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Primo A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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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은 만고불변이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랑도 ‘조각’처럼 한다. <첫사랑>(2004)의 두 주인공 비토리오(비타리아노 트레비잔)와 소냐(미셸라 세스콘) 역시 조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금속 공예사로 활동하는 비토리오와 화가를 위해 모델을 서주는 소냐는 블라인드 데이트로 만난 사이다. 첫 만남의 서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비토리오는 조각 같은 몸매의 소냐가 맘에 들고, 그녀 역시 자상해 보이는 그가 싫지 않다.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 이들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비토리오는 소냐에게 좀 더 날씬해질 것을 요구한다. 

<첫사랑> 미국 포스터의 태그라인은 ‘욕망에 대한 공포영화’(A Horror Movie about Desire)다. 즉, 달콤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육체에 대한 집착이 낳은 비극적 사랑에 대해 다룬다. 그것은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비토리오의 유별난 관점에서 기인한다. 정신적인 사랑이 퓨즈를 꽂아야 육체적인 사랑으로 전이된다는 항간의 속설과 달리 그는 상대방의 육체에 혹해야 비로소 정신적인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남자다. 비토리오의 사랑이 에로스(Eros)와 구별된다면, 소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시각적으로 완벽한 형태의 육체를 갈구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 욕망은 소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비토리오의 요구를 차치하고, 그녀도 현재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비토리오와의 첫 만남 당시 소냐가 그에게 던진 첫 말은 “제 몸매가 맘에 들지 않나요?”다. (이에 비토리오는 “좀 더 날씬한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촬영에 능한 감독답게 비토리오와 소냐가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3분간의 롱테이크를 담당했다. 그때 카메라는 마치 상대방의 몸매를 훑듯이 장면을 찍어나간다. 

이는 음흉한 남자의 눈빛이라기보다는 오브제를 관찰하는 조각가의 시점에 더욱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비토리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카메라는 등장인물, 특히 소냐를 조각하듯이 촬영한다. 처음엔 고정된 구도로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덩어리를 깎아가듯이 온 육체를 내지르고, 마지막 순간엔 미술품을 감상하는 양 섬세하게 소냐를 지켜보는 식이다. 이렇게 비토리오는 조각가의 마인드로 모델을 물색하듯 여자 친구를 고르고 완벽한 형체를 빚듯이 사랑을 나눈다. 

다만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지 못하는 조각과 달리 인간의 사랑에는 자유의지가 작용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육체 역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법이다. 비토리오가 소냐의 몸매를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하겠다며 먹을 것을 관리하려들수록 그를 향한 그녀의 거부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종국엔 파국을 맞이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하다.

비토리오의 사랑은 비록 육체가 결부되어 있지만 이상주의적이며 관념론적인 사랑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플라토닉 러브’를 연상시킨다. <첫사랑>도 그렇지만 마테오 가로네는 전작 <박제사>(2002)에서도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남자를 내세웠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드러난 마테오 가로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정신과 육체의 균형이고 무엇보다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랑은 결국 공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첫사랑>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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