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극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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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는 ‘사극’이다. 이미 올 4월에 <역린>이 개봉했지만 여름 시장에 무려 세 편의 사극이 선을 보인다. 강동원, 하정우 주연의 <군도: 민란의 시대>(7/23, 이하 ‘<군도>’), 최민식이 이순신으로 출연하는 <명량-회오리바다>(7/30, 이하 ‘<명량>’),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을 표방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여름 예정, 이하 ‘<해적>’)이 그것.

사극은 예로부터 한국영화가 사랑해온 장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세 편의 사극이 몰린 건 이례적인 경우다. 그만큼 사극이 각광받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흥행이 검증된 장르

2억 명 관객 시대를 맞아 한국의 영화 산업은 필수적으로 사극과 같은 거대한 블록버스터를 필요로 한다. 블록버스터라면 모름지기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들 영화 들은 기본적으로 천만 관객 동원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모두 9편이다. 그중 사극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하 ‘<광해>’) 두 편이 포함되어 있다. 범위를 900만으로 넓혀 봤을 때 2013년 추석 극장가를 강타하며 913만 스코어를 기록한 <관상>도 천만 가까운 관객 동원력을 보여줬다. 사극은 천만 관객 동원이 검증된 장르인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00위 안에 사극은 무려 9편이 포진되어 있다.

실제로 각종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사극이 차지하는 비중은 <광해>의 흥행을 전후한 2~3년 전부터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사극의 부상에 대해 만화스토리 산업팀의 손태영 주임은 “영화와 TV드라마를 통해 사극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트렌드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윤인호 팀장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2014년 한국영화 시장의 사극 붐에 대해 “<광해>와 <관상>처럼 퀼리티가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시장에 팽배해있다. 그 여파로 대형 사극이 기획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특정 소재 혹은 장르가 큰 성공을 거두면 그에 착안한 작품이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물며 사극처럼 시기에 상관없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장르라면 비슷한 시기에 몇 편의 작품이 맞붙는 현상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와 같은 한국영화 산업 내의 사극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2014년의 사극 붐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고 하겠다.

폭발적인 관객 동원력

사극은 그 어떤 영화보다 든든한 관객 지원군을 확보한 장르로 평가받는다.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는 기본적으로 특정 계층을 겨냥해서는 곤란하다. 남녀노소를 아우를 수 있을 때 꿈의 스코어는 가능해지는데 그런 점에서 사극은 천만 영화에 최적화된 장르다.

한국인들에게 사극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TV만 틀면 일주일에 두세 개 정도의 사극 드라마가 방영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감이 큰 한국 대중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사극은 영화제작자들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장르다. 쇼박스 전략기획팀의 김택균 부장은 사극의 장점을 폭넓은 관객층에서 찾는다. “사극을 찾는 관객 수가 늘어난 것은 40대와 50대 팬들의 유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관객층이 넓어지면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사극의 입장에서 부담감을 다소간 덜게 되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사극은 TV와 다르게 2시간의 제한된 상영 시간 동안 승부를 봐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더 안성맞춤인 구조다. TV로 방영되는 사극 드라마에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제작비 부족에 따른 빈약한 볼거리는 영화에서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투입되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톱스타의 출연료와 무엇보다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시대의 복원이라는 화려한 볼거리에 맞춰져 있는 까닭이다.

그와 같은 사극의 특징을 반영이라도 하듯, 올 여름 맞붙는 세 편의 사극은 대형 규모인데다가 천차만별인 소재로 관객 공략에 나선다. <군도>는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망할 세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액션 활극으로, <명량>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으로 평가받는 ‘명량해전’을 대작의 전쟁물로, <해적>은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아 천하를 얻기 위한 산적과 해적의 대결이 오락영화로 펼쳐진다. 전혀 다른 결의 흥행 포인트로 접전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양한 소재의 보고

세 편의 사극이 각기 다른 소재를 취한 것처럼 한국영화 산업이 사극에 주목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양한 소재에 있다. 영화 산업은 언제나 좋은 소재에 목마르다. 특히나 한국처럼 작가에 대한 처우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역사는 일종의 보물창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관상’이라는 상상력을 더해 <관상>을 제작했던 주피터필름의 주필호 대표는 “현대극에서 소재가 고갈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다보니 시공간의 무궁한 창조와 재해석이 가능한 사극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고 말한다. 이미 개봉한 <역린>과 개봉을 앞둔 <해적>, 그리고 이병헌과 전도연이 출연하는 <협녀: 칼의 기억>까지 올해만 최소 세 편의 사극을 선보일 예정인 롯데 엔터테인먼트 커뮤니케이션팀의 임성규 팀장의 얘기도 들어보자. “역사를 다루는 사극은 그 특성상 소재가 무궁무진하고 고증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해 다양한 상상력을 펼 수 있다.”

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광해>이었다. <광해>는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 일기 중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는 한 줄의 기록에 착안해 기획된 작품이다. 광해군이 재위 시절 사라졌던 15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지금의 형태로 완성했다.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이끌고 일본군의 330척의 배를 침몰시킨 사실에 근거에 이 영화를 기획했다. 하지만 어떤 전략으로 대승을 이끌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를 재구성해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해석’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이 경우에 재해석은 과거 시제의 이야기를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감각을 말한다. 즉,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내는 팩션을 말하는 것인데 주필호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뻔한 소재라도 색다르게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현실의 우회적 반영

사극의 진짜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극은 정치적인 의견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거라는 안전핀(?)으로 알리바이를 삼는다. 가령, <광해>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상적인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관상>은 아버지를 넘어서고자 하는 아들이 역사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패배하는 사연을 통해 보수적인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재 시점의 사건을 다루면 논란이 불 보듯 뻔하기에 풍자나 은유가 용이한 사극으로 우회함으로써 현 시대를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세상은 소수의 가진 자들의 것이 되었고 다수의 없는 자들은 극단화된 빈익빈부익부의 피라미드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다수의 마음속에 이 빌어먹을 세상을 갈아엎자는 욕망이 머리끝가지 차올랐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2014년의 사극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이다. <군도>의 경우,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전복적인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제목에서부터 강조한다. 조선 건국을 배경으로 한 <해적>은 해적과 산적의 대결에 개국세력이 개입하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혼란함을 중요한 베이스로 삼는다.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인 영화는 어떤 형태가 됐든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이를 감안하면 사극은 지금 대중이 욕망하는 어떤 감정의 끓는점에 해당한다.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민초들의 난, 즉 ‘민란’의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역린’(용의 턱 아래에 거슬러서 난 비닐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성을 낸다는 전설에서 ‘임금의 분노’를 비유하는 말)을 부르는 상황에서 사극은 현재를 사는 많은 이들의 속마음을 대리만족해줄 장르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꺼지지 않을 사극 열기

살펴본 바, 사극에 대한 창작자와 대중의 관심은 쉽게 꺼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광해>와 <관상>이 대형 사극의 제작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은 사실이지만 올 여름 시장의 결과에 상관없이 사극의 인기가 지속될 거라고 보는 것은 제작 현황이 말해준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가 되었지만 쇼박스는 이미 <사도: 8일간의 기억>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속편인 <조선명탐정: 놉의 딸> 제작에 들어갔다. 굳이 이 두 편이 아니더라도 김택균 부장의 얘기에 따르면,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검토하다 보면 사극 중에 특히 재미가 상당한 것이 많다”고 한다. 롯데의 임성규 부장은 “흥행이 검증된 사극은 장르로써 매력적인 포인트가 무궁무진해 향후에도 활발하게 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CJ의 윤인호 팀장은 향후 사극의 가능성에 대해 특별한 전망을 내놓는 대신 “올 여름 시장에 세 편의 사극이 맞붙는다고 해서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의 말의 속뜻을 헤아려 본다면, 사극이 장르 자체로 관심을 끄는 시대는 일찍이 지났다는 것일 테다. 한국영화 시장에서 사극이 보편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마당에 영화만 좋다면 세 편 모두 흥행에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얘기다. 그 말은 곧 새로운 소재 발굴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사극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손태영 주임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모로 들어오는 사극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변호사나 정원사 같은 특수한 직업군을 등장시킨 시나리오가 많다.”고 하니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손주임이 언급한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창작자들 역시 그만큼 사극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와 같은 창작자의 마음이 대중과 다시 한 번 통할 경우, 사극은 한국영화 산업 내에서 지금보다 더욱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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