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가 종영한 지 꽤 됐지만 그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여러 방송국을 통해 재방영이 이뤄지는 것은 기본이고 주요 출연진들이 1990년대에 유행했던 대표적인 노래를 직접 부르는 단발성 음악 프로그램까지 기획되었다. 안 그래도 ‘쓰레기’ 정우, ‘칠봉이’ 유연석, ‘해태’ 손호준, ‘삼천포’ 김성균, ‘나정’ 고아라, ‘윤진’ 도희 등 주요 배역을 맡았던 배우의 경우, 드라마, 예능, 영화, 광고할 것 없이 모셔가기 경쟁이 치열해 언론을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될 정도인 것이다.
<응답하라 1997>로 촉발된 ‘응답하라’ 시리즈의 인기는 <응답하라 1994>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이와 같은 폭발적 인기의 결정적인 비결은 1990년대에 있을 것이다. 199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문화의 시대라고 일컫는 가장 최초의 사례였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전국을 강타했고 <키노>와 같은 영화월간지가 각광을 받았으며 <슬램덩크> 단행본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H.O.T, SES 같은 아이돌 그룹이 처음 등장한 것도 1990년대였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로 그때 벌써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을 정도다.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 이는 자기표현 같은 것이었다. 신세대들은 갖가지 색깔로 머리 염색을 했고 ‘게스’, ‘마리떼 프랑소와저버’ 같은 고가의 의류로 치장했으며 남자들은 귀고리로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기표현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간파한 기업들은 이들이 전에 본 적 없던 미지의 세대라는 점에 착안, ‘X세대’라는 마케팅 용어를 만들어 소비를 부추겼다. 이는 그야말로 전례가 없었던 사건이었다. 문화가 산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창작자들은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쟁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다보니 X세대라 불리는 1990년대의 청춘들은 그 이전 세대와는 달랐다. 당시 유행했던 세대 명칭 중에는 ‘386’과 ‘297’이라는 게 있었다. 컴퓨터의 마이크로 프로세스에서 따온 것인데 386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고 30대가 된 세대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이에 맞춰, 297세대가 등장했는데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20대가 된 이들이었다. 이처럼 극명하게 갈렸던 세대였던 만큼 이들은 전혀 다른 부류였다. 386세대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며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다면 297세대는 각종 문화에 열광하며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를 표현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그렇게 세대 간 격변이 극심히 일어났던 시기였던 만큼 1990년대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 등과 같은 TV 학원물이 시즌제로 기획되며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쏟아지는 문화세례 속에서, 1990년대의 신세대들은, X세대들은, 297세대들은 문화적인 안목을 키웠다. 그중 94학번인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와 같은 이들은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응답하라> 시리즈로 2014년의 한국 문화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지금 한국은 말 그대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1990년대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2014년에 1990년대를 다시금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현상이나 신드롬이 발현하게 된 그 배경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결핍이 자리한다. 지금 이 시기에 충족되지 못한 무엇인가가 1990년대에는 있다는 얘기다. 문화의 부족은 아닐 것이다. 2014년 현재 우리가 누리는 문화는 1990년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일례로, 인터넷의 발달을 넘어 SNS 시대로 접어든 이때 우리는 전 세계의 문화를 실시간으로 향유하고 있다. 아무리 1990년대가 문화의 시기였다고 한들 일본 문화 전면 개방은 2003년에야 이뤄졌고 유튜브나 페이스북은 한국에 소개되기도 전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1990년대 문화를 적극 끌어들여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현혹했지만 결국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극 중 청춘들의 사연이었다. 쓰레기와 칠봉이 중 누가 나정의 남편이 되었는지 이를 추리하는 글들이 각종 인터넷 게시판과 SNS 상에 도배되었고 삼천포가 윤진에게 보여주는 순정파적인 면모는 거의 매일 같이 회자되었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서울로 올라온 이 촌놈들을 자식처럼 보살피는 신촌 하숙집 부부의 존재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따뜻한 감성을 캐릭터 그 자체로 증명해 보인 경우였다. 1990년대는 문화뿐만 아니라 남녀 사이에, 친구들 사이에, 하숙집 주인과 학생들 사이에 정으로 똘똘 뭉친 관계와 사연이 넘쳐나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 인간적인 관계와 사연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시대가 변했다. 2014년의 청춘은 1994년의 대학생들과 처한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합격과 동시에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느라 은행에서 끌어 쓴 돈으로 앞으로의 4년을 대출금에 저당 잡히고, 행여 취업을 못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1학년부터 성적과 스펙 경쟁에 내몰린다. 사랑하는 이의 무릎을 베개 삼아 사랑을 논하는 것이 웬 말이며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의 신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서겠다며 철학을 입에 올린다는 건 또 얼마나 비생산적인 일이냔 말이다. 캠퍼스의 낭만이 들어서야 할 그 틈에 경쟁과 생존이 자리 잡으니 인간미 넘치는 사연은 그만큼 증발되고 말았다.
청춘을 다루는 작품들이 동시대에 주목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는 건 지금의 20대에게서 뽑아낼만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응답하라> 시리즈 외에 20대의 꿈과 사랑과 이상을 얘기하는 청춘물들은 한꺼번에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과거로 향했다.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이연희)은 1997년도에서 미스코리아라는 자신의 꿈이 이루기 위해, 영화 <피끓는 청춘>의 지방 고등학생 중길(이종석)은 1982년도에서 서울에서 전학 온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
불행하게도 지영과 중길에게서 지금의 20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인공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이로 치면 이들도 벌써 기성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여전히 행복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2014년을 사는 청춘들은 삶이 버겁기만 하다. 지금 20대의 사연을, 이야기를 뺏어간 것은 누구인가. 이들이 청춘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과 낭만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응답이 절실하다. 과거의 청춘들 이야기도 좋지만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사연도 보고 싶다. 응답하라 2014!
toon 허남준
새마을 금고 사보
2014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