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onfidential)


<LA 컨피덴셜>은 <차이나타운> 이후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 하드보일드 영화 되겠다.

하지만 당 영화 <LA 컨피덴셜>이 등장하기에 앞서 정통 하드보일드 영화의 등장을 암시하는 징후는 가깝게는 1년 멀게는 약 7년 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하였는데, <밀러스 크로싱 Miller’s Crossing>과 <바운드 Bound>가 바로 그것이다. 하드보일드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관객들에게도 낯이 익은 이 두 작품을 잠시, 짧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먼저 1990년에 발표된 <밀러스 크로싱>은 장르의 변주에 능한 코헨 부라더스의 작품으로 무엇보다 하드보일드의 하나의 기호이자 도상인 남자의 중절모(‘볼사리노’라고도 한다)를 이용, 인물의 심리와 분위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과히 일품인 작품 되겠다.

그러나 <밀러스 크로싱>은 하드보일드의 특징을 상당 부분 계승하고 있긴 하지만 두 범죄 조직체 간의 대립이란 점에서 갱스터와 하드보일드의 크로스오버에 더 가까워 정통으로 보기엔 쪼까 어렵다고 본 우원 판단하는 바이다.

그 다음. 워쇼스키 부라더스의 1996년 작 <바운드>. 이 영화는 하드보일드의 특징을 차용한 작품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주를 보인 예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속살 화사한 쭉빵걸과 그녀의 음모에 넘어가 위기를 겪는 또 한 명의 쭉빵걸 등 레즈비언 커플을 등장시켜 고전 하드보일드의 역할 전복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아주 아주 신선한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그 두 뇬간의 결합이라는 행복한 결말은 하드보일드의 이례적인 마무리로써 이 또한 매우 훌륭한 변주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들 하드보일드라 할 수 없음이다. 1950년대 이전을 빽 그라운드로 깔고 있으면 모를까 시대적 배경이 현대 아니냐. 게다가 퀴어와의 교배를 시도했다는 점도 정통성을 거세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위 두 영화가 발표되기 이전에도 <보디 히트 body Heat>와 같은 하드보일드 계통의 영화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했지만서도, 정통을 따르기 보다는 장르의 두드러지는 특징 한두 가지 만을 차용, 영화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라 인정해주기 곤난함이다.

그런 점에서 하드보일드의 마지막 대표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임스 엘로이(James Ellroy)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동명의 영화 <LA 컨피덴셜>을 만들어낸 사실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 위의 영화들과는 달리,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차이나타운> 이후 끊어져 있던 정통 장르영화의 계보를 잇는 충분조건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당 영화 <LA 컨피덴셜>은 하드보일드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면서도(고것들이 뭐시긴지 이제는 구지 설명 안 해 줘도 되겄지), 그 법칙을 완성하는 요소를 위배하는 설정을 목격할 수 있다.

고거이 뭔 소린가 하니, 일단 <LA 컨피덴셜>의 주인공은 사설탐정이 아닌 경찰들이다.

이는 특별한 이야기상의 설정이기보다 1950년대 미국의 사회상(象)에 따른 변화라 할 수 있다. 당시의 범죄양상은 마피아와 같은 대규모의 조직범죄가 만연한 시기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그들과 동등하게 또는 그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맞설 수 있는 조직적인 수사체계를 갖춘 경찰관들이 제격이었다.

결국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1940년대부터 사립탐정의 활약상은 이전에 비해 뜸하게 되었고,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LA 컨피덴셜>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경찰에게 물려주게 되었다(킴 노박의 출세작이기도 한 1954년 작품 <Pushover>의 남자주인공도 경찰이다). 주인공이 잭 빈센스(케빈 스페이시), 에드 액슬리(가이 피어스), 버드 화이트(러셀 크로우) 총 3명인 점도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트리오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하드보일드에서 보기 드문 설정으로, 이전 하드보일드가 특정한 주인공 1명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 것과는 상이한 변화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점은 또한 영화의 전개상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LA 컨피덴셜>의 초반을 보면 이 세 형사의 각기 다른 성격을 극명히 대비시키기 위해 잭, 에드, 버드 각각의 시퀀스를 교차로 편집하여 나열한 구성을 목격할 수가 있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을 기억하는데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인물의 묘사가 뛰어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LA 컨피덴셜>이 이전 하드보일드 영화와 달리 큰 차별성을 보여주는 부분은 팜므 파탈과 그 주변을 맴도는 주인공 남성(들)과의 관계이다.

본 우원의 집중강의로 팜므 파탈에게 걸리는 남성 캐릭터는 웬만하면 쪽박을 찬다는 사실과 마지막에 주인공 남성과 뇬 간의 관계가 여간해선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밑줄 쫙 그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당 영화는 다르다. 그것도 아주 상이하게 다르다. <LA 컨피덴셜>에서 린이라는 요부 역은 킴 베이싱어가 맡았는데, 이뇬 선배 팜므 파탈들처럼 자신을 찾아오는 남성을 병들게 하는 섹쉬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다만 린은 선배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또 하나의 비기를 가지고 있으니, 고것은 순정적인 사랑 되시겄다. 그래서 린은 주인공 남성들을 위기에 빠뜨리긴 하지만 곧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 하드보일드로는 보기 드물게 상대남성과 끝까지 좋은 관계를 맺는 영예를 거머쥐게 된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정통 하드보일드이면서도 하드보일드의 법칙을 위반하는 변화를 꾀하였다는 점에서 <LA 컨피덴셜>이 높이 평가 받는 이유이다. 그것은 원작자 제임스 엘로이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방대한 원작(국내 출시본은 2권으로 총 726페이지에 달한다)을 2시간 20여분의 분량으로 압축하여 원작의 우수성을 잘 잡아낸 시나리오 작가 브라이언 헬게렌드(Brian Helgeland)와 감독 커티스 핸슨(Curtis Hanson)의 공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LA 컨피덴셜>이 시나리오만 뛰어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만약 이야기만이 돋보였다면 영화로 좋은 평가를 얻어내기 절대 힘들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영화란 이야기와 그에 따른 형식이 일치해야 걸작으로 공인 받는 법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감독 커티스 핸슨은 출중한 연출능력을 보여주었다.

‘은밀한, 비밀스런’이란 뜻을 가진 당 영화 제목의 ‘confidential’은 영화배우와 같은 유명 인사들의 부적절한 남녀관계나 동성애와 같은 일탈된 행위 그리고 마약문제를 기사화한 일종의 연예폭로잡지로, 실제 미국에서 1950년대에 수많은 독자를 거느렸다고 한다.

곧, 영화제목은 책제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LA 컨피덴셜>은 컬러풀한 잡지의 겉 표지를 연상시키듯 화려한 영화 배우들의 활동사진을 공개한 후, 빛 바랜 속지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는 목적에서 갈색 톤의 화면으로 안면을 바꾸어 버린다(컬러가 도입된 이후 심심치 않은 논쟁을 불러온 부분으로 몇몇 평론가들은 흑백필름이 아니면 하드보일드의 어두운 분위기를 표현해낼 수 없다고 해서 <LA 컨피덴셜>이나 <차이나타운>을 진정한 하드보일드영화라고 하지 않는다).

잡지의 표지를 펼쳐 그 안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형식을 취한 구성은 다름아닌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시선을 의미한다. 삐까번쩍한 겉 모습과 달리 고약하게 변질된 LA의 실상에 접근해간다는 암시가 되겠다.

그렇다면 대체 LA의 무엇을 파헤치기 위해 위와 같은 형식을 취한 것일까? 영화는 표면상 LA의 최대범죄단체 보스인 미키 코헨의 구속 이후 생긴 암흑가의 공백을 LA 고위층들이 장악하려는 되먹지 못한 음모를 디비고 있지만, 실상 <LA 컨피덴셜>이 보여주려 하는 속사정은 LA로 대표되는 당시 헐리웃 영화산업의 폐해이다. 연예폭로잡지 허쉬(Hush-Hush)를 등장시킨 것은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또한 ‘아방궁’에 소속되어 있는 창녀들이 당시 영화 스타들의 얼굴로 성형하고 매춘업에 종사한다는 설정에서도 그러한 상징을 읽어낼 수가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린은 “헐리웃에 상경하면 이렇게 되요. 덕분에 우린 연기를 할 수 있고요”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가.

헐리웃 동경에 대한 어긋난 꿈을 조롱한 대목이다. 거기에 확인 사살 겸 흑발이었던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다는 린의 언급은 헐리웃이 확실히 거품과 같은 환상을 사고 파는 곳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헐리웃을 향한 <LA 컨피덴셜>의 묘사 중에 흥미로운 점은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장면과 인물을 심심치 않게 등장시킨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1950년대에 동성애라면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자유분방하다고 소문난 미국에서도 당시 동성애라 함은 곧 사형선고나 진배없었다. 마녀사냥의 주범인 매카시가 이들 동성애자들을 향해 미국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과 같은 존재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영화계가 특히 이 문제에 민감했는데, 이미지 하나로 먹고 사는 영화배우가 동성애로 밝혀질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먼 후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록 허드슨이나 캐리 그랜드,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같은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 얼마나 많은 폭로 잡지와 힘겨운 숨바꼭질을 벌였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

이전의 하드보일드 영화들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는 데 있어 불안한 공기만을 구현하는데 집중했다면, <LA 컨피덴셜>은 위의 경우처럼 헐리웃의 영화산업이 낳은 부작용을 다각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단도직입적으로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점 또한 <LA 컨피덴셜>이 하드보일드이면서 하드보일드와는 다른 특징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헐리웃을 공격했다는 점 때문인지 대단히 잘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 1998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및 9개 부문을 후보에 올리고도 각색상과 여우조연상만을 수상하는 초라한 결과를 낳았다.

그 해의 아카데미 히어로가 11개의 오스카를 싹쓸이한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Titanic>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헐리웃을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 보수적인 아카데미 심사우원 선상님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근데 아카데미가 언제 하드보일드 영화에 따뜻한 손길을 보낸 적이 있었는가? 꼰대 같은 심사우원 양반들…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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