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가족과 보낼 이유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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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추석이다. 지난해보다 한 달 빠른 추석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 모두 들뜬 기색이 역력하다.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들은 오랜만에 맞게 된 긴 휴가에(근데 지난해에 비해 연휴 기간이 짧다고 불만인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한 동생 내외를 맞을 생각에, 그동안 각자의 일을 하느라 소원했던 학창시절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일 생각에 희색이 만면한 것이다. 그렇게 추석은 누구에게나 풍요로운 연휴일 것 같지만 막상 모두에게 공평한 날은 아니다. 지금의 내게는 꿀맛 같은 휴식, 아니 꿀맛 같은 추석 음식을 맞볼 수 있는 뜻 깊은(?) 날인데 비해 한때 구정이나 추석 연휴가 고역일 시기가 있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지라 친인척들 모인 자리에서 귀에 정이 박히도록 빨리 결혼하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 얘기는 아마 대학 졸업 직후부터 유행가 가사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나를 피붙이로 생각해 나온 충고인지 알고 진심으로 받아들여 고맙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그런 얘기들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닐까 심각하게 의심하게 됐고 지금은 그렇다고 확신하는 쪽에 가깝다. 개인적인 가족사라 공개된 지면에 밝히기에는 썩 유쾌한 사연은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들이 나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아버지는 한때 잘 나가는 사업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남동생, 네 가족이 생활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정이 많은 아버지는 힘든 처지에 있는 친척 분들에게 일자리도 알아봐주시고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면 흔쾌히 돈도 잘 빌려주셨다. 구정이나 추석 연휴, 제사 때문에 친가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면 아버지는 환영받았고 작은 다툼 하나 없이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기억이 쓰라리게 다가오는 건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이후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네 가족을 고립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아버지는 부도 위기를 맞게 됐고 친척 분들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구원을 청한 건 오랜만이기에 친척 분들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도움을 베풀었지만 여러 번 되풀이되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부도를 맞았고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힘든 지경이 되자 친척 분들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이 있는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부모님 험담을 늘어놓았고 제사처럼 모든 가족이 모이는 행사에 먼저 연락을 주는 경우가 점차 줄어들었으며 어쩌다 연락이 와 참석하게 된 친척 자제분들의 결혼식에서는 상식적인 축의금 이상의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주변 분들에게 피해를 입힌 원죄도 있고 그에 반응하는 친척 분들의 반감이 낯설게 느껴져 집안의 대소사가 있어도 부르지 않는 것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은 달랐던 모양이다. 무작정 피하기보다는 기회가 될 때면 얼굴을 비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도 전하고 당장 마련되지 않는 빚의 상환 기간도 늘려볼 심산이셨다. 그렇게 구정이나 추석이 되면 우리 가족은 감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했다. 제사라는 경건한 자리에서 누구도 돈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제사가 끝나면 친척 어르신 분들은 아버지를 향해 돈은 언제 갚을 것인지, 정말 갚을 수는 있는 건지, 돈이 아닌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하는 건 아닌지 등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물론 과거 그 자리를 장식했던 덕담과 웃음은 사라지고 험한 소리와 고성이 대신해 오고갔다. 

지금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핏줄의 허구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20대이던 당시만 해도 어떻게 가족끼리 돈 때문에 으르렁거릴 수 있을까 이해가 안 돼 혼란스러웠더랬다. 혹시나 싶어 밝히지만, 난 우리 아버지가 억울한 입장에 처했고 그래서 친척 분들의 처신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자면 갚지도 못할 돈을 무리하게 빌려달라고 한 아버지의 행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나 역시도 사업 위기를 막기 위해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가족까지 피해를 보게 한 아버지에게 1차적인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로의 입장 차가 존재하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 한 발짝도 양보할 마음이 없다면 단순히 한 핏줄이라는 것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고 서먹서먹하게 있을 자리를 만들 이유가 뭐냐는 거다. 

나는 구정이나 추석 연휴면 벌어지는 귀경 행렬을 볼 때마다 의아해진다. 마치 출석도장 찍듯이 10시간 가까운 시간을 고속도로에 소비해가며 고향집 부모님을 만난 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집으로 돌아오는 소모적인 행태가 아름다운 전통으로 포장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평소에 소홀했던 부모님에 대한, 친인척에 대한 밀린 효도를 그런 고행을 통해 갚는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족 간의 사랑은, 친인척 간의 정(情)은 돈을 빌리고 갚듯 치루는 채무관계로 치러서는 곤란하다. 돈의 가치가 모든 인간적인 가치를 훌쩍 넘어선 작금의 시대상 탓일까. 가족이나 친인척 간의 교류도 금전 다루듯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탄스럽다. 금전적 개념의 가족 사랑이 연휴 때면 벌어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루한 귀경 행렬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가족의 사랑이란 특별한 시간대에, 특별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특별한 개념의 것이 당연히, 아니다. 감동의 질량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랑이 있겠지만 일상에서 쌓이고 쌓이는 사랑의 폭에는 비할 바가 아닐 테다. 가족 간의 사랑은 일상적이다. 그것이 가족의 관계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일상의 사랑이 휘발된 가족은 그저 ‘무늬만 가족’일 뿐이다. 과거와 달리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돈을 위시한 현대의 이기에 의해 깨진 상황에서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속설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은 말세라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오히려 나는 무늬만 친척인 이들보다 교류가 활발한 친구나 이웃이 더욱 가족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돈 문제로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은 친척들과의 모임 자리에 발길을 끊게 됐다. 그래서 구정과 추석 연휴 때면 남들과 달리 서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 때문에 서럽냐고? 전혀. 오히려 귀경행렬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그 시간에 소파에 퍼질러 TV특집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돈 때문에 친척과 감정소비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그리고 더욱 뜻 깊은 경우 한 가지. 추석 음식을 통해 이웃집과 교류하게 되면서 이웃사촌이란 개념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옆집 젊은 부부 집에 꼬마 아이가 둘이 있는데 이들을 귀여워하는 어머니께서 추석 동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잡채를 나눠줬고 이들 가족과 서로 안면을 트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로 발전을 한 것이다. 그전까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던 우리 가족은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사심 없이 왕래한다. 특히 구정이나 추석 연휴 때면 서로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 행사처럼 굳어져 그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도 가끔 친척들에게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결혼을 알리는 소식이 대부분이다. 축하의 자리이니만큼 결혼식에 참석하면 친척 분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결혼 여부에 대한 친척 분들의 질문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진정성의 체감온도는 예전 같지 않다.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난 후 그들이 한 가족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안면 있는 이들의 인사치레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에 반해 옆집의 젊은 부부는 한술 더 떠 나를 볼 때면 좋은 여자가 있다며 중매를 서주겠다고 지겹게 설득을 시도한다. 이상스럽게 그게 꼭 싫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사심 없이 관심을 표하는 그네들의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 가족처럼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도 우리 어머니는 옆집 사람들에게 어떤 음식을 나눠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다가오는 추석을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다. 나도 옆집 사람들에게 엄마가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가져다줄 생각을 하니 올 추석도 마음이 설렌다. (ps.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하루 빨리 친척 분들과 관계가 개선돼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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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1년 9월호

2 thoughts on “불편하게 가족과 보낼 이유있나요?”

  1. 저도 저희 집이 큰집이라 고딩 때부터 전부치기는 제 담당이었죠. 허리 끊어져요;;;
    그러니 대학 다닐 때에도 명절땐 무조건 집에 내려가야 했어요. 제가 안 가면 그 많은 음식들을 엄마 혼자서 다 하셔야 했거든요. 작은엄마들이 멀다는 이유로,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일찍 내려와서 음식만들기를 돕는 일을 거의 안 하셨으니까요. 아무리 차례와 제사에 대해 투덜거리더라도 제가 거부하면 그만큼 엄마만 고생하실 뿐인걸 뻔히 알고 있으니까요.
    뭐 이젠 나이도 드시고 해서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음식을 하시니 제가 부치는 전보다 훨씬 더 모양도 좋고 맛도 좋고 엄마도 고생 안하시고 해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없어졌어요 그래서 올 초 설때는 생전 처음으로 차례 안 지내고 혼자 해외여행 갔습니다. ㅎㅎ 올 추석엔 엄마를 설득해서 어디 놀러가려구요. 엄마도 이젠 쉬셔야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전혀 공감가지 않는 말입니다. 단지 ‘피’만 이어진 거라면요. 가족은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서 그 관계가 유지되는 거지요. 명절때 어쩌다 친척들 모이면 관심의 탈을 쓴 참견질 지긋지긋합니다. 생각해보면, 평소에 교류가 없으니 할 얘기가 워낙에 없어서 맨날 똑같은 얘기 하는 것도 같아요.

    1. 엄마 고생하실 것 같아 명절 때 집에 내려갔다는 부분에 콧등이 시큰해지네요. ㅜㅜ 특히 여자들이 명절 때 너무 힘들잖아요. 저도 어머니가 명절 때 편히 쉴 수 있는 모습 보아서 너무 좋아요. 제 동생이 결혼을 하고 처음 큰 집에 갔을 때 형수님이 동생 부인을 보고 우리도 이제 일거리에서 졸업할 수 있겠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네요. ^^; 그렇게 여자들 고생 시키면서 조상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제가 조상이라면 여자들 고생시키는 거 너무 안 좋아할 것 같아요. 올해는 stefanet님 꼭! 어머님과 함께 추석에 여행 가셔서 즐겁게 놀다오세요. 빠른 인사지만, 추석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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