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스 홀>(Jimmy’s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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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스 홀>에 대해서는 먼저 극 중 배경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아일랜드는 영국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독립전쟁을 치렀다. 이후 휴전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간에 내전이 발발했고 지지파의 승리 속에 극심한 갈등을 낳았다. 이에 반대했던 지미 그랄튼(배리 워드)은 뉴욕으로 추방당했다가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의 귀환은 다시 한 번 마을 사람들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뉴욕에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지미는 마을회관을 열어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춤과 노래 등을 전파한다. 하지만 지미를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두고 남녀가 살을 맞댄다는 이유로 타락하고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맹비난한다.

지미의 귀환으로 야기되는 갈등 양상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신문물을 받아들인 지미에 대해 기성세대가 경계하는 것과 달리 젊은 세대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애정을 보인다. 또한, 지미를 위험인물로 낙인찍은 공권력과 지주들이 그들 맘에 들지 않은 작은 것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아 추방하려는 것에 반해 마을의 소작농들은 연대를 통해 지지의사를 밝힌다.  
 
그와 같은 대립 양상에서 지미와 그의 지지자들이 무기로 삼는 것은 다름 아닌 문화다. 영화가 지미 그랄튼이라는 이름 대신 지미의 마을회관, 즉 <지미스 홀>을 제목으로 내세운 건 이곳에서 문화가 교류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춤과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예이츠의 시를 읽으며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조리한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지미스 홀>의 백미는 지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마을회관에서 춤과 노래로 흥겨운 시간을 벌이는 광경에 맞춰 셰리단(짐 노턴) 신부가 이들을 비난하는 설교를 교차편집 해 보여주는 장면이다. 셰리단이 마을회관 행사에 참석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악마에 놀아나는 이들이라고 맹비난할 때 교차편집 되는 지미 쪽 사람들의 얼굴에서 관객이 목격하게 되는 건 문화가 주는 즐거움과 그를 통해 맺게 되는 화합과 연대의 가치다.

지미 그랄튼은 문화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이런 요지의 얘기를 한다. “탐욕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일을 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문화가 필수라는 의미다. 그처럼 <지미스 홀>은 문화가 인간을 교양인으로, 탐욕은 배부른 돼지로 양성한다는 의견을 견지한다. 궁지에 몰린 지미가 기지를 발휘해 위험을 벗어날 때 살찐 경찰이 답답하게 그를 쫓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알리바이다.

이는 켄 로치가 영화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항간에 <지미스 홀>은 켄 로치의 은퇴 작으로 알려졌다. 정확히는 필름영화 연출의 은퇴다. 필름을 고집해왔던 켄 로치는 <지미스 홀>을 연출할 당시 필름이 모자라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소식을 들은 픽사 스튜디오는 켄 로치에게 필름을 제공했다!) 켄 로치는 앞으로 필름영화는 만들지 않지만, 디지털로 작업할 수 있는 적당한 소재를 찾는다면 계속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의 영화를 지지하는 팬들은 여전히 전 세계에 존재한다. 이와 관련, <지미스 홀>에는 꽤 의미심장한 설정이 등장한다. 뉴욕에서 돌아온 지미를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해주는 건 그 마을의 청소년이고 또한 지미가 다시 뉴욕으로 추방당할 때 그에게 인상 깊은 작별을 만들어주는 것도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밝은 미래를 인도하는 것은 지미와 같은 인물이다. 영화 팬들에게 켄 로치는 다름 아닌 지미 그랄튼이다. 그래서 <지미스 홀>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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