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온 남자들> 양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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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양익준이 ‘집 나온 남자’로 돌아왔다. 철없는 남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을 구심점 삼은 이하 감독(<여교수의 은밀한 사생활>(2006))의 신작 <집 나온 남자들>에서 아내 찾아 집 나온 음악평론가 지성희(지진희)의 절친한 친구 황동민으로 분한 것. 이번엔 메가폰을 놓고 배우로 참여했지만 지난해 <워낭소리>와 함께 한국 독립영화의 붐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똥파리> 이후의 차기 출연작이라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모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기자시사회부터 그에게 쏟아진 관심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극중 팬티만 입고 등장하는 장면에 대한 어느 기자의 질문에 “지금 여기서 보여줄까요?”라며 셔츠를 풀어헤친 행동이 현장에서의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 소리에 힘입어 검색어 순위에 올랐을 정도. 홍보사 관계자의 귀띔에 따르면, 영화를 만든 이하 감독이나 배우 지진희보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실정이란다.

잘 알아주지 않는 독립영화인에서 이제는 유명인이 된 <똥파리> 이후의 양익준이 궁금했다. 배우로 출연한 <집 나온 남자들>에서의 경험에 대해 묻고 싶었고, 여전히 해외를 돌고 있는 <똥파리>에 대한 현지 반응이 듣고 싶었으며, <똥파리> 이후 연출하게 될 새로운 작품 소식도 알고 싶었다. 양익준과의 인터뷰는 4월 2일 압구정동에 위치한 카페 ‘조제’에서 1시간 30분 동안 이뤄졌다. 그는 여느 배우와 달리 말을 꾸미는 법에 능숙하지 않았고 포장하는 법도 몰랐지만 대신 솔직하고 진솔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고, 우회하지 않지만 올 곧은 양익준의 말 속에는 그의 영화관, 연기관, 삶의 가치관이 가감 없이 응축되어 있었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이하 감독이나 배우 지진희, 이문식보다 더 많은 인터뷰를 한다고 들었다.
양익준(이하 ‘양’) 이문식 선배와 (지)진희 형이 바쁘니까 내가 일선에서 뛰고 있다. 

패션지에도 등장했더라. 굉장히 패셔너블한 옷을 입고 말이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미지였다. (웃음)
홍보 차원에서 컨셉을 맞추다보니 입게 됐다. 내가 익숙하지 않더라도 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입다 보면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한데 입고 나서 거울 보면 ‘아, 이거 괜찮은데’ 이런 느낌도 든다. (웃음)

언제까지 이렇게 홍보 강행군인가? (웃음)
4월 8일 개봉 전까지 하고, 그 후에도 좀 할 텐데 그때까지 할 애기가 별로 없을 것 같다. (웃음)


<집 나온 남자들>에 출연하다

영화를 만든 이한 감독과는 원래 아는 사이였나?
전혀 몰랐고 장편 데뷔작인 <여교수의 은밀한 사생활>과 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단편 <1호선>(2003)만 본 상태였다. 두 영화를 재미있게 봤고 촬영 들어가기 전에 술 취해서 3분의 2 정도 분량을 ‘으하하하‘ 웃으면서 다시 봤다. (웃음)

그럼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출연을 결정한 건가?
외국에 있을 때였는데 메일로 시나리오를 받았다. 일주일 정도 안 읽다가 PD님에게 연락이 왔다. 읽어봤냐? 안 읽어봤습니다. 그 후 읽고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같이 합시다.’ 해서 출연 결정을 내렸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선택 지점들이 서로 있었기 때문에 참여했다.

출연 결정 당시 해외 영화제에 참석한다든가, 차기작을 준비한다든가 하는 등의 다른 스케줄은 없는 상태였나?
별로 없었다. 제의 들어오는 것들은 모두 거절 상태였고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집 나온 남자들>은 최대한 내가 불편하지 않게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트레스 안 받는 것들을 찾았는데 그 지점에 <집 나온 남자들>이 가장 부합했다. 촬영 들어가고 나서 밴쿠버 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를 4~5개는 못 갔다. 딱히 스케줄을 잡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똥파리> 때에 비해 살이 엄청 불었다. <집 나온 남자들>의 황동민 역할 때문에 일부러 찌운 건가?
저절로 쪘다. <똥파리> 현장 촬영 때까지는 계속 움직였다. 다만 편집부터는 앉아서 하다보니까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 후로 몸무게가 8kg 정도 늘었다. 황동민 역할은 살을 빼지 않아도 될 캐릭터 같아서 놔뒀다. 굳이 몸을 바꾸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본인의 상태와 황동민 역할 간에 교집합이 있다고 생각한 건가?
나와 흡사한 부분으로 밀고 나갔다. 황동민이라는 사람은 내가 캐스팅되는 순간부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연기를 표현할 때는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독님에 대한 개념이 없어진다. 황동민을 너무 염두에 둔다면 연기가 말려든다. 진희 형도 그렇고 이문식 선배도 그냥 그분들 모습으로 나왔다. 그게 제일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내게 없는 걸 어떻게 만들어내. 내 안에 있으니까 다 발현이 되는 거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연기자들은 굉장히 자유로워야 한다. 내가 경험한 축에서는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 현장은 굉장히 분위기가 좋았다.       

현장에서는 호칭을 뭐라고 부르던가? 연기와 연출을 병행했지만 <똥파리> 이후 감독의 이미지가 강해지지 않았나.
이하 감독님은 그냥 익준 씨 그렇게 불러줬다. 감독님은 나를 배우로써 만난 거니까 익준 씨 이런 게 편한 거다.

많은 작품에서 연기를 했지만 다른 감독의 연출작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해 영화 전체를 이끈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편에서는 30~40편, 상업영화에서는 단역이나 조연급으로 대여섯 편 출연했다. <똥파리>를 제외하고 배우로 참여해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로 영화를 끌고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럴 때 임하는 태도는 예전과 달라지나?
크게 다른 점은 못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캐릭터에 맞게 표현하면 되는 거니까. 이미 <똥파리>에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는 편하고 즐겁게 연기한 기억 밖에는 없다. 뭔가 역할의 크기 때문에 태도가 달라진 건 잘 모르겠다.

하긴 원래 그런 점에 대해서 신경 쓰는 스타일도 아니고.
잘 알면서. (웃음)

영화는 어떻게 봤나? 의도한대로 연기가 됐나?
의도한 게 없어서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재미있게 봤다. 관객들도 좋아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재미있게 봤는데 싫어들 하시겠어요. (웃음) 단순한 믿음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너도 날 좋아할 거야 하는 믿음이 있다. 스스로에 대한 식견이고 바라봄이지만 나는 내가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내가 출연했다는 특수성은 있지만 보통사람인 내가 재미있게 봤는데 다른 보통 사람들도 재밌게 보지 않을까 하는 믿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재미없게 보시라. (웃음) 그런 거에 대해 나는 크게 예민하거나 민감하지 않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하다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거지만 일상의 움직임과 영화 속 움직임 사이에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행위하고, 연기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써야 하는데 머리를 쓰면 머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이하 감독님과도 사전에 내가 제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촬영에 들어갔다. 나는 리허설을 하면 별로 안 좋다. 촬영할 때 먼저 리허설을 통해 감정이나 이런 걸 표현하면 이미 한 번 해버린 게 되니까 촬영할 때 재미가 없다. 새로운 것들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리허설이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건성건성하게 된다. 옛날에 그런 말 있었잖나. ‘리바이벌 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본 촬영을 위해 아껴두는 거다. 그 순간에만 나올 수 있게끔 몸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NG를 낼 경우, 연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 근데 <집 나온 남자들> 촬영 현장에서는 가장 NG를 많이 내는 배우였다고 하던데.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많이 냈다. 대사도 잘 까먹고. 대사를 너무 잘 외우면 외운 티가 난다. 감정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언어를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이성으로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찍을 장면의 상황과 느낌만 알고 가도 입은 자연스럽게 뚫린다. 만약 연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합시다, 라고 할 때 나는 경험이 있다 보니까 준비하지 않아도 어느 자리에서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 철저히 준비해가도 그거 보다가 잘 안 돼서 덮어버린다. 강의나 특강 같은 거 할 때 그렇게 되더라. 자꾸 정리한 걸 보게 되니까 신경이 쓰여서 자연스러운 얘기가 안 나온다. 내가 연기자로써 표현할 때도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양익준 연기의 힘은 자연스러움이다?
NG가 두려워서 감독이나 배우나 리허설 엄청 하고 그러면 그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너무 준비를 해갖고 오면 머릿속에 준비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움직이니까 새로운 것들에 대한 적응이 잘 안 된다. 현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사실적으로 해야 한다. 어떤 장면의 상태나 감정을 이해하고 오면 대응력이 생기고 현장에 있는 것들을 잘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NG가 더 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더 안 나올 수 있다. 다만 NG가 난다는 전제로, 그게 두려워서 나 같은 사람들이 리허설을 많이 하고 연기를 익숙한 무엇으로 만들면 내가 가진 자연스러움을 뽑아낼 수 없다.

모든 배우의 관계가 그렇지만 특히 당신에겐 감독도 그렇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했겠다. 감정이 점화되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연기가 안 되는 스타일이니까.
빨리 친해지려고 했다. 진희 형 보자마자 ‘볼따구’도 잡았다. 빨리 친해지지 않으면 부담감을 가지고 연기할 수밖에 없으니까. 되게 노력했다. 촬영 첫날에도 한 테이크, 두 테이크 찍고 나서 뭔가 불편한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에 중간 휴식 때 잠시 나가서 ‘아!’ 소리 지르고 들어왔다. 자꾸 풀려고 노력했다. 어떤 장면을 할 때 난 처음에 다 뱉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세 번째 가능성이 있다는 것 때문에 첫 번째 테이크에 다 뱉어놓지 않으면 정리가 안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진희 형 머리도 쓰다듬고 그랬는데 잘 받아주시더라.   

이번 영화처럼 세 남자가 어우러지는 경우에는 서로간의 유기적인 호흡이 제일 중요한 감정 혹은 상태였겠다.
좋은 관계가 유지되면 호흡은 절로 맞는 것 같다. 호흡을 맞추겠다고 생각하면 선수 치는 거다. 선수 칠 필요 없다. 만나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대로 가면 된다. 물론 메커니즘 앞에서 연기를 해본 분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인지가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표현을 하다보니까 어울림들이 잘 드러났다. 이렇게 맞추자, 저렇게 하자 이런 것들은 기술적인 부분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적으로는 자유롭게 표현을 했다. 건강한 이성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감정으로 풀어내는 게 맞는다고 본다.  

가장 호흡이 중요한 장면, 가령 지성희와 황동민이 티격태격 한다든지, 유곽(이문식)까지 셋이 모여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의 촬영은 가급적 촬영 후반에 잡는 것이 유리했겠다. 호흡이란 건 아무래도 익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아무래도 그렇다. 초반에는 덜커덕 거리기도 하지만 2~3회차까지는 그러는 게 맞다. 그걸 불안해하는 감독들은 통제하게 되는데 두고 봐주셔야 하는 것 같다. 덜거덕 거리는 것까지도, 심지어 NG 장면도 편집할 때 고귀한 컷으로 종종 쓰이지 않나. 조금씩 기다리고 지켜보다 보면 잘못된 줄 알았던 연기도 역시 좋은 것이었구나, 알게 된다. 그걸 인지하지 못하면 어떤 감독들은 계속 통제를 한다. 그때부터 현장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은 통제를 받다보면 너무도 당연하게 벗어나고 싶잖나. 그러면 그 현장은 답답해진다. 그런 현장에 안 가려면 감독님도 잘 봐야 되고 작품도 잘 봐야 되고 여러 가지로 선택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확률적으로 건강한 현장에 갈 수 있다.      

<집 나온 남자들>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극중 배우들의 연기 호흡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현장에서 친하게 지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배어난다.
그런 모습이 보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서로 간에 성공했다고 본다.

이번 영화에 만족한다?
만족이라고까지는 아니지만, 난 나쁘지 않았다.


<똥파리> 전 세계를 돌다

<똥파리>로 해외를 돌아다닌 지 2년 가까이 되지 않았나?
1년 7,8개월 정도 됐다. 내가 간 거와 영화가 간 거 합하면 50~60개 정도 되고 내가 간 해외만 해도 스물 몇 군데가 된다. 근데 이제는 편한 게 가장 좋다. 웬만하면 편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집 나온 남자들>이 개봉하다보니까. (웃음) 원래는 지난해 12월 개봉으로 잡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대규모의 영화가 아니다보니까 4월까지 오게 됐다.

12월 개봉이었다면 <아바타>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았을 것 같다.
그것 때문에 그랬을 거다. 영국에서도 <똥파리> 개봉이 2009년 12월 하순이었는데 <아바타> 때문에 3월 하순에 개봉했다. 지금 영국에서 상영 중이다.

안 그래도 <사이트앤사운드>(Sight&Sound) 2010년 3월호에 <똥파리>가 ‘이번 달의 리뷰’(review of this month)로 뽑혔더라. ‘폭력의 순환’(Circle of Violence)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외국 관객에게도 놀라운 감정적 경험을 안겨주는 작품’이라는 평이었다.
토니 레인즈가 쓴 글이었나?

그렇다. 일본에서도 최근에 개봉했다고 들었다.
3월 20일에 개봉했다.

그곳의 평가는 어떤가?
아직 한 마디도 못 들었다. 전화를 해봐야지. 관객들도 많이 들어오고 잘 되면 좋죠. (웃음) 뭔가 또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자금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일단 어느 정도의 수치로 찾아오시는 줄은 모르지만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제 구글 번역기 돌려서 (웃음) 일본 블로그에 올라온 반응을 50~60개 정도 봤는데 전반적으로 잘 보셨다고 써놨더라.     

<사이트앤사운드>에도 그런 평가가 있었지만 해외 관객들이 <똥파리>를 보는 관점은 한국 관객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되게 비슷하다. 다만 일본 쪽에서 홍보하는 걸 보면 사랑에 대한 부분을 더 잘 밀착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 관객들이 극중 사랑에 대한 부분을 5% 정도 느꼈다면, 일본 관객들은 20~25% 정도 느끼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이키모데키나이’(息もできない)라고 ‘숨을 쉴 수가 없다’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게 ‘자드’라는 일본 그룹의 노래 제목인데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부분이 묘하게 매치가 됐다. 이명세 감독님도 <똥파리>를 사랑 영화로 보셨다고 얘기해 주셨듯이 자기의 경험이나 어떤 것들을 통해서 가족애라든지, 사랑이라든지 각자 느끼는 게 다양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많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관객과의 대화 진행 중에 한 분이 영화의 폭력적인 부분에 대해 눈물을 흘리시더라. 그 옆 좌석에 한국 분 남편이 앉아있었는데 시아버지가 그런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지 남편 생각에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는 거다. 독일에서는 영화 끝나고 나왔을 때 프랑스에서 오래 사신 분인데 내게 미친 듯이 걸어오셨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를 안아주시더니 <똥파리> 같은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내가 처음으로 간 해외영화제(로테르담)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현지 부인과 가족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외국 분과 소통이 되니까 신기하다고 말을 하니, 가족이라는 건 세계 보편적으로 다 느끼는 건데 신기할 게 모가 있느냐고 얘기해주시더라.

세상 누구에게나 가족은 친밀하면서도 한 편으론 불편한 존재라는 게 공통된 감정인가보다.
우리가 아이티나 북한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정보들, 느낌을 통해서 힘들게 산다는 걸 알잖나. 우리 안에도 그런 부분들이 사실 다 있고, 외국 분들도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한국의 가족에 대한 부분을 느낀 거다. 네덜란드나 유럽의 다른 건강한 나라라고 가족에 대한 문제가 없겠나. 가족은 세상을 살아가는 시발점이고 그 위에 사회가 있는 거니까 생각하는 거나 감정이 비슷하다. 문화 차이는 섞여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는 똑같다는 얘기를 나눴던 기억도 난다.  

로테르담 영화제 갈 때는 첫 해외 영화제 경험이라 남다른 감정이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제는 워낙 해외를 자주 나가다보니 별 감흥이 없겠다.
그냥 간다. 진짜 아무 준비도 안 하고 당일 날 챙겨서 간다. 열 몇 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가서 내리면 ‘나이스 미트 유!’ 인사하고. (웃음) 그냥 재밌다. 옆 동네 가듯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롭다. 어느 새 아시아나 항공 다이아몬드 회원으로 승격해서 VIP라운지도 쓰게 됐다. 대한항공도 몇 백 마일만 더 모이면 업그레이드된다. (웃음)

그러다 <인 디 에어>의 라이언 빙헴(조지 클루니)처럼 된다. (웃음)
됐으면 좋겠다. (웃음)


차기 연출작? 지금은 아니다. 기다려 달라. 

잦은 해외영화제 참석 때문에 <집 나온 남자들> 출연 결정 전에 심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다.
해외영화제 때문만은 아니고 전반적인 것 때문에 그랬다. 영화제도 그렇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려고 한다. 다 겪고 나서 몸으로 익히려고. 처음 경험할 때 다 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그러지만 일단은 다 해보고 정리할 거다. 지금 차차 정리하고 있는데 정리가 끝나면 나에게 굉장한 것들이 남을 거다. 분명히. 연기자로서, 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후반 작업의 어떤 과정으로 영화를 개봉 시키고, 해외영화제를 스물 몇 군데를 가고, 세금 계산을 하고, 인건비 지급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해외 개봉을 하는 등 <똥파리> 만들면서 지난 4년 동안 몸소 체험한 것들이 내 몸에 쌓여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옥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겪을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에 잘 겪어놓으려고 한다. 앞으로 영화를 만들던지, 삶을 살아가는데 큰 역할을 해줄 거라고 본다.   

연기도 그렇지만 차기작을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 다만 <똥파리>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일들이 오히려 차기작을 구상하는데 방해가 됐을 법도 하다.
영화제 가는 일들이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대략 혼자 머릿속에 가안으로 떠도는 생각이 있다. 

영화 출연 제의 못지않게 연출 제의도 많이 받았을 텐데?
연출에 대한 제의는 작년에 엄청나게 왔었다. 올해 들어서는 그만큼 많지는 않다. 우리가 거품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잊지 않고 있을 거다. 자연스럽게 오는 거지 굳이 덥석덥석 잡지 않아도 양익준하고 뭔가 해보고 싶은 분은 어딘가 계실 테니까 그분하고 하면 된다. 지금 이 과정을 통해 그런 여유까지도 얻은 것 같다. 영화 한 편 만드는데 4년이 걸렸는데 좀 천천히 해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지만 10년에 두 편 정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열심히 만들면 내가 살아가는데 수익이 생길 수는 있지만 감정이 담긴 표현물인 영화를 계속 생산만 하고 싶지는 않다. 애만 낳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낳아서 예쁘게 알콩달콩 살고 싶고 친구로써도 지내고 싶고 고민도 하고 싶지 애만 생산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은 거다.

영화만큼이나 일상도 중요하다?
많은 감독님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뭔가 해야 할 때 굉장히 집중한다.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일상에서는 다른 것들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 일상에서 다른 걸 보면서 삶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껴야지 아니 어떻게 영화를 계속 끊이지 않고 만들면서 집중만 할 수 있겠나. 잘 배분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나중에 지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만 많이 만들면 모하겠나. 내 인생이 소멸해가는 어떤 순간을 맞이하는 게 얼마나 비참하겠나. 그래서 욕구가 생겨도 꾹꾹 누르고 있다. 장형윤 감독(<무림 일검의 사생활>)의 회사 이름이 ‘지금이 아니면 안 돼’인데 나의 지금 상태는 ‘지금은 아니야’다. (웃음)

그래서 요즘 영화를 만드는 대신 많이 보러 다니는 건가? 극장에서 자주 봤다. (웃음)
어제는 <클래스> 봤고 며칠 전에는 <언 애듀케이션> 봤다. <언 애듀케이션>의 여배우(캘리 멀리건) 너무 좋더라. <클래스>도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좋은 영화였고. 진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만 보고 싶다. <아이언맨2>도 보고 싶고 <허트 로커>도 며칠 후 시사회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런 거 보면 내가 뭔가 되는 사람인가? 내가 특별한 사람인가? 나는 그렇게 인지를 못하고 있는데 왜 나한테 연락이 오지. 내 생각에 나는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내가 어떤 특수한 존재로 자리매김을 해버린 것 같다. 나하고는 이질적이다. 난 아무 것도 아닌데.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게 불편한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영화를 통해 답답한 것들을 털어내고 싶다. 영화는 그것에 대한 매개체고 배설의 어떤 공간일 뿐인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유명해진 게 아이러니이긴 하다. 얼굴을 전면에 드러내놓고 연기하는 사람은 자기의 공간을 잃어버리기 마련인데 그래도 내 자리는 어느 만큼까지 잃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있다. 다행히 얼굴이 너무 보편적으로 생겨서 <똥파리>나 <집 나온 남자들>에 나왔어도 지금 이렇게 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거의 몰라본다. 그런 부분에서는 다니기 편하다. 알아도 무서워서 피하는 건가? 아니면 더러워서? (웃음) 나는 일상이 중요하다. 영화 때문에 그걸 잃고 싶지가 않다.

그래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운영자 선정 결과 등과 같은 영화계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내 다음 영화가 어떤 작품이 될지 궁금하다. 모 답답하니까 답답한 게 영화에 나오지 않을까. 답답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나 문화가 질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똥파리> 때 처음으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늦었다. 10분을 늦었는데 너무 미안하더라. 첫 질문에서 관객이 ‘이 씨발놈아!’ 그러는 거다. 내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 그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고. (웃음) 나는 그게 충분히 받아들여지더라. ‘씨발!’ 영화를 보면 질러대고 싶은 거다. 이 세상을, 감독을. 관객들의 답답한 부분들을 질러주니까. 내가 뭔가 숨통을 터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을 하시니까 내가 그런 좋은 통로가 된다면 약간 기분이 상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고민들을 이렇게 얘기하면 세상 바라보는 눈들이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집 나온 남자들> 홍보가 끝나면 당분간은 휴식인 건가?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주려고 한다. 내가 나라는 놈한테 한동안 시간을 못 준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네 맘대로 해봐라, 네 몸뚱이 움직이는 대로 가보고 느껴지는 대로 가봐라. 제의가 와도 심장까지 건드려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면 지금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 온다면 고려해볼 수 있다. 내가 나한테 주는 시간도 유예해놓고 나중에 좀 주려고. 일단 이걸 해보자. 지금 아니면 못 해볼 것 같아. 그런 게 아니면 지금은 별로 할 용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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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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