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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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의 원제는 ‘우리는 케빈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오로지 케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실제로 극 중 케빈(이즈라 밀러)은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를 연상시키는 사건을 주도하지만 린 램지 감독은 이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에바의 시선에서 아들 케빈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을 바라본다.

작가 에바(틸다 스윈튼)는 자유로운 삶을 즐기지만 원치 않던 임신으로 케빈이 생기면서 사면초가의 현실에 놓인다. 일과 양육의 병행이 힘들뿐더러 케빈이 그녀에게만 이유 모를 반감을 드러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에바는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모두 무위에 그친다. 급기야 케빈은 에바가 평생을 가도 치유하지 못할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유에 대해 린 램지 감독은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밝힌다. 모성의 정체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케빈에 대하여>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하다. 자식이라는 원죄로 인해 평생을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야한다는 귀결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마더>의 엄마가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아들의 범죄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면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는 죽을 때까지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갈 운명에 처한 것.   

하여 <마더>가 왜 엄마가 미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케빈에 대하여>는 모자 관계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추적해 들어간다. 모든 것을 잃은 현재의 에바가 케빈의 탄생에서부터 아들의 학살 사건에 이르기까지 회상하는 방식으로 현실과 과거를 교차하는 것이다. 다만 린 램지 감독은 이들의 관계가 어긋난 원인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감옥에 수감된 케빈을 찾아간 에바는 자신을 왜 미워했느냐고 힘들게 말문을 열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모성이란 그렇게 미지와 금기의 영역이다. 케빈이 에바의 원죄이듯 에바 역시 케빈에게는 무를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존재다. 누가 보더라도 그 둘은 서로에게 거울상이다. 에바가 처한 현실을 온전히 케빈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케빈에 대하여>가 (<마더>와 함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여느 영화보다 뛰어난 이유는 숭고한 모성이라는 금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모성 신화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movieweek
NO.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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