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론 요새>(The Guns Of Navarone)


아마 본 우원이 코 훌쩍 오줌 찔끔거리는 초등학생 때일 거다. 1980년대 중반이던 당시 케베쑤에서는 11월이면 한달 동안 ‘다시 보고싶은 명화’라고 해서 시청자 엽서 투표를 한 적이 있었더랬다.


그리고 가장 많은 엽서를 받은 상위 몇 작품을 뽑아 12월 한달 동안 방영했었는데 거기에 주로 등장했던 것들은 대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 <벤허>와 같은 본 우원 기준에선 길기만 절라게 길었지 재미라고는 쥐뿔도 없을 만큼 지루한 영화들이었다.


근데 딱 한 편만은 너무나 잼나서 눈을 떼지 못하고 테레비에 밀착하여 봤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레고리 펙과 안쏘니 퀸이 출연한 전쟁영화 <나바론 요새 The Guns of Navarone>였다.



1.

우리가 흔히 전쟁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영화는 대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든가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오래 전의 작품 중엔 스티브 매퀸이 출연한 <대탈주> 혹은 울 나라의 이만희 감독이 만든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아닐까 한다. 아님 넘어 가구…


하지만 이들 영화가 전쟁의 참혹상과 이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지금 본 우원이 소개할 <나바론 요새>는 그런 카인드 오부는 아예 쌩까고 철저히 오락성으로 승부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관객의 오르가자미를 애무해줄 그 한가지 일념으로 밀어붙이는 영화라는 소리다.


여기는 지중해 연안의 캐로스 섬. 이곳에는 연합군 소속의 영국군사 2,000명이 독일의 포로로 잽혀있다. 연합군은 서둘러 이들을 구출하려하나 캐로스 섬 앞에 떡 하니 짱 박혀 있는 나바론 요새의 천하무적 왕대포 2문 땜시롱 접근했다하면 백이면 백 실패할 것이 눈에 뻔하다. 이 상황에서 연합군 측은 특별히 엄선한 특공대원 7명을 선출, 이곳에 잠입시키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 과연 이들은 2,000명의 포로를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기대하시라, 두둥~


당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은 Carl Foreman이 Alistair MacLean의 원작소설을 각색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연합군과 독일군과의 전쟁 묘사보다 쥔공들 간의 심리적 갈등이었다. 난공불낙지와 같은 나바론 요새를 고작 7명의 대원이 파괴한다는 주 스또리만 가지고는 영화 내내 충분한 재미를 이끌어내기가 힘들 것이라 판단했을 뿐 아니라 갈등이 쥔공과 적들의 사이에서 오가는 것이 아닌 아군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더한 긴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인지한 까닭이다.


그래서 Carl Foreman은 하위스또리인 대원들간의 갈등을 비교적 중점 부각시키고 있는데, <나바론 요새>를 본 독자들은 기억하실테다. 쥔공 대원들이 나바론 요새로 접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기는지. 캐로스 섬에 상륙하는 첫 관문에서부터 큰 부상을 당하는 대원, 이 부상당한 대원을 데리고 가느냐, 죽여야 하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말로리(그레고리 펙 분)와 밀러(데이비드 니븐 분)의 대립, 그리고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게 되더라도 동료 안드레아(안쏘니 퀸 분)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말로리의 처지 등등등.


당 영화의 이야기가 우수한 건 이와 같은 아군사이의 갈등이 미션 임포턴트를 수행하는데 매번 위기를 불러오고 이것이 결국엔 긴장을 유발, 관객을 극에 몰입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이와 같은 하위스토리는 전체적인 당 영화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긴장감을 한층 강화해 줌으로써 무려 세 시간에 육박하는 상영시간동안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바론 요새>의 연출을 맡은 J. 리 톰슨이 가장 맘에 들어했던 부분이었다.



2

원활한 진행을 위해 당 영화의 감독에 대해 간단한 기초학습부터 썰 풀고 지나가 보도록 하자.


J. 리 톰슨은 영국 출신으로,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인데 <나바론 요새>로 헐리웃에 입성하기 전까지 영국에서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데이비드 린이나 <제3의 사나이>를 만든 캐롤 리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감독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히치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서 똥꼬벌렁한 스릴러를 만들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그를 헐리웃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결정적인 이유였다.


물론 이와 같은 J. 리 톰슨의 특기는 당해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다. 특히 배(船)를 잃은 이후 대원들이 험한 절벽을 위험스럽게 올라가는 장면이 그것인데 여기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그의 연출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카메라의 앵글을 머리 위에서 잡아 깊이를 구체화함으로써 마치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 상황에 처한 인물이 겪을 후달림이 그대로 느껴진다.


게다가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빗소리, 바람소리, 파도치는 소리를 첨가하여 이 장면의 분위기를 음습하게함으로써 더욱 증폭되는 긴장감은 스크린이 아닌 브라운관으로도 충분히 전달이 되니, 7명의 대원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을 올라가는 장면을 전부 낑궜어도 그것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니까.


당 영화에서 이 부분이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여지껏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은 스릴을 잘 살려낸 것도 있지만 실제로 절벽에서 촬영한 것과 같은 사실감이 잘 살아난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장면은 니덜의 생각과 달리 굉장히 간단한 장면이라면 간단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왜냐, 절벽을 오르는 장면과 배경이 되는 파도치는 장면 두 개를 합성한 것에 불과하니까.


절벽을 오르는 장면 같은 경우도 전혀 위험스럽지 않았던 것이 세트장 바닥에 절벽 비스무리한 세트를 설치해 놓고 그 위에 배우가 배 깔고 누워 등반하는 듯한 동작을 취한 걸 정면에서 카메라가 찍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트릭으로도 당 영화는 1961년 아카데미에서 특수효과 부문(Best Special Effects)의 오스카를 낼름하였는데 티 안 나게 합성하는 기술이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발전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결국 위와 같은 아이디어가 한 몫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컴퓨러 한 대면 모든 상황이 다 재현되는 마당이지만 조미료 과다의 동네 떡볶이같은 인공성에 비하면 <나바론 요새>의 촬영은 꽤 낭만적이었다 하겠다. 낭만촬영…



3

보았듯이 <나바론 요새>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볼거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영화다. 게다가 당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 출연한 배우나 화면의 색감을 제외하면 전혀 그 때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맛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련됨이라 함은 추억영화라면 으례히 가지게 되는 지금 관객들의 편견 – 합성/모형티 팍팍나구 특수효과 조악한 -을 무색하게 만드는 촬영기법 및 편집을 가리키는 것인데 폭풍에 휘말린 말로리와 그의 대원들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모형티가 중간에 살짝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당 영화는 놀랍게도 이 장면을 야부리 조금 보태서 거의 <퍼펙트 스톰>에 버금갈 정도로 현실감 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갈기머리 휘날리듯 지랄거리는 파도하며 파도에 먹힐 듯한 어선의 모습 등.


당 영화가 이처럼 스펙타클하고 긴장감 넘실거리는 볼거리에 공을 들인 건, 오로지 적진에 갇혀있는 포로를 구해야한다는 영화 속 쥔공들의 신념처럼 ‘관객의 재미를 사수하라!’는 의도의 일환이다. 그리고 스또리 역시 인간의 죄악 뭐 그런 골치 아픈 걸 건드려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기보단 전쟁에서 가장 오락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재미있을 법하게 구성함으로써 결국 상업영화란 이런 것임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이런 의도는 당 영화의 캐스팅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스타의 출연은 흥행의 보증수표와 다름없다는 인식은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큰 편이었고 더 정확한 편이었다. 당시 관객들의 성향은 영화를 고르는데 그 어떤 것보다 스타의 출연에 더 민감했다고 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그레고리 펙, 안쏘니 퀸, 데이비드 니븐과 같은 스타급 배우가 1명도 아니고 무려 3명이나 떨이로 캐스팅 됐으니 <나바론 요새>는 당시 관객에게 반은 먹구 들어갔다는 소리가 된다.


그런 전차들로 해서 흥행에 성공한 당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에서 감독, 최고영화, 시나리오, 특수효과 등등 모두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1개의 오스카 상을 수상하는 덤도 동시에 얻게 된다.


본 우원은 디뷔디를 통해 <나바론 요새>를 정말이지 20년 만에 다시 보게됐다. 그 감격이란… 근데 대가리가 커서인지 초등학교 때는 전혀 눈치까지 못했던 약점들이 다수 눈에 들어오더라.


많은 요소들을 이야기하려다보니 설명이 부족해 비약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몇 있었고, 이걸 약점이라고 할까 아니면 당시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특징이라고 할까 아무튼 어디선가 누군가가 폭탄을 던지길 기다렸다는 듯 픽하고 걍 자빠져 버리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영화는 초딩 때 느꼈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정도로 잼나고 흥미 있고 신나고 쫌 오바해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똥줄 타게 만들었음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진정 걸작이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한다. 니덜은 어떠냐?


(2003. 3. 9.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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