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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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스페인이 사상 처음으로 줄리메컵을 안았다. 한국은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제 허정무에 이어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맡았고, 16강의 주역들은 각자의 소속 팀으로 복귀해 새 시즌을 맞이했으며, 한국 방방곡곡의 광장을 가득 메웠던 붉은 악마들은 복닥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월드컵의 열기가 떠난 자리에는 한국 축구의 중추인 K리그를 활성화하자는 목소리가 뜨겁게 울려 퍼진다. ‘이제는 K리그다!’ ‘Again K-League!’ ‘K리그 운동장에서 만나요!’


K리그 프로팀에 있다? 없다?

K리그 부활의 기치를 내건 각 구단의 비장한 호소를 접할 때면, ‘이게 무슨 호날두가 물개로 빙의돼 북한 골문 유린하는 소리’인지 섬쩍지근해진다. 네덜란드에게 0-5 참패를 당했던 1998년에도, 4강의 기적을 이룬 2002년에도, 아깝게 16강 탈락한 2006년에도 구단 관계자와 축구인, 그리고 언론은 입을 모아 K리그를 살리자고 했다. 다만 그에 따른 계획은 실종된, 여전히 구호만 되풀이되는 ‘K리그 부활 병’은 이제는 하도 우려먹어 단물이 쏙 빠진 영화의 클리셰도 명함 한 장 못 내밀 지경인 것이다.

아니나 달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재개된 K리그는 월드컵 특수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관중 탈모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7,000~8,000명에 육박(?)하는 관중 수는 과거(2006년 독일 월드컵 후 재개된 K리그의 첫 번째 경기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유효 관중 수는 고작 4,600여 명이었다.)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 국민이 보여줬던 열기를 감안하면 초라한 숫자다. 하여 K리그의 인기 회복을 위해서는 팬들이 경기장을 자주 찾고 선수들은 그에 화답해 일떠선 경기력을 선사해야 한다는 게 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의 계획 아닌 계획이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단순히 경기력이 상승한다고 하루아침에 축구장이 관중들로 넘쳐 날지 의문이 앞선다. K리그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지 못하는 건 경기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팀을 규정할만한 캐릭터가 전혀 없어서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원 연고지 부천에서 제주로 야반도주한 팀? 성남 일화는 ‘삼정톤’ ‘계룡건설’ 등 유니폼 로고가 유난히 촌스러웠던 팀? 전북 현대는 지난 정규리그 우승팀? 경남 FC는 국가대표에 감독을 뺐긴 팀? 포항 스틸러스는 일본 만화의 대표 캐릭터 아톰을 한때 마스코트로 무단 도용했던 팀? 강원 FC는 강릉 우추리 도배 마을 출신의 할머니, 할아버지 서포터즈를 보유한 국내 유일의 팀?

이런 식으로 팀의 이미지가 떠오르면 곤란하다. 이건 캐릭터가 아니라 사실 굴욕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이래서야 우리 축구 팬들이 K리그 프로팀에 정을 붙이기는 애초부터 맨 땅에 헤딩하기에 가깝다.


빅 리그는 어떻게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나?

세계 프로축구계를 삼분하고 있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아는 매 경기마다 관중들로 넘쳐난다. (다만 세리에 아는 승부조작 스캔들 이후 빅3의 지위를 조금씩 상실해가는 중이다.)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가 모여 좋은 경기력을 선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 리그의 매 게임은 팀이 맞붙는, 아니 팀의 캐릭터가 충돌하는 전후반 90분 내내 드라마의 파편이 운동장 주변으로 실시간 튀어 오른다. 거기서 팀의 역사와 캐릭터를 목격하는 관중들은 격하게 감정을 이입하며 환호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축구에 열광한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더비 매치다. 동일 지역 연고의 대결보다 전통적인 라이벌 팀 간의 대결로 더 유명한 더비 매치는 해당 리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보증수표라 할만하다. 아일랜드계와 유대계 간의 반목의 역사가 각각 아스널과 토트넘의 라이벌전으로 이식된 프리메라 리가의 ‘북런던 더비’, 군부 독재의 역사를 기저에 깔고 프랑코 대 반(反)프랑코로 나뉘어 지금도 대리전 양상을 보이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더비’,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원흉 무솔리니를 대입하면 ‘파시즘 vs 반파시즘’, 현 이탈리아 수상 베를루스코니를 기준으로 삼으면 ‘우익 vs 좌익’을 각각 대표하는 AC 밀란과 인터 밀란의 ‘밀라노 더비’까지, 이들 더비 매치는 경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다.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가 아니더라도 축구 선진국이라 할 만한 나라는 각 리그를 대표하는 더비 매치를 통해 자국 축구를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샬케04의 ‘레비어 더비’,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아약스와 페예노르트의 ‘데 클라지커르 데비’, 기성용과 차두리의 입단으로 한국 팬들에게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셀틱 FC와 FC 레인저스의 ‘글래스고 더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고로 하는 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의 ‘수페르클라시코 더비’ 등등. 심지어 일본 J리그의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FC 도쿄는 지난 2007년 각 구단 상호 간의 협약을 통해 ‘다미가와 클래식’을 만들어 인위적인 더비 매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상태다. 

그만큼 인기 있는 클럽일수록 팀의 캐릭터는 아이돌 가수들의 외모만큼이나 확실하다. 선수들은 매 경기를 통해 팀의 캐릭터를 확고히 하고 관중들은 경기 관람 외에도 자신의 정체성까지 확인하기에 이른다. 문화는 이렇게 캐릭터를 통해 형성되고 캐릭터의 충돌로 야기되는 드라마 속에 그 폭을 넓혀간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더비 매치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터다.


캐릭터가 살아야 리그가 산다
 
우리에게도 이런 축구 문화가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K리그가 아닌 오로지 국가대표 팀에게로만 향하고 있는 것. 이는 진정 축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4년마다 찾아오는 축제를 즐기는 거라고 혹자들은 비아냥거린다. 근데 이해 못할 바는 또 뭔가. 2002년에 증명됐듯 월드컵은 이제 우리의 정체성을 세계만방에 떨치는 대표적인 한국 캐릭터의 쇼케이스가 됐다. 이를 통해 우리는 광장에 모여 4년 동안 억눌렸던 스트레스를 함성으로 해소하고, 외국 언론의 눈에 비친 우리의 붉은 기운에 어깨를 으쓱이며, 16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날이면 축구 변방국의 설움을 한꺼번에 날려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국가대표 축구팀에 감정을 이입한다. 국가대표의 경기가 매번 관심을 사는 이유다. 

대신 K리그는 외면당한다. 감정을 이입할만한 요소가 없는 까닭이다. 딱 한 팀, 정체성을 ‘지대로’ 활용하는 팀이 K리그에 존재한다. 광주 상무. 하지만 광주 상무는 군대라는 특수 조건이 개입한 예외의 경우다. 그 외의 K리그 구단에게는 팀을 규정할 캐릭터가 전무하다. 구단의 근간이랄 수 있는 지역 연고를 부천에서 제주로, 안양에서 서울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따라 여관방 옮기듯 이전하는 팀에게 팬들이 정붙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리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긴, 지금부터라도 안으로는 팀의 캐릭터 확립에 매진하고 밖으로는 해당 지역 관중의 정체성 이입 공영에 이바지해야지. 프로팀의 본질이라는 게 그렇다. 그 지역의 정체성을 팀의 캐릭터로 삼아야 성공이 보장된다. 앞서 언급한 빅 클럽들의 예에서 보듯, 팀 자체가 곧 지역이다. 팀의 특성이 지역의 대부분을 설명해준다. 팀의 특성을 파악하면 그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시민으로서, 강남을 연고지로 한 구단이 한 팀 더 생기기를 예전부터 바라왔다. 한강을 기준으로 갈수록 생활의 정체성이 극단으로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강남을 연고지로 한 팀과 강북의 FC 서울 간의 ‘서울 더비‘가 생긴다고 상상하면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그런 식의 경쟁 부추기기가 지역감정을 더욱 심화시킬 거라는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강남북 간의 차이들이 고착화 된 상황에서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통한 대리전이 상대방을 향한 분노 표출의 장으로는 훨씬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요는, 이런 식의 발상의 전환이 선행되지 않고서 그들이 그렇게 바라마지않는 K리그의 부활은 요원하다. 지금처럼 15개 프로팀이 모두 우승을 위해 일로매진하는 K리그는 구단과 선수의 것이지 그곳에 팬을 위한 축구는 없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팬은 응원하는 팀의 우승도 바라지만 ‘플러스알파’를 더욱 간절히 원한다. 캐릭터는 그 해답이요, 열쇠다. 지역 팬들의 희로애락을 품을 수 있는 팀들의 격전지로 변모할 때 K리그는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앙모하는 리그로 거듭날 터다.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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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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