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 도넛>(Any Da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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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1979년을 배경으로 하는 <초콜렛 도넛>은 한 게이 남성과 그가 돌본 정신지체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대개 실화를 각색한 영화의 경우, 영화의 시작이나 마지막 부분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려주고는 하는데요. <초콜렛 도넛>은 그와 같은 문구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소수자가 부당한 대접을 받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굳이 실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걸 알고 있을 거라는 감독의 판단이 있었겠죠.  

2. 감독은 트래비스 파인인데요. <초콜렛 도넛>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들의 이야기는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의 문제도, 백인이냐 흑인이냐의 문제도, 부자이냐 가난한 자이냐의 문제도 아닌 자녀를 빼앗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보편적인 고통의 문제다”라고요. 여러분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극 중 도나텔로와 짐은 이성애자가 아닐 뿐이지 사랑을 하고 소수자에 대해 동정할 줄 알고 곤경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일 뿐입니다. 동성애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도나텔로와 짐은 자신들과 틀린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를 양육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지만 사실 틀린 것과 다른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지요.

3. 실제로 트래비스 파인은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 딸이 있다고 하죠. (이후 결혼한 현(現)부인과의 사이에는 두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딸과 충분히 지낼 수 있는 시간도 상황도 만들지 못했다고 해요. 극 중에서 루디 도나텔로가 마르코와 관련해 “내겐 이 아이에게 줄 사랑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원래 <초콜렛 도넛>의 시나리오는 실베스터 스탤론과 토미 리 존스가 관심을 가졌다고 하죠. 원래 조지 아서 블룸이라는 작가가 20년도 훨씬 전에 쓴 시나리오였는데 영화화되지 못하다가 트래비스 파인을 만나면서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거죠. 언급한 루디의 말에 트래비스 파인은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4. 트래비스 파인이 영화화를 결정하고 캐스팅에 대해 주인공 루디 도나텔로를 맡을 배우로 알란 커밍을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극 중 루니 도나텔로를 보면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시죠. ‘엑스맨’ 시리즈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실 텐데요. <엑스맨2>(2003)에서 ‘나이트 크롤러’를 연기했었죠. 파란 분장을 하고 순간 이동 능력을 이용해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 침입한 그 돌연변이 말이죠. 트래비스 파인이 알란 커밍을 루디 역에 0순위로 올려놨던 가장 큰 이유는 커밍아웃한 배우라는 점이었죠. 그라면 루디의 심정이나 행동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죠.

그리고 또 하나. 알란 커밍은 19살 때 음악과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 동료들과 함께 캬바레 공연도 꽤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캬바레>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초콜렛 도넛>에서 그는 모사 배우이기는 하지만 캬바레 공연을 하는 건 알란 커밍의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초반에 짐을 만날 때 루디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는 ‘The Great Perfomer’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기도 하죠. 극 중 ‘Come to me’라는 노래를 직접 부르기까지 하는데 노래도 꽤 잘 부르는 배우였기 때문에 트래비스 파인은 물론이고 이 시나리오를 본 동료도 루디 역에 알란 커밍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5. 그리고 또 눈에 띄는 배우는 다운증후군 역을 맡은 마르코 역의 ‘아이작 레이바’입니다. 트래비스 파인의 감독의 말에 따르면, 전국의 다운증후군 협회에 공고를 냈다고 하죠. 배우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아이작 레이바 역시 <초콜렛 도넛>이 첫 출연작이었는데 트래비스 파인 감독은 아이작 레이바의 오디션 테이프를 보고는 그의 커다랗고 환한 미소가 마르코 역에 잘 어울렸다고 합니다. 그런 환한 미소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루디와 짐 커플이 마르코의 눈이 좋지 않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마련해준 돋보기안경이죠.

6. <초콜렛 도넛>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설정과 법정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적으로 각색이 된 건데요. 그러다보니 흥미로운 장치들이 많아요. 안경도 그중 하나죠. 사실 마르코가 가지고 있는 다운증후군은 그가 선택한 게 아니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장애인데요. 그런 장애가 있다고 해서 차별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되는 거죠. 사실 우리는 다운증후군이 아니더라도 한두 가지정도 어떤 장애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를 이겨내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얻고 싶은 얻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축되지 않고 세상을 더 넓고 밝게 보는 것이 중요하죠. 안경은 그런 의미입니다. 마르코에게 더 맑은 시야로 세상을 보라는 의미이면서 관객에게도 세상을 더 넓게 보라는 의미죠.

7. 세상을 넓게 보라는 건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극 중에 루디와 짐과 마르코는 일종의 가족입니다. 유사 가족이죠. 하지만 이들은 소수자입니다. 성소수자이고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약자입니다. 그런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건 인간으로서 우리의 의무죠. 하지만 영화에서도 보여주지만 그런 소수자와 약자를 억압하는 일들이 꽤 많아요. 우리와 다르게 보는 게 아니라 틀리게 보는 게 문제인 거죠. 극 중 마르코의 실제 엄마는 마르코를 보호하는 대신 매일 마약을 하고 아들 눈앞에서 외간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등 부모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8. 초콜릿 도넛은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 마르코가 엄마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는 미장센이 되기도 하죠. 그는 도넛이 아니면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무대에 서는 루디는 그런 마르코에게 도넛은 좋지 않은 음식이라고 하죠. 하지만 마르코가 도넛을 좋아하는 건 아마도 음식을 잘 하지 않고 식사를 잘 차려주지 않으려는 엄마가 싸고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도넛을 밥 대신 줬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점에서 도넛 대신 잘 차린 식사를 준비하려는 루디나 짐이 더 부모로서 자격을 갖춘 셈이지만 그런 배경과는 상관없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악영향을 준다며 부모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건 여전히 이 사회가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결국 그래서 생물학적 엄마에게 돌아갔던 마르코는 루디와 짐을 찾으러 거리로 나왔다가 3일을 헤맨 끝에 거리에서 죽고 말죠.

9. 하지만 트래비스 파인 감독이 마르코의 죽음을 처리하는 장면은 무조건적으로 눈물을 유도하는 식이 아니에요. 억지 감동을 강요하기보다는 기득권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여주며 끝내는 결말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각성을 요구하도록 만들죠. 한국 제목은 <초콜렛 도넛>인데 원제는 <Any Day Now>, 그러니까, ‘언제가 될지는’ 혹은 ‘언젠가’ 정도로 해석하는데 결국 영화의 결말은 여러분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 언젠가는 언제일까요?

<초콜렛 도넛>의 수입사 측에서는 이 영화를 공개하기 전 블라인드 시사회를 했다고 해요. 그중 일부가 이 영화를 보던 중 동성애가 등장했다고 해서 중간에 퇴장했다고 하죠. 그와 같은 사례가 아니더라도, 극 중에서 루디와 짐이 마르코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재판을 할 때 뒤의 방청석을 보세요. 첫 재판에는 두세 명 정도가 앉아 있고 두 번째 재판에서는 짐의 전 직장 상사가 오는 것을 빼면 아무도 없습니다. 그만큼 소수자의 현실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세대를 말하는 것일 테죠.

10. 그래서 <초콜렛 도넛>은 얘기합니다. 이들에 대한 지지를 ‘커밍아웃’하라고 말이죠. 마르코의 죽음 이후 짐은 자신과 루디에게 양육권을 주지 않고 생물학적 엄마에게로 넘긴 판사와 변호사와 직장 상사에게 편지와 함께 마르코의 죽음과 관련 신문 하단에 작게 난 신문 내용을 동봉해 보여주죠. 소수자를 밀어내 기득권만 유지할 게 아니라 이런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커밍아웃’하라고 말이죠. 기득권, 강자의 가면을 벗어 던지라고요.

관련해 루디의 직업이 모사 가수인 건 의미심장하죠. 루디는 자신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여장을 하고,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남의 노래를 따라 불러요. 그것은 온전한 루디의 모습이 아니죠. 마르코를 떠나보낸 루디는 그제야 가발을 쓰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노래를 불러요. 밥 딜런의 곡이죠. ‘I Shall be Released’, ‘나는 해방될 거예요’라는 의미를 가진 노래입니다. 이제는 조그만 세상에 자신을 숨기고 갇혀 살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만 천하에 밝히며 떳떳하게 살겠다는 맹세 같은 것이겠죠. 사실 <초콜렛 도넛>에는 영화 속 배경인 1970년대 유행했던 음악들이 꽤 많이 나와요.

11.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노래는 루디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르코의 방문 앞을 지나갈 때 나오는 음악이었죠. T-REX의 ‘Telegram Sam’인데 ‘샘에게 전보를’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요. 샘은 엉클 샘을 떠올리게 하는데 마치 삼촌에게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하는 것처럼 방문 앞을 지나치는 루디에게 마르코가 ‘Telegram Sam’으로 신호를 보낸다고 할까요. 게다가 T-REX는 마크 볼란을 비롯해 멤버들이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글램록’이라는 명칭을 얻기도 했잖아요. 결국 트래비스 파인이 숨겨 놓은 영화적 장치를 우리가 찾아내 ‘커밍아웃’ 시켜야 하는 것처럼 <초콜렛 도넛>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이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세상을 바꿔갈 것을, 커밍아웃할 것으로 감동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시네마토크
(2014.10.1)

“<초콜렛 도넛>(Any Day Now)”에 대한 8개의 생각

  1.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입장에서는 괜찮았지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이 보기에는 스포일러성 문구들이 여럿 보이네요. 특히 8번과 9번.. 제가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리뷰를 읽었다면 불쾌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리 최소한 경고를 해주셨더라면 어땠을까요?

    1. 안녕하세요 ^^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말씀처럼 스포일러 경고 문구 달도록 하겠습니다.

  2. 리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관심있는 영화여서 결말 스포를 미리 보고싶었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보고 더 이해력있게 영화관람을 원했는데 이 리뷰덕에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 )

    1. 안녕하세요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근데 제가 쓰다보니 스포 경고를 남기지를 않았네요 ^^;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1. 예, 미드에도 많이 나온다더라고요. 제가 미드를 안 봐서 그러는데 ^^; < 초콜렛 도넛>에서의 알란 커밍도 엄청나게 매력적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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