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 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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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에게는 특유의 캐릭터가 있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최근 가수 은퇴를 번복하며 새롭게 발표한 트로트 댄스곡 ‘문을 여시오’의 뮤직비디오다. 여기서 그는 흰 와이셔츠에 검은 추리닝 바지, 그리고 1:9의 가르마 머리를 하고 나와 무표정으로 코믹한 연기를 펼쳐 보인다. 오랜만에 활동인 만큼 변신보다는 기존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친 것. 뮤직비디오 속의 모습처럼 대중들이 임창정에게 기대하는 것은 삼류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이를 일러 속된 말로 ‘싸구려’, 고급하게는 ‘B급’이라 부르는데 발라드 가수로도 정평이 나있는 임창정은 오히려 배우로서 그와 같은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왔다. <비트>(1997)에서 극 중 정우성의 허풍쟁이 친구로 출연해 “내가 17대 1로 싸운 사람이야”와 같은 코믹한 유행어를 남겼고 <색즉시공>(2002)에서는 성(性)에 환장한 변태 대학생으로 등장, 화장실 유머와 같은 다소 지저분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20편이 넘는 영화 출연작 중에서 절반 넘게 채워진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물이지만 <파송송 계란탁>(2005) <청담보살>(2009) <육혈포 강도단>(2010) <불량남녀>(2010) 등의 제목에서 연상되듯 임창정 캐릭터는 코미디 쪽에 방점이 찍힌다. <공모자들>(2012)에서 그간의 코믹한 이미지를 버리고 냉혈한 범죄자를 연기해 연기 변신에 성공했던 그는 <창수>에서 생애 첫 느와르 영화에 도전한다.

임창정이 맡은 역할은 제목 그대로의 창수. 극 중 창수의 직업은 징역살이 대행업자다. 타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형을 살고 나와 돈을 버는 밑바닥 인생인 것이다. 그야 말로 미래가 없는 생활을 하는 창수의 이름을 한자로 풀면, ‘슬픈(愴) 목숨(壽)’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의 운명이 슬프다는 것이지 캐릭터 자체는 그와 상관없이 슬픈 내색이라곤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히 마주친 여자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창수 인생에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햇빛이 비추기 시작한다.

임창정은 창수의 연기를 두고 “안 웃기면서도 영화가 재밌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데 확실히 이전의 코믹한 캐릭터와는 변화한 인상을 준다. 사실 창수가 짝사랑하는 여인은 지역 폭력조직 보스의 여자이면서 2인자의 내연녀로, 그 둘에게서 목하 도망 중인 상태다. 이런 사연을 알 리 없는 창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니, 비극이 예정된 캐릭터라는 점에서 임창정 연기 인생의 가장 강력한 변신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는 웃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대신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진심이 창수의 캐릭터를 빽빽이 채우고 있다. 임창정은 그 점이 맘에 들었다. “비록 밑바닥 삼류인생을 사는 인물이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순수함을 지녔다. 자기만의 진심을 갖고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캐릭터다.” 코믹한 캐릭터를 맡을 때면 슬랩스틱에 가까운 발산 연기로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면 <창수>에서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마음속에 푹 누른 채 관객의 동정을 사는 쪽에 가깝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부모도 모른 채 살아온 창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돌이킬 수 없어도 좋으니까, 딱 한 번만 내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고 싶다”는 대사는 징역살이 대행업자라는 직업만큼이나 창수의 지난했던 삶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것이 어디 창수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창수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없는 대다수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임창정의 입장에서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 어느 영화보다도 중요했다. “이번 역할은 ‘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며 여러 사람에게 묻고 연기하며 좀 더 리얼하게 창수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창수를 사랑과 위험에 동시에 빠뜨리는 여인을 연기한 손은서는 임창정의 연기에 대해 “임창정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그 인물이 된 것 같아서 신기했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극 중 창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동생 역할을 맡은 정성화는 배운다는 자세로 임창정과 호흡을 맞췄다. “매 신, 매 대사 때의 자연스러움에 있어서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다.”  
 
접대성 발언이 아닌 것이, <창수>는 과연 임창정이 없었다면 영화적 재미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느와르는 비열한 도시에서 예정된 패배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 중심에 서지만 그의 발악한 사연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창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지만 임창정의 걸출한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임창정이 연기한 삼류 캐릭터를 일러 싸구려 혹은 B급이라고 평가하지만 그것은 결코 하대의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가깝고 감정이입하기 편하다는 상찬이다. 임창정은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명멸하는 엔터테인먼트의 별 들 사이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갖는 배우인 것이다.

시사저널
NO.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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