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너무해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호 ‘마흔 즈음에’ 기사가 나간 직후 나의 발목 부상을 염려하는 독자들의 쇄도하는 메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농담이다. 몇몇 주변 지인들로부터 실제로 농구는 못하는 게 변명은 거창하다며 엄살떨지 말라고 타박만 받았을 따름이다. 억울했다. 부상 부위를 직접 보여주고 싶었지만 치료를 받아 부기가 가라앉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말 변명으로 오해받을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대신 속으로만 ‘뛰어난 내가 참아야지’ 자위하며 태연한 척 웃어보였다. (이 또한, 농담이다.)

다만 요즘은 농구 대신 요가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더 이상 농구를 뛰기 힘든 발목 상태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의사선생님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오른쪽 발목에 주어야 할 힘을 부상 때문에 왼쪽 발목으로 너무 보내다보니 몸의 균형이 왼쪽으로 쏠렸다며 요가를 권유했다. 요가는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하게 만들기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는 데는 탁월한 운동이라는 것이 의사선생님의 설명이었다.

망설여졌다. 정적인 운동이라 흥미가 동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여자들이 하는 운동을 어떻게 남자인 내가 할 수 있겠냐는 일종의 반발심도 들었다. 의사선생님은 웃으면서, “농구는 여자도 합니다. 운동은 남녀노소 다 즐기는 거예요. 남자가 요가 하는 게 뭐 어때서요?”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런 사람이 침 맞을 때는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하세요?” 꼭 그렇게 대놓고 말한 건 아니지만 의사선생님은 그런 뉘앙스로 대화를 이끌어가며 결국 내가 요가를 하게 마음먹게끔 유도했다.

결과부터 말해 이글을 쓰는 지금 요가를 한 지 한 달이 되었다. ‘핫요가’라고 하여 30도가 훌쩍 넘는 방안에서 한 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죽어라 몸을 비틀고 있다. 워낙 뜨거운 곳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체중 감량 효과를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처진 몸을 위로 올리는 운동이 주를 이루다보니 가슴 업, 힙 업이 저절로 이뤄지는 신비한 현상까지 경험하게 됐다. 그래서 여자들이 월등히 많구먼, 왜 여자들이 요가에 열광하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다만 요가학원에 여자들이 월등히 많다보니 남자로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다니는 요가학원에 등록하기까지 개인적으로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의사선생님의 요가 권유를 받고 처음 찾아간 학원은 집에서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도 첨단이고 굉장히 깔끔해 호감이 갔는데 등록은커녕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돌아 나와야 했다. 직원부터 강사, 그리고 수강생까지 모두 여자 일색이었다. 그러니까 여자 전용, 남자에게는 등록이 허용되지 않는 학원이었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편안히 요가를 즐기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거 성차별 아니냐며 직원에게 우스개처럼 항의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요가학원에는 여자 수강생이 절대적이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도 남자가 많아야 두세 명, 이삼십 여명의 여자 틈바구니 속에서 나 홀로 남자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보니 내 주변에 여자들이 앉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잦다. (뭐, 내가 여자에게 호감을 주는 타입이 아니라는 점도 조금, 아주 조금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요가 동작의 특성상 여자 입장에서 남자 앞에 자리를 잡는 것이 불편할 것이다. 단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빼 도드라지게 하는 동작이라면 여자 입장에서 뒤에 남자가 있는 것이 마음 편할 리가 없다. 여자전용 요가 학원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다시 알아본 곳이 지금의 요가학원인데 집에서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온전히 낫지 않은 발목으로 오랫동안 걷는 게 불편하지만 요가가 주는 효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정작 불편한 건 남자탈의실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회사를 다니는 까닭에 일이 많다 보면 곧바로 요가학원으로 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맘 편히 옷을 갈아입을 공간이 필요한데 남자탈의실이 없다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남자화장실 같은 곳에서 갈아입거나 집에 들러 요가에 맞는 옷을 갖춰 입고 가야한다. 그럴 때면 학원에 늦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근데 이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 항의를 할 수 없는 것이 나 하나 때문에 별도의 남자탈의실을 만들어달라고 하기에는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에 처하다보니 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차별이 더욱 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다. 왜 미스터피자는 여자에게만 할인이 적용되는 우먼스데이를 만들어 남자들만 비싼 가격에 피자를 먹게 하는지, 나이트클럽과 바는 여자들에게 무료 안주와 술을 제공하면서 남자들에게는 비싼 술값을 지불하게 만드는지, 무수히 많은 여자 대상의 문화이벤트 속에서 남자들을 위한 행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지. 소수자의 입장에서 서서 직접 세상을 경험하게 되니 사소한 것 하나부터 이처럼 부조리한 경우가 없다.

안다. 위에 언급한 차별의 경우들이 실은 차별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것들이라는 것을. 여자라는 이유로 고릿적부터 그네들이 매일 같이 겪고 있는 생활 속의, 사회 속의 차별에 비하면 내가 요가 때문에 처한 상황은 사실 차별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는다고, 피자 할인 못 받는다고 차별 운운하는 이 글을 보면 여자 독자들은 피식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차별을 받아서 힘들다는 게 아니라 직접 차별의 대상이 되어보니 차별이 생활화된 여성의 입장이 머리가 아닌 피부로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 땅의 수컷들이 좀 더 차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여성의 권리가 과거와 달리 급격하게 신장했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여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극장 가까운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하루에도 여러 번 입장과 관련한 실랑이를 보게 된다. 태반이 상영관 반입이 금지된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가려는 남자 관객과 여자 직원간의 대립이다. 남자 관객들은 대개 입장을 저지하는 여자 직원에게 쌍욕을 섞어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남자 직원이 만류해야지만 그제야 못이기는 척 음식물을 맡겨두고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꼭 여자들에게 불만의 눈초리를 쏘아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여성전용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설득된다. 차별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차별에 대응하고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차별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가하는 차별의 폭력은 고스란히 돌아오게 돼있다. 아니 현재 남자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차별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글만 해도 평생 접해보지 못한 차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연상되지 않는가. 벌써 나부터라도 당장에 여자에게 차별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TV를 보면 이런 광고가 나온다. 녹초가 되어본다, 의심해 본다, 복잡해 본다, 싸워도 본다, 불쾌해 본다, 억울해 본다, 포기해 본다, ‘당신의 입장에 서본다. 그렇게 우린 오늘도 당신이 되어본다.’ 한 인터넷 쇼핑 회사가 새롭게 시작한 감성광고로,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타인에 대한 덕목과 사회적 태도를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비단 여성에 대한 차별 뿐은 아닐 거다. 고도화되고 다문화된 사회는 반드시 소수자를 양성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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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1년 5월호

8 thoughts on “차별이 너무해”

    1. 안녕하세요 stefanet님 ^^ 그래서 저는 요즘에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고 집에 일찍 온 후에 옷 갈아 입고 요가 학원에 가요. 오히려 제 개인 시간은 늘어난 것 같아요 ^^; 이 정도 불편 쯤이야 ㅋㅋ

  1. 아…. 진정 아름다운 글이에요 아저씨^^ 근데 핫요가하시는거였군요. 저도 지난겨울에 핫요가 중의 핫요가라고 하는 비크람요가를 잠시 하다가 과도한 에너지발산에 기겁하고, 이제 다시 조용한 요가로 선회했어요. 체스트업 힙업효과 계속 누리시고요~ 발목부상도 어서 쾌차하세요!

    1. 제가 하는 게 핫요가였군요 ^^; 전 필라테스인줄 알았어요 ㅋㅋ 온도가 38도고 습도가 68%라고 하더라고요 어제는 너무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근데 머리는 맑아지더라고요 ^^

    2. 밴드나 볼을 사용해서 하는게 필라테스인 것 같던데, 그게 그거겠죠^^ 예전 선생님 말씀으로는,,몸에 허락하는 자세까지만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도중에 힘들 때는 다 끝다고 누워서 쉬는 10분을 기대하면서 버텨요^^

    3. 필라테스 몇 년 전에 받아봤는데 꽤 괜찮았어요!
      꼭 밴드나 볼만을 사용하는 건 아니구요, 테이블이나 각종 기구를 이용하기도 해요.
      유연성도 길러지고 근력도 길러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듯.
      필라테스는 자세 교정도 해줘야 하니 일대일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아야 할텐데 그러려면 강습료가 비싸지죠…;;

    4. 필라테스를 하고 싶은데 제가 다니는 학원에서 5월부터 수강료가 인상된다고 방침을 정해서 오늘 미리 3개월을 끊어 버렸어요. 앞으로 7월까지는 뜨거운 요가를 계속 하게 됐어요. 그 후에 필라테스로 알아봐야겠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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