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호의 반란>(The Caine Mutiny)


정곡을 찌르는 변호인의 날카로운 질문에 쩔쩔매는 증인을 보는 잔인한 쾌감, 논리 정연한 변호인들간의 불꽃튀는 언쟁이 조성하는 팽팽한 긴장감, 줄곧 이어져오던 사건의 구체적인 진상이 단 한번의 결정적인 증언에 의해 뒤집어지는 반전의 놀라움. 바로 법정영화가 주는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법정영화의 가장 강력한 힘은 실제 법조항이 가지고 있는 허점을 폭로하여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소개할 <케인호의 폭동>(54)은 재판과정에서 뽑아 낼 수 있는 영화적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특정 법조항을 소재로 삼아 아주 예민한 질문을 제기한다. 

1944년 당시 미(美) 해군 법 제1804조에 의하면 ‘비상시 지휘관의 임무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때에는 그를 구속하거나 환자명단에 올림으로써 직속부관이 지휘관의 임무를 대행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반드시 해군성 인준이 필요하나 긴박한 상황에서는 즉시 조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에서 문제가 되는 사안은 ‘지휘관의 임무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시’라는 구절이다. 과연 그 범위가 어디에까지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허먼 우크는 「The Caine Mutiny」를 통해 1804조의 중대한 오류로 지적되는 이 구절을 겨냥하여 허구의 사건을 소설화하였고, 이를 원작으로 삼아 에드워드 드미트릭(Edward Dmytryk) 감독은 동명의 영화를 연출하였다.

미 함정 케인호에 새로 부임한 퀴그 함장(험프리 보가트)은 원칙론자다. 전(前) 함장의 지휘에 익숙해 있던 부원들은 신임 함장의 꼼꼼함이 못 마땅하다. 이 과정에서 퀴그 함장의 편집증으로 의심되는 증세가 부관들에 의해 포착이 되고 몇몇 부관은 그의 임무능력에 강한 의문을 품게된다. 결국 케인호가 폭풍에 의해 위기에 쌓인 상황에서 겁에 질린 퀴그 함장은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부 함장 마릭(밴 존슨)에 의해 지휘권을 박탈당한다. 그리고 퀴그 함장과 마릭은 해군 법 제1804조에 의거한 지휘권 박탈의 적법성 여부를 두고 군법정에 오르게 된다.

마릭의 행동은 생사의 위험을 빠져나오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을까 아니면 어리석은 판단에서 기인한 반역행위였을까? 이 사안의 쟁점은 퀴그 함장이 과연 편집증 환자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사실을 밝히는 재판 과정에서 전반부에 묘사된 케인호의 일상은 아주 중요한 증거들로 제시가 되며 후에 정신과 의사가 동원되는 등 아주 치밀한 변호인들간의 설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퀴그 함장의 정신적 장애가 극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재판은 마릭의 행동이 적법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케인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재판을 통해 밝혀진 결과와는 달리 드미트릭 감독은 미국의 안위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퀴그에게 죄를 물을 수 있냐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다. 그래서 마릭의 변호사인 그린왈드(호세 페레)는 “내가 법을 공부하고 키퍼 중위가 소설을 쓰고, 키쓰 자네가 프린스톤 운동장을 누빌 때 살찌고 복된 조국을 지켜준 것은 누구지? 우리는 아니야. 그랬으면 이렇게 돈을 못 벌지. 그럼 누가 이 더러운 일을 대신 해 주었지, 바로 퀴그야. 그러다 퀴그는 망했지만…”이라고 얘기한다. 

소위 ‘펜’으로 상징되는 지식인들의 비겁한 자세를 문제삼는 다분히 군국주의적 관점에 바탕을 둔 의견이다. 하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미묘한 성질의 물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키퍼 중위(프레드 맥 머레이)를 비열한 군인으로 묘사한 설정은 이 영화가 확실히 지식인층의 무기력함을 표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도 진실은 사건에 있지 않고 위기에 처한 몇 사람의 행위에 있다고 못 박음으로써 이와 같은 심증을 뒷받침한다. 

다루어지는 소재의 중량과는 달리 <케인호의 폭동>은 키쓰(로버트 프랜시스)의 사랑이야기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다. 허먼 우크의 원작 역시 키쓰 소위가 해군 장교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여자 친구와의 사랑이야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영화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러브스토리의 첨가는 <케인호의 폭동>이 군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사정을 추적해 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군 내부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대부분 기밀인 관계로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같은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키쓰의 이야기를 케인호에서 발생한 사건을 감싸는 외형으로 활용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케인호에 갓 부임한 키쓰 소위와 관객을 같은 개념에 놓기 위한 장치다. 다시 말해 키쓰와 관객의 시점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케인호의 폭동>은 승선 경험이 없는 키쓰 소위의 시점을 통해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케인호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관객은 키쓰의 시점을 빌려 주관 없이 목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드미트릭이 제시하는 질문에 나름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된다.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은 ‘펜’의 원칙에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총’의 명분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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