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3년 콜롬비아 영화사(Columbia Picture)는 자사의 영화로 인해 벌어진 민감한 사안으로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된 적이 있다. 다행히 해결은 이루어졌지만 그로 인해 한 편의 영화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절라 씨바스런 사태를 겪어야 했는데,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1.

콜롬비아는 당시, 몇 해전 헐리웃을 떠나 영국에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던 스탠리 큐부릭(Stanly Kubrick)의 신작소식을 접하고는 똥꼬털 휘날리며 온갖 수단을 동원, 그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한다는 조건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or: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의 지원을 담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제작사 마빡의 입장에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대부분의 간섭권을 포기해야만 하는 심히 자존심 상하는 계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똥꼬애무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큐부릭의 작품을 배급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에 비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만 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당시 미소양국 사이의 가장 은밀하고도 민감하고도 베일에 쌓인 핵미사일을 소재로, 두 강대국의 무모한 야욕에 결정타를 날린 피터 조지(Peter George)의 소설 <Two Hours to Doom(or Red Alert)>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본 우원 요 소설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당시 꽤나 잘 나갔던 작품이란다.

좌우지당간, 흥행은 물론이고(그들은 큐부릭의 이름이라면 흥행은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된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작품성까지 겸비한 당 영화로 콜롬비아는 그해 아카데미의 쥔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춘향이 이도령 품에 안기듯 가심이 벌렁벌렁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와 동시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주제의식과 주제를 구성하는 에피소드가 너무도 흡사한 영화가 시드니 루멧(Sydeny Lumet)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유진 버딕(Eugine Burdick)과 하비 휠러(Harvey Wheeler)가 공저한 소설 <Fail-Safe>를 각색한 동명의 영화 <페일 세이프>였다.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시련을 겪은 시드니 루멧의 당 영화는 적은 예산과 32일간의 짧은 제작 기간, 그 기간을 넘길 경우 제작비의 추가지급이 전혀 이루어 질 수 없는 절라 씹스러운 상황에서, 글고 영화의 내용을 알고 협조를 거부한 미 군발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세트묘사에 애려움을 겪는 등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 정말 ‘기적’적으로 완성이 되었다.

근데 영화에 있어서 만큼 완벽주의를 고수하는 스탠리 큐부릭이 어떤 식으로든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와의 유사성으로 인해 자신의 영화에 악영향을 미칠 <페일 세이프>의 존재를 알고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큐부릭은 <페일 세이프>의 원작자 유진 버딕과 하비 휠러를 표절혐의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원작이 1962년에 발표된 소설 <Fail-Safe>보다 앞서 출간되었다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 결과, 재판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콜롬비아가 영화 <페일 세이프>의 배급 권리를 행사한다는 조건으로 두 원작(영화)간의 표절사태는 다행이도 일단락되었다.

당연히 콜롬비아는 지 자식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페일 세이프>에 앞서 1964년 1월 먼저 개봉하기로 결정하였다. 원래는 1963년 12월 12일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처음 공개가 될 예정이었는데 앞선 11월에 터진 존 F. 케네디 암살사건으로 공개가 늦추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시드니 루멧의 영화는 개봉하였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여파 때문인지 관객은 <페일 세이프>를 길거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개똥보듯 철저히 외면하였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일 세이프>는 평단의 지지를 얻어냈고 그로부터 36년 후, CBS 방송국은 조지 꼴리니, 하비 카이텔, 리처드 드레이퓨스, 돈 치들 등 헐리웃에서 연기 쫌 한다는 스타덜을 대거 기용하여 TV영화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게다가 당 TV판 <페일 세이프>는 CBS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생방송’ 영화였다.

생방송 영화가 뭐냐, 긍까 사용될 세트를 미리 모두 만들어놓고(당 영화에서 사용된 세트는 모두 8개), 사전에 맞추어진 각본과 철저하게 계산된 카메라 움직임에 따라 연기자와 스텝이 방영시간동안 말 그대로 ‘쌩’으로 연기와 촬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땀시롱 단 한번의 엔쥐(NG)라도 발생할 경우 이는 즉시 골로 가는 치명적인 방송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글타면 구지 생방송이라는 후달거리는 모험을 걸고 시드니 루멧의 <페일 세이프>를 리메이크 한 이유는 뭘까? 맷집이 허벌 쎄서 그랬느냐, 그것도 맞긴 하다. 간땡이가 붓지 않고서야 이런 겁나는 프로젝트를 감행할 리가 없자너.

앞서 원작 영화의 촬영 중에 생긴 어려움에 대해 썰 했듯이, 시드니 루멧의 고단했던 영화 만들기 과정까지 재현하겠다는 연출진의 의도 역시 쪼끔은 있었다. 허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페일 세이프>의 전편을 장악하고 있는 분위기는 다름 아닌 핵이 터지느냐 마느냐의 일각에 달린 똥꼬 후달 오줌 찔끔거리는 긴장감. 바로 이와 같은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상황을 조성, 재현하기 위해서 생방송은 가장 최선의 장치였던 셈이다.

반면 같은 상황을 묘사한 고(故) 스탠리 큐부릭 대인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페일 세이프>와 같은 살 떨리는 분위기를 느끼기란 존나 힘들다.

본 우원 피터 조지의 원작을 유감시럽게도 읽어 보지 못하였지만 지금까지 접해본 몇몇 기사와 바람따라 구름따라 흘러 다니는 정보를 수집한 결과를 믹서해 볼 때 <Two Hour to Doom>은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매우 절망적인 어조의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큐부릭은 시나리오 각색과정에서 이를 코미디로 확! 뒤집어 패대기 쳐 버렸다.

핵전쟁을 목전에 두고 허둥대는 고위 집권층의 꼴도 우습지만 ‘핵’이라는 파멸의 도구를 발명해 놓고 자신들의 안위 운운떨며 딸딸이치는 모습이란 도무지 눈뜨고 보기 힘들만큼 조소를 금치 못 할 정도라는 거다.

다덜 잘 아시겠지만 배경음악 베라 린(Vera Lynn)의 ‘We’ll Meet Again’에 맞춰 편집된 핵 폭발장면은 당 영화의 목적이 역설적인 웃음에 있음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본지가 귀두를 불끈 세우고 지향하는 똥침 정신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하겠다. 오오, 훌륭타.

뭣보다 큐부릭은 냉전시대 미소의 집권층, 그 중에서 군 장성덜의 전쟁에 대한 지랄발광에 비난의 똥침을 강력히 찔러대고 있다. 특히 극중 미국 대통령, 맨드릭 대위 등 1인 3역을 도맡고 있는 피터 셀레스가 연기한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를 낑궈넣음으로써, 이전 히틀러의 만행까지 똥침의 표적을 넓히는 큐부릭 대인의 태도는 그런 점에서 거장다움을 느끼게 한다.


3.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페일 세이프> 이 두 영화는 모두 미소냉전에 따른 핵의 사용을 통해 1960년대의 얼어붙은 시대적 상황에 똥침질을 가하고 있지만서두, 정작 그것이 겨냥하고 있는 손꾸락 질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말하는 요지는 이렇다. 미친 노무색히 군 장성의 비뚤빼뚤한 역사의식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핵 폭발이 일어나는 것처럼 감당해내지 못할, 제어하지 못할 무기를 만들어 파멸의 순간을 자초하는 모습을 통해 잉간덜의 덜 떨어짐을 조롱한다.

그에 반해 <페일 세이프>는 최첨단 군사 방우 시스템의 오작동이 야기한 핵 참사를 가정해 봄으로써 자칫 나의 사랑스런 가족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그리고 나의 조국이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 때린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페일 세이프>가 말하는 바는 비단 핵의 위험에만 국한되어 있지만은 아닐꺼다. 그치? 그것은 분명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행위덜을 포함하는 것일테다.

쌀나라 부시의 꼴통짓도 포함 가능할테고, 좃선의 우끼고 자빠라진 작태 역시,  글고 며칠 전 벌어진 서해교전까지…

그래서 당 영화덜의 인위적으로 조작된 비극적인 우화가 시대를 둘러싸고 있는 실제적인 긴장감 덕택으로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험임에도 불구, 보는 이에게 커다란 재미를 선사했고 지금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씁쓸하다 아니 할 수 엄따.

이거야 말로 웃기는 코미디가 아니냐, 씨바…


(2002. 7. 1.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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