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검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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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활약이 대단하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 지금 한창 인기몰이 중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장동건(<우는 남자>), 차승원(<하이힐>) 등 오랜만에 영화로 복귀한 빅스타도 명함 한 장 못 내밀 만큼 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그들의 활약상을 살펴보기에 앞서 영등위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먼저 살펴보자. 홈페이지(www.kmrb.or.kr)에 설명된 그대로를 인용하자면, ‘영화/비디오물 및 공연물과 그 광고/선전물에 대한 등급분류와 추천 업무 등을 통해 영상물에 적절한 연령별 등급을 부여함으로써 영상물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 청소년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그런 영등위의 레이더망에 <님포매니악>이라는 영화가 걸려들었다. <님포매니악>은 노골적인 제목, 하드코어한 체위, 빈번한 성기 노출 등으로 개봉 전부터 야하다고 소문난 영화였다. 애초 성인용으로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신체 노출에 대해 과민(?) 반응하기로 유명한 영등위는 역시나 이번에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제한상영가 심의 후 수입사가 성기 노출 장면에 블러(부분 뿌연 화면) 처리를 해오자 그제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내렸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님포매니악> 이전 <미조>라는 작품은 극 중 근친상간의 설정이 ‘사회윤리에 어긋나고 선정성, 모방위험 등의 요소가 과도하다’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적이 있다. <님포매니악>은 재심의로 영화 상영의 기회를 얻게 됐지만 <미조>는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재편집을 하지 않는 이상 개봉은 꿈도 꾸지 못할 지경에 처했다.

물론 이 정도 가지고 영등위의 활약상 운운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심의 문제로 크게 논란이 됐던 경우는 대개 극 중으로 한정되었지만 <님포매니악>은 포스터의 블러 처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님포매니악>의 포스터는 극 중 출연진 9명이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무언가를 느끼는 표정을 잡아낸 후 ‘나의 모든 구멍을 채워줘’라는 카피를 달았다. 이에 영등위는 카피와 표정이 부적절하다며 심의를 반려하자 수입사는 블러 처리 하고 카피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포스터를 재구성한 것이다.

포스터에 대한 영등위의 엄격한 잣대 적용은 올해 유독 두드러진 양상을 보인다. 곧 개봉을 앞둔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포스터 속 여자의 엉덩이 라인이 맨 살로 드러났다는 이유로, 지난 2월에 재개봉한 <몽상가들>의 경우, 남자의 얼굴이 여자의 가슴에 닿아있다는 이유로 심의를 반려했다. 이들 영화의 수입사들은 포스터를 수정, 제출한 후에야 비로소 공공에 노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영등위가 심의 반려로 내세우는 이유는 한결 같다. 부적절하거나 모방 위험이 있다는 거다. 누구에게? 바로 청소년이다. 영등위의 표현대로라면,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다. 영등위는 이 참에 영화에서만큼은 일종의 청소년 보호 구역을 확실히 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이건 말  장난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경우, 이 영화를 연출한 김경묵 감독은 청소년들이 볼 수 있는 수위 정도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을 포착한 것.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경우, 정작 청소년은 볼 수 없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상태다. 이유가 기상천외하다. ‘주제, 내용, 영상 표현에 있어서는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지만 대사 부분에 있어 거친 욕설과 비속어 등의 사용이 반복적이며 지속적으로 묘사되고 있고 모방 위험에 있어서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영등위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사유다. 폭력 묘사가 빈번한 <끝까지 간다> <잉투기> 등과 같은 작품이 15세 관람가를 받은 것을 감안하면 영등위가 얼마나 ‘바른 말 고운 말’ 쓰기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영등위는 영화에서의 욕설과 비속어 사용 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영화 속 언어포현 개선 토론회’라는 걸 개최하기까지 했다. 영화 속 언어 표현에 대한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번 행사의 개최 취지였다. 그에 맞춰 영등위의 바램대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청소년들은 앞으로 바른 말 고운 말을 쓰며 주먹질을 일삼고 각종 무기로 신체를 훼손하는 영화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것이 영등위가 지키고자 하는 창의성인가보다. 영등위의 홈페이지에는 ’공익성과 공정성을 원칙으로 하되, 작품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로 업무를 수행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요즘 부진을 겪고 있는 한국영화를 보면 오히려 등급을 분류하는 영등위의 창의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만 같다. 아니 오히려 영등위에 쏠리는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보니 한국영화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가히 주객이 전도된 형국이다.  

정말로 영등위가 청소년을 보호할 목적이라면 비속어나 욕설이 빈번하고 폭력이 과도한 영화에 대해서는 기준을 철저히 하여 등급을 분류하고 그에 맞춰 관객들의 극장 출입을 철저히 관리, 감시하면 될 일이다. 창작자들로 하여금 언어를 순화해 영화를 만들라고 하는 건 사실상의 검열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최근의 영등위가 중심에 선 일련의 등급 관련 소동이 위험해 보인다. 영등위가 화려한 창의력을 뽐낼 수록 좋은 영화를 만들고 소개해야 할 창작자들이 설 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시사저널
NO. 1294

2 thoughts on “지금은 검열시대”

  1. “그에 맞춰 영등위의 바램대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청소년들은 앞으로 바른 말 고운 말을 쓰며 주먹질을 일삼고 각종 무기로 신체를 훼손하는 영화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ㅋㅋㅋ 절묘한 설명이였음. 한참 ㅋㅋ 거렸습니다. ^^

    1. 버디형 안녕하세요 ^^ 꾸준하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그 구절이 재밌었나요, 흐흐 보람있네요. 이렇게 반응주시는 맛에 글을 쓰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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