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Chinatown)




고전영화 많이들 보셨습니까? <반지의 제왕>, <디 아더스> 보느라 시간이 없었다고요, 쯧쯧 딱하기는. 그거 아십니까, 피터 잭순이 <반지의 제왕>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1933년에 발표된 <킹콩 King Kong>과 1963년에 만들어진 판타지 <제이슨 앤 아거노츠 Jason and the Argonauts>가 있었기 때문이고,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고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는 <디 아더스> 역시 고전공포영화의 법칙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

각설하고, 본 우원 벌써 두 번째 기사임다. 독자제위들의 벌떼와 같은 공격적 응원메일이 아니었다면 다시 만나기 힘들었더랬습니다. 이렇게까지 친근감을 표시해주니 본인 그저 가슴이 벅찰 뿐임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안면도 익히고 그랬으니, 말 트는게 어때, 우리 딴지가 맺어준 친구 아이가?  

지난 시간 <말타의 매>라는 훌륭한 골동품 한 점 소개해 줬으니 이번에는 이름난 마을 한 곳 알려주고 싶은데, 뭐 어디냐구, 서두르긴. 자! 이번에 안내해 줄 마을은 <차이나타운> 되겠다.

요 마을 이름에서 풍기는 대로 쪼매 위험한 곳이니 본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잘들 따라온나. 한 눈 팔고 딴 데로 샜다간 바가지쓰니깐.

1.

1941년 존 휴스턴에 의해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가 선을 보인 이후, 필름 느와르의 외피를 둘러싼 하드보일드는 숫총각이 불꺼진 여관방에서 홀인원을 하지 못해 골프채를 헛 휘두르는 상황을 방불케 하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전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 그리고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듯한 어두운 흑백 화면으로 인해 하나의 유행이 되기에 충분하였더랬다.

게다가 하드 보일드가 영화사적으로 얼매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는 이 장르의 부분적인 특징들이 현재까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증명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 꽃 같은 몽타를 보유한 쭉빵한 걸이 한 명 있다. 그 걸은 자신의 외적자산을 백분 활용, 상대남성의 단물만을 쪼∼옥 빼먹고 파멸의 길로 유도한다. 그렇다면 이는 하드보일드가  배출한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그뿐인가 흑(黑)과 암(暗)이 불안한 기운을 조성하는 어두운 화면이 등장하는 날에는 하드 보일드를 논하지 않고는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작금의 사태가 이럴진대 <말타의 매>가 등장했던 당시 하드 보일드를 향한 관객제위들의 맹목적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때 만들어지던 영화의 경향을 지금의 문구를 빌어 표현하자면, ‘하드 보일드인 것과 하드 보일드가 아닌 것’으로 구분 지어 설명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하드 보일드는 1940년대 헐리웃시장을 지배하는 주도적인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한창 잘 나가던 하드 보일드 영화들은 1950년대 초반을 전성기의 마지막 정점으로 그 세를 조금씩 잃어가게 된다. 유행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등에 업고 끊임없이 양산되던 하드 보일드 영화에 관객들이 식상함을 느낀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하드보일드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긴 생명력을 갖기에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개상황을 예측하기 힘든 미로와 같은 글을 계속해서 창조해 낸다는 것이 딴지라면 모를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결국 정통 하드보일드 영화는 스크린에서 종적을 감추게 되었고, 그나마 TV를 통해 탐정장르라는 이름의 옷으로 갈아입고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긴 동면의 시간을 갖던 하드보일드는 1960년대 중반에 들어, 모 영화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흥미롭지만 대중적 반향은 없었던 얼마간의 무용담 영화”로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3년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표작가 레이몬드 챈들러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The Long Goodbye>로 실로 오랜만에 영화귀족들인 평론가와 변덕이 들 끊는 관객의 호응을 동시에 이끌어내며 가볍게 잽을 날리기 시작했고, 1974년 드디어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의 <차이나타운 Chinatown>에 의해 하드 보일드는 신 느와르(neo-noir, 국내 비평가들은 수정주의라고 함)라는 재건의 이름을 달고 원투 펀치를 작렬함으로써 올만에 영화계 사각의 링에 승리의 두 팔을 번쩍 올리게 된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쓰”

2.

당 영화 <차이나타운>의 두드러진 특징은 감독의 업적보다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타우니(Robert Towne)의 공적에 더 큰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드보일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라는 평가와 함께 <차이나타운>은 로버트 타우니의 영화라고 주장하는 극성파도 있었으며, 그를 하드보일드 소설의 창시자인 대쉴 해미트와 레이먼드 챈들러와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성미 급한 아덜도 생길 정도였다.

본 우원 일정부분에 대해서는 수긍의 고갯짓을 약간 ‘도리도리’ 해 보일 수 있지만 시나리오의 획기적인 완성도만을 앞세워 <차이나타운>을 타우니의 것이라고 한 주장에는 뒷골이 땡겨 심히 불만이 밀려오는도다. 대통령이 나라의 왕이라꼬 대한민국이 김데충이꺼 아니자너.  

시나리오 작가의 크레딧에는 분명 로버트 타우니의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바뜨 그러나 실은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와의 투톱 시스템 하에서 이루어진 산물이 바로 <차이나타운>의 뛰어난 각본이었던 것이다. LA의 화려함과 대조되는 불쾌한 이미지의 차이나타운을 끌어들여 상반된 분위기를 설정한 것은 로만 폴란스키였으며, 상실감으로 끈적거리는 비극적 결말을 유도한 것 역시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플레이메이커 로만 폴란스키의 쓰루 패스를 받은 타우니가 골키퍼까지 제치고 네트를 흔들었다고 해야할까.

당 영화 <차이나타운>은 하드보일드에서 제시된 주요 특징들을 모두 배치해 놓음으로써 고전 하드 보일드 영화들에 존경(오마쥬)을 바치고 있다. 주인공이 사립 탐정인 점, 별 일 아닌 것 같던 의뢰가 핵심에 다가설수록 더 큰 음모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음모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매력적인 뇨(女).

하지만 이전 하드보일드 영화들은 허황한 욕망을 좇는 인간의 추악한 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여러 인물이 연루되는 복잡한 상황임에도 불구, 일방적으로 전개하여 독자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와 달리 <차이나타운>은 동일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건해결의 열쇠가 되는 단서를 여기저기 살포시 흩뿌려 놓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가령, 자살인지 타살인지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시체의 없어진 오른쪽 구두와 물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 나온 주인공의 없어진 오른쪽 구두를 통해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앞선 그 시체가 살해당한 것임을 단박에 눈치 깔 수 있다. 또한 차이나타운에서 지방검사로 지낸 기티스(잭 니콜슨)의 전력은, 본인처럼 총명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결말을 어렴풋이 추론해 볼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는 아주 촘촘히 엮어져 있어 집중하여 보지 않을 경우 많은 단서들을 놓치게 될뿐더러 작가와 벌이는 1:1 두뇌게임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인터렉티브 영화의 원조를 <차이나타운>에 두는 업계의 추측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이유는 LA를 배경도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아는가 모르겠지만, 텍사스처럼 LA 역시 모래 반, 자갈 반에 황량한 바람만이 지랄맞게 극성을 부리는 훵한 황무지였드랬다. 그런데 이 불모지에 불과한 LA가 개척자의 침입에 따른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급속히 거대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범죄와 음모에 노출되었드랬다. 바로 그 타락하는 모습을 물 부족과 연관지음으로써 생기가 말라 가는 도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로버트 타우니는 단순히 물과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어 별 의도 없이 이런 소재를 택하였다는 겸손한 필을 가장한 다소 김 빠지는 의견을 밝혔음에도 불구(그렇지만 실은 자신의 식견을 뽐내는…. 그래 너 잘났다 쓰바야), 시나리오 작가로써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특출 난 장점들로 인해 <차이나타운>의 각본은 영화학과의 시나리오 강의 시 교재로 채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시나리오 소개서와 작법서에도 누락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시나리오 하나로 영화판권뿐 아니라 출판계에서 로열티까지 받아먹는 일타이피의 득도의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각본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 한가지를 소개하자면, 로버트 타우니는 암울하게 끝맺음되는 결말부에 대해서 노골적인 실망감을 표시했드랬다. 왜냐, 자신은 관객을 계몽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임으로 당연히 해피엔딩의 결말을 취함으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의 똥꼬집으로 인해 악이 승리(?)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타우니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부> 이후 선의 가치가 전복된 결말이 하나의 경향이 되어 <차이나타운>이 그 유행을 따랐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또 한편에서는 당 영화가 만들어지기 5년 전,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Charles Manson)에 의해 부인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은 로만 폴란스키의 개인적 이력을 끌어들여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을 내어놓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맨슨에 대한 분풀이를 할 요량이었는지 로만 폴란스키는 악당 역으로 출연 기티스의 코를 베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3.

이 영화의 특징이 단지 시나리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주는 진한 갈색톤의 음울한 영상을 만들어낸 촬영감독 존 A. 알론조의 카메라도, LA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방이 막힌 것 같은 폐쇄감을 창조한 리처드 실버트(production designer), 스튜어트 캠벨(art director), 루비 레빗(set designer)의 공로도 <차이나타운>을 논하는데 있어 빼 먹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

거의 매 장면마다 등장하는 잭 니콜슨은 기티스가 뿜어내는 냉정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우스꽝스러움을 예의 그 속알머리없는 마빡 카리스마와 빛나는 반창고로 감싼 코에 담아 열연함으로서 험프리 보가트가 창조한 느와르 탐정 역의 전형을 최초로 넘어선 배우라는 찬사를 받았다.

에버린 멀웨이 역의 페이 더나웨이(Faye Dunaway)역시 부자집 자재의 품위를 잃지 않으며(이영애의 그것과는 다른) 요부의 도발미까지 풍기는 균형잡힌 연기로 느와르의 팜므 파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반전효과와도 맞먹는 부도덕한 관계로 희대의 아버지 상을 보여준 노아 크로스는 <말타의 매>의 감독인 존 휴스턴이 맡았다. 이를 두고 의미부여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평론가 선상들께서는 그가 등장하였다는 점에 착안 <차이나타운>을 소개하기를 ‘고전 필름 느와르의 마감’이라는 마빡기사로 신 느와르의 출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기가 막힌 작문솜씨를 뽐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각본과 뛰어난 연출력, 인상적인 영상, 배우들의 열연을 고루 갖추고 있는 <차이나타운>은 그 다음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음에도 고작 로버트 타우니만이 각본상을 수상하는 초라한 결과를 낳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꼴려오네 패밀리들이 그들보다 강했던 탓이다.  

그래도 <차이나타운>이 주도한 신 느와르의 흐름은 그 후 변주영화들의 득세를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탐정이라는 소재는 짜바리로 대체되어 짭새 장르의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요부 역시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되어 많은 남성캐릭터들의 오줌보를 지리게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정통 하드 보일드의 플롯을 갖춘 영화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어서 그것을 만나기까지 하드 보일드 팬들은 2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영화가 뭔지 궁금하신가, 그럼 몇 주만 기둘려 보시라. 더 이상의 영진공 업무중단은 없을 터이니 곧 그 실체가 밝혀질 것이다. 그 때까지 고전영화 많이들 찾아 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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