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의 연상호 감독이 신작을 발표했다. 군대 이야기를 다룬 30분짜리 단편 <창>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연상호 감독의 현실인식은 여전히 날카롭다.
<돼지의 왕> 때문에 굉장히 바쁜 일정을 보냈을 텐데 언제 또 <창>을 만들었나?
<돼지의 왕>을 2011년 3월 정도에 마쳤는데 이후 할 게 없었다. 10월이 부산영화제였으니까 그때까지는 편집만 하면 됐다. 그런데 편집이란 게 편집기사와 머리로 고민하는 거지 육체적으로 큰 힘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콘텐츠진흥원 단편제작에 응모해 지원을 받게 됐고 그러면서 <돼지의 왕> 마지막쯤에 <창>이 겹쳐서 들어갔다. <돼지의 왕> 개봉과 함께 인터뷰 다니는 동안 내내 <창> 작업을 했다.
군 복무 시절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육군수첩에 이야기를 적어놓지 않았나. <돼지의 왕>도 그중 하나이고. 모범적인 군인으로 평가받는 병장 정철민과 소위 ‘고문관’으로 불리는 이병 홍영수 간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다루는 <창>도 그런 경우인가?
<창>은 제대하고 나서 썼다. 단편 <지옥:두 개의 삶>(2004)을 작업하고 있을 때였는데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 (최)규석이는 당시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도, <습지 생태보고서>도 반응이 좋아서 굉장히 잘 나갔다. 그때 규석이에게 인권위원회에서 ‘사이시옷’이라고 하는 기획의 의뢰가 들어왔다. 원고료가 셌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 규석이가 하려는 것과 맞는 시나리오가 두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창>이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인권위에서 맘에 들어 했고 그걸 규석이가 만화로 그려 연재했다.
그걸 이번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는 뭔가?
인권위의 <별별 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가 있다. 지금까지 두 편이 나왔는데 나는 한 번도 참여를 못했다. 공모라 매번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번 기회에 한 번 얘기해보고 싶었다.
원작은 최규석 작가와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때 규석이가 시도하려고 했던 콘셉트가 내가 가진 생각과 비슷했다. 인권에 대한 작품을 보면 대개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선이 분명할 정도로 이분법적이다. 많은 작품들이 가해자를 악마같이 그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걸 비틀어서 만들고 싶었다. 보통 관객이 피해자 입장에서 감정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데 가해자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극 중 사건의 대부분이 실제 경험이라고 해서 놀랐다.
정철민은 군 복무 시절 나의 모습이고 실제로 영창에도 갔다 왔다. 100% 직접 체험한 이야기다. 사실 시나리오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다. 그대로 가져와 구성만 했을 뿐이지 딱히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을 텐데 그때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이야기를 쓴다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그런 감정은 별로 없었다. 이야기가 없어서 문제지 딱히 가슴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창>은 자살 기도를 하는 홍영수 이등병이나 그 원인이 되는 정철민이나 가해자, 피해자의 구분 없이 관객에게 모두 마음이 가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쓸 때 누구의 입장에 서게 되던가?
특별히 감정이입 하지 않고 전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시선이 더 들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시 군대에서 나는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을 겪으면서 아닐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군대에서 표준적인 군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다. 군대 내에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에 대해 말하는 건 힘들다. 자기의 옳음만을 주장하는 게 옳은 거 같지 않다. 그래서 <창>이 말하는 바가 절대적으로 옳은 시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 이런 시각도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인가, <돼지의 왕> 때는 극 중 주인공들의 분노가 눈에 보일 정도이던데 <창>에서는 그걸 억누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연출이 최대한 안 들어가게끔 만들었다. 음악 같은 경우,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하면 없다. 사실 <창>은 작업 시간이 부족해서 연출을 볼 시간이 없었다. 그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불안감이 컸다. 그럼 아예 연출 없이 만들자고 콘셉트를 잡았다. 연출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만들어보자. 그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건 군대라는 곳이 군인들의 행동이나 감정을 억누르지 않나. 오히려 잘 맞은 거 같다.
<창>이라는 제목도 역설적으로 창이 없는 내무반, 그러니까 군대의 폐쇄적인 환경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내가 근무했던 곳에는 실제로 창이 없었다. 그런데 영창을 갔다 오니까 창문이 생겼더라. 근데 <창>이란 제목이 사람들에게 ‘노는 계집 창’으로 받아들여져서. (웃음) 영화로 만들 줄 알았으면 ‘창문’처럼 다른 제목으로 했을 텐데 말이다.
<돼지의 왕> 이후 입지가 많이 달라졌다. 차기 장편작 <사이비>에 관심들이 많다.
<사이비>를 가지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참여했는데 해외나 국내나 관심을 많이 보여주셔서 열심히 만들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사이비>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돼지의 왕> 때와 비교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환경이 좋아졌다.
그만큼 <돼지의 왕>은 남다른 작품이다.
0에서 1로 가게 해준, 내게는 의미가 큰 작품이다. 칸영화제 감독주간의 스크리닝을 하기 전날 새벽에 테스트 시사를 했다. 너무 못 만들었더라. 이거 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적으로 좋은 거와 영화의 만듦새가 좋은 거와는 다르잖나. 영화는 관객이 판단해주는 거라 아무도 모르지만 <사이비>는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든다.
<사이비>는 잘 알려졌듯이 사이비 종교에 대해 다룬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그리고 믿음에 대한 얘기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아주 기본적으로 깔고 있지만 아주 시원하게 비판을 해주겠지 하고 보신다면 ‘멘붕’에 빠질만한 내용이다. <사이비>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가 크다. 한국에서는 사회 현상에 대한 믿음이나 자기만의 사회 정의에 대한 믿음이나 모든 믿음을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믿음을 깰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신이 믿고 있는 게 사이비 종교를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꼭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촛불집회 보면서 그랬다. 나도 촛불집회를 열심히 나갔던 사람 중 한 명이다. FTA가 노무현 정권 때 시작됐다. 그런데 대중이 노무현 정권 당시의 FTA를 대하는 방식과 촛불집회가 있었던 이명박 정권 때의 FTA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심하게 달랐다. FTA 초반만 하더라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검증부터 해서 시선이 안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에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사이비>는 거기에서 출발한 얘기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특정 사안에 대해 모순되는 반응들이 종종 나타나고는 한다. 감독님의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드는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야기 삼을 소재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정권이 바뀌면 더욱 디테일한 이야기가 가능해질 것 같다.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독재 관련한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우리 사회가 70년대 담론을 못 벗어나고 있는 거다. <돼지의 왕>은 평가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계급론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계급론에서 출발을 한 건데 그 이상의 얘기가 안 나왔다. 권력, 빈부격차, 학원폭력 거기서 그쳐 버렸다. 사회의 프레임이 그러다보니 영화의 해석마저도 그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게 너무 아쉽다. <사이비>는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데 그때쯤이면 사회적으로 봤을 때 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프레임이 가능해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movieeek
NO.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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