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욕망이 다양화되어서일까, 아니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해서일까. 일찍이 극장가에서 볼 수 없었던 노년의 욕망을 다룬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노년의 삶과 욕망을 넘어 죽음을 정면에서 다루는 영화들이 집중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죽음 소재의 영화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12/19 개봉)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흔히 이와 같은 예술영화 개통에는 소위 시네필로 불리는 영화광들이 극장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르>를 상영 중인 씨네큐브의 관계자에 따르면, 50대 이상 되는 관객들의 참여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죽음에 직면한 노부부의 삶을 다루고 있는 까닭이다. 마비증세로 몸져누운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남편의 사연을 통해 노년의 사랑과 죽음을 차가우리만치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
감독과 배우의 지명도에서는 떨어지지만 아이슬란드 영화 <볼케이노 :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11/22, 이하 ‘<볼케이노>’) 역시 <아무르>와 이야기와 주제를 공유하는 수작이다. 직장을 은퇴한 하네스(테오도르 율리우손)는 삶의 의욕을 잃어 아내에게 늘 신경질적이다. 그러던 중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진 후 극적으로 아내와 화해하기에 이른다. 허나 즐거운 때도 잠시,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하네스는 다시 한 번 삶의 기로에 서게 된다. 북구의 영화답게 서늘하게 파고드는 비극적 노부부의 최후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엔딩노트>(11/29)는 두 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다.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죽음도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스나다 도모아키는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통과해야 할 삶의 의례로 받아들이고 대신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나온 게 ‘엔딩노트’.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과 여행가기’와 같은 평생에 해보지 못했던 계획들을 리스트로 작성해 짧은 시간이지만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심플 라이프>(11/22)도 닥쳐온 죽음에 무작정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죽음이 오히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는 그 가족이 60년 넘게 일한 가정부와 그를 부려온(?) 가문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가정부 아타오(엽덕한)는 중풍으로 쓰러지자 폐를 끼치기 싫어 요양원 행을 자처한다. 그녀를 엄마처럼 생각하는 로저(유덕화)는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심플 라이프>는 계급을 넘어 하나 되는 가족의 모습을 전면에 부각한다. 죽음이 갖는 부정적 의미보다 긍정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것이다.
비록 개봉을 일찍이 마쳐 지금 극장가에서는 볼 수 없지만 네 편 외에도 언급할 영화는 더 있다. 상반기에 개봉했던 최종태 감독의 <해로>와 정지우 감독의 <은교>다. <해로>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노부부의 동반자살을 통해 생사를 초월한 사랑을 그렸고, <은교>는 70대 노(老)시인와 17세 여고생의 관계에서 나이와 세대를 불문한 욕망의 중립적인 가치를 살폈다. 요컨대, 시기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노년’, ‘죽음’의 태그라인이 달린 영화를 두 달에 한 편 꼴로 보아왔던 셈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난 어떤 욕망을 바라보기에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화두로 떠오른 죽음
안 그래도 2012년 한국 영화계를 결산할 만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욕망’이다. 올해의 한국 영화는 욕망으로 시작해 욕망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관련한 영화들이 유독 눈에 띄었고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살고 싶다는 부(富)의,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가고픈 순수의, <후궁 : 제왕의 첩>은 자식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모정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상적인 지도자 상의, <26년>과 <남영동 1985>는 역사 청산의 욕망을 드러내며 갖가지 형태로 영화 속에 반영됐다.
그것은 이 사회가 고도로 다변화되고 사람들의 욕망이 다양화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한국 영화는 소재의 다양성을 획득했고 또한 그 과정에서 <은교>처럼 노인의 욕망을 다룬 영화도 얻게 됐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소재의 다양화가 필연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연령층을 넓혀 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가 되지만 한편으로 영화를 수입함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아무르> <볼케이노> <엔딩노트> <심플 라이프> 등이 우연처럼 비슷한 시기에 집중된 이유도 바로 이와 연관이 있다.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어가고 있는 건 이제 놀랄만한 사실이 아니다. 굳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결혼하지 않고,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핵가족이 주요한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 결과, 노인 인구수가 급격히 불어났고 그들을 돌봐줄 자식 세대의 수가 줄어들면서 죽음은 이 사회가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 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그와 같은 사회적 배경에서 노인의 욕망을 다룬 작품은 등장했지만 죽음 소재의 영화는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다. 대신 앞서 언급한 영화들처럼 수입된 작품들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죽음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다. 외국 영화라고 취향의 특수를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리비젼의 이광희 매니저는 <볼케이노>를 수입한 배경에 대해 “생의 끝자락에 선 노부부가 인생을 정리하는 이야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르> <엔딩노트> <심플 라이프>는 각각 미카엘 하네케 연출,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작, 유덕화 출연이라는 이름값이 수입을 결정하는 계기가 됐지만 주제에 공감해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더 많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엔딩노트>를 수입한 영화사 진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관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50대 이상의 관객들, 특히 아주머니 단체 관람이 오전 상영의 점유율을 주도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심리학자 장근영은 중년 관객들이 이들 영화에 관심을 갖는 배경에 대해 그들이야말로 죽음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나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년은 인생의 반환점에 해당하는 나이다. 그 전까지 이들은 살아갈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제 살아갈 날이 역으로 카운트다운 되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게 바로 죽음이다.” <아무르> <엔딩노트> <볼케이노> <심플 라이프>와 같은 영화를 진지하게 볼 사람들은 아무래도 젊은 층보다 중년 이상의 관객이라는 것. 일찍이 접할 수 없었던 죽음 소재의 영화가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건 한국 관객층의 연령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실제 이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풍경은 젊은 층이 주로 찾는 멀티플렉스와는 다르다. <아무르>를 상영하는 씨네큐브의 경우, 50대 이상 아주머니들의 단체관람은 물론, 노부부, 그리고 나이든 어머니와 함께 찾는 성인 딸 관객이 줄을 잇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개봉 첫날, 5회 상영동안 1천 명 가까운 관객들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게다가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퇴장하는 관객이 거의 없었다고 덧붙인다. 병과 죽음에 맞닥뜨린 노년의 삶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영화인 까닭에 극장에 불이 켜져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상에서의 영화 후기 역시도 단순히 재미있다, 흥미롭다는 반응 외에 보다 성찰적이고 어른스러운 평들이 주를 이룬다. ‘나와 우리 가족들의 삶의 마지막에 대해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 ‘죽음 앞에 더욱 절실해지는 삶, 그리고 절망 가운데 희망을 걷어 올리는 인생. 이 영화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세상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이상 <엔딩노트>). ‘죽음을 향해 소멸되어 가는 존재를 말갛게 응시하게끔 하는 힘’, ‘심플하나 아름다운 생. 또한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 조용하게 파문이 이는 영화'(이상 <심플 라이프>) ‘귀중한 삶의 진리를 가슴 사무치게 이야기하는 사실적 드라마’ (이상 <볼케이노>)
관객의 공감을 산다는 건 영화가 다루는 내용이 솔직하고 진심이 담겨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죽음이란 것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콤플렉스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들다. 그래서 언급한 영화들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개 가족이 죽음으로 고통 받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카엘 하네케가 <아무르>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이와 관련이 있다. “가족 중 정말 가까웠고 사랑했던 사람이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본 적이 있다. 매우 힘들고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엔딩노트> <심플 라이프>도 마찬가지다. 40년간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는 <엔딩노트>는 딸인 마미 스마다 감독이 연출과 촬영을 맡았다. 카메라를 든 감독과 대상 간의 관계가 허물없다보니 사적이어야 할 죽음이 공적인 형태를 띄게 된 것. <심플 라이프>의 경우, 극 중 아타오와 로저의 관계는 영화의 제작을 맡은 로저 리의 사연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럼 이들 영화들이 가장 개인적이어야 할 죽음을 광장으로 끄집어냄으로써 얻으려는 효과는 무엇일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을 욕망한다는 것. <아무르> <엔딩노트> <볼케이노> <심플 라이프>가 보여주는 죽음에의 욕망은 단순히 죽고 싶다는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장근영은 “어떻게 죽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무척이나 긍정적인 일이다. 마음이 건강해야 죽음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건데 바로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삶을 보는 범위가 넓어졌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엔딩노트>야말로 장근영의 발언에 가장 부합하는 경우일 테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스나다 도모아키는 낙담하는 대신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며 가족과의 특별한 시간을 준비하는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나다 도모아키의 죽음은 남은 가족에게 슬픔을 줄지언정 좌절은 안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전향적인 자세로 죽음에 대처하는 긍정적인 사례의 하나일 뿐 모두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아니다. 허안화 감독은 <심플 라이프> 속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섣부르게 가족의 죽음을 극복하는 법을 제시한다거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사람은 언젠가 나고 사라지는 운명의 존재이지만 죽음에 처한 환경과 사회적 제약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들 영화의 극 중 주인공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엔딩노트>의 스나다 도모아키와 같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심플 라이프>의 아타오는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조용하게 삶을 정리하려 한다. 그에 반해 <아무르>의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냥), 안느(에마뉘엘 리바) 커플과 <볼케이노>의 하네스, 한나(마그렛 헬가 요한스토디어) 커플에게는 갑작스럽게 닥친 시련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자식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집안에서 간호하는 아빠가 못마땅하고, 남편 입장에서는 정성껏 간호해도 나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내의 존재가 갈수록 부담스럽기만 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죽음은 직면한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심정을 온전히 헤아리기도, 이해할 수도 없는 가치다. 그래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각각의 세대는 각기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가지만 흥미롭고도 슬픈 일은 새로운 세대들이 일어날 때마다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필수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죽음을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발생하는 소통의 단절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다. 우리 사회는 당신이 심각하게 병을 앓을 경우, 백만장자가 아닌 이상 익숙한 환경을 떠나야만 하는 사회다. 끔찍한 과정이며 모든 이들에게 현실적인 악몽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어떤가. 가장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서 떠드는 분야는 생명보험 밖에 없다. TV를 켜도, 라디오를 들어도, 거리를 걸어도 온통 죽음에 대비하라는 생명보험의 선전문구가 아닌가. 죽음 소재의 영화들이 모두 해외작품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일반 대중문화 산업이 묻어두려는 것을 다루는 게 예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죽음은 누구든지 맞이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주제다. 보다 적극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말해야 할 때다. 행복하게 죽는다는 것은 또한 삶의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movieweek
NO. 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