보건데 서민의 피 같은 돈을 빨아 부호의 위치에 올랐음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다만 쉽게 번 돈은 쉽게 없어지는 법. 에릭 패커는 거액을 투자했다가 위안화의 폭락에 맞춰 천문학적인 비용의 손실을 입으면서 금새 몰락하기에 이른다. 그와 같은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현대의 자본주의 신화는 고도로 추상화된 경제 시스템만큼이나 얄팍하고 허망하다.

이는 신에 도전하겠다며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 바빌론이 멸망한 ‘바벨탑의 신화’, 감옥을 탈출한 이카로스가 너무 자유를 만끽한 나머지 태양 가까이로 다가갔다가 날개가 불에 타 추락한 ‘이카로스의 신화’와 다를 바가 없다. 로버트 패틴슨 또한 하늘 높이 치솟던 인기의 날개를 퍼덕이다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연인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른 남자와 만난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별에 이르게 된 것. 타블로이드는 그의 수척한 얼굴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고 근거 없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코스모폴리스>에 로버트 패틴슨을 낙점한 건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외모와 이카로스의 추락과 같은 사건을 경험한 것이 극 중 에릭 패커의 이미지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 탓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많은 외신들이 그의 캐스팅을 두고 ‘뉴욕으로 간 뱀파이어’라며 <트와일라잇> 시리즈 이후 변하지 않는 연기 실력과 작품 활동을 비꼬는 듯한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코스모폴리스>가 공개된 후 로버트 패틴슨에 대한 반응은 찬양조로 돌변했다. 가령 ‘뉴요커’와 ‘버라이어티’는 그의 연기를 두고 각각 ‘가히 영웅으로 불릴만한 연기를 보여줬다.’, ‘로버트 패틴슨의 탁월한 연기력은 이 영화에 꼭 필요한 자산이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요컨대, <코스모폴리스>는 로버트 패틴슨을 스타가 아닌 연기자로 만들어준 첫 번째 영화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 컬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만 같았던 그가 비로소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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