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해피엔딩>(Happy 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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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해피엔딩>은 안팎으로 뚜렷이 비교되는 두 편의 작품이 있다. 원작인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와 저예산 HD로 제작된 코믹 잔혹극 <달콤, 살벌한 연인>이 그 작품이다. 다행히 <죽어도 해피엔딩>은 이 영화들의 장점을 취하되 자기만의 차별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1998년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김상윤 프리미어엔터테인먼트 대표(당시 새롬엔터테인먼트 부사장)는 프랑스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1998)를 보고 즉시 판권을 구입했다.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는 잔혹한 이야기지만 혐오스럽지 않게 구성한 방식과 무뚝뚝하게 웃음을 주는 설정에 매료된 것이다. 그는 귀국 후 가장 먼저 영화의 성격과 부합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상영을 제안했다. 그해 7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는 영화제 기간 동안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인기를 누렸고 1999년 4월에는 10개관에서 3주 동안 상영되며 5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동안 김 대표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를 리메이크하는 것. 적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자가 남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설정과 잔혹한 표현 등이 당시 국내 관객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김상윤 대표는 소리 소문 없이 등장한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을 보며 ‘무릎 팍!’ 리메이크를 진행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여주인공이 살인을 한다는 설정을 코믹하게 묘사한 영화가 절찬리 상영되는 것을 보며 국내 정서가 7년 전과는 크게 변화했음을 목격한 것이다. 결국 <달콤, 살벌한 연인>을 제작한 싸이더스FNH의 김미희 대표를 만나 함께 리메이크하기로 결정,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를 본 후 8년 만에 <죽어도 해피엔딩>을 내놓게 됐다.


원작보다 강화된 캐릭터와 소품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는 서른다섯 살의 여성 추리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생일을 맞아 네 명의 남자친구를 초대, 배우자를 선택하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모두를 죽인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잔혹극을 코믹하게 다룬다. 싸이더스FNH 측에서는 무엇보다 원작에서 약하게 다뤄졌던 멜로코드를 강화하기 바랐다. 관객의 관심을 모으는 데 유리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매니저를 배치, 멜로라인을 수월하게 하는 한편 시체를 함께 옮기도록 설정해 원작과 달리 현실성을 높이도록 했다. 하지만 제작자의 바람과 달리 <죽어도 해피엔딩>은 멜로가 두드러지지도 리얼리티가 강화되지도 않았다. 각본을 담당한 강경훈 감독은 “로맨스가 많아지면 소동극인 영화의 성격과 맞지 않아”서, “비현실적인 면이 강해 리얼하게 접근하면 무리하게 논리관계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멜로의 비중을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그래서 <죽어도 해피엔딩>은, 여배우 지원(예지원)이 청혼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 남자들을 예기치 않게 살해하게 되고 매니저 두찬(임원희)과 시체를 숨기기 위해 벌이는 코믹소동극으로 이야기의 변화를 꾀했다.

<죽어도 해피엔딩>이 리메이크 과정에서 원작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캐릭터 묘사에 더욱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먼저 원작은 캐릭터 자체보다 영화의 형식에 더욱 공을 들인다. 추리소설가가 주인공이라는 점에 착안, 막을 4장으로 나눠 소설 느낌을 살리고 대사의 비중을 높인 것이다. 반면 <죽어도 해피엔딩>은 캐릭터를 강화하는 쪽으로 변주를 꾀했다. 원작이 상황의 변화에 맞춰 캐릭터를 끌고 간다면 이 영화는 캐릭터가 상황을 이끌어가는 셈이다. 원작에 등장하는 4명의 남자친구는 그다지 개성이 뚜렷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죽어도 해피엔딩>의 남자들은 모두 강력한 디테일을 갖추고 있으며 저마다 인상적인 대사와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강경훈 감독은 “정형화된 인물의 단면을 하나만 비트는 쪽”으로 캐릭터를 구성했다.

‘바람둥이’ ‘속물 지식인’ ‘무식한 조폭’ ‘소심한 연출가’ 등 한 마디로 설명 가능한 캐릭터를 창조한 뒤 특정 행동에 대한 묘사를 과장했다. 개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을 희화하고 판타지적인 성격을 강조해 사건을 극적으로 끌고 갔다. 담배 연기와 강한 하이라이트 조명으로 강조되는 누아르풍의 형사 캐릭터(장현성)는 원작을 따른 것이지만, 여주인공을 보조하며 살인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매니저 캐릭터는 <죽어도 해피엔딩>만의 고유한 점이다.

<죽어도 해피엔딩>의 또 다른 차이는 캐릭터의 성격을 강조하고 사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가령,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의 첫 번째 희생자는 날카로운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다면 <죽어도 해피엔딩>의 데니스(리차드 김)는 꽁꽁 얼어붙은 동태에 찔려 숨을 거둔다(김기덕 감독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도 비슷한 설정이 등장하긴 한다). “원작과 똑같이 진행하는 것보다 도구 하나라도 다르게 적용해 색다른 면모를 제공하려”는 감독의 연출 의도로, 살인 플롯의 전개과정은 더욱 밀도 있게 바뀌었다. 원작은 살인 장면에서 칼이나 유리 등이 사용돼 잔혹한 느낌이 강화됐지만, <죽어도 해피엔딩>의 도구들은 잔혹함 대신 코믹함을 강조한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주크박스는 원작에도 등장하는 것이지만, 지구본, 라이터, 시계, 사탕과 같은 소품을 통해 캐릭터를 재치 있게 설명할 뿐 아니라 화장실 유머 같은 지저분한 설정도 거부감이 없도록 만든다. <죽어도 해피엔딩>은 원작의 후광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특한 재미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HD 저예산영화의 업그레이드

<죽어도 해피엔딩>은 제작방식과 이야기의 설정 면에서 여러모로 <달콤, 살벌한 연인>과 견줘볼 만하다. 잔혹한 이야기를 희화화해 유머로 승화시킨다는 것, 스릴러로 포문을 열지만 결말은 남녀의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점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다만 비슷한 아이디어를 장르로 치환하는 면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이 로맨틱 코미디인 것에 반해 <죽어도 해피엔딩>은 소동극의 형태를 취한다. 이는 현실과 비현실의 차이이자, 로맨틱 코미디가 리얼리티를 근간으로 한다면 소동극은 판타지적인 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어도 해피엔딩>과 <달콤, 살벌한 연인>의 밀접한 연관성은 저예산으로 고효율의 완성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죽어도 해피엔딩>이 <달콤, 살벌한 연인>을 통해 HD 저예산영화 경험을 축적한 싸이더스FNH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한 건 이 때문이다. 특히 로케이션을 최소화한 연출로 10억 원 안팎의 제작비만을 소비했던 <달콤, 살벌한 연인>은 사건의 95%가 하나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죽어도 해피엔딩>으로서는 최적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컨셉의 HD영화라 하더라도 레퍼런스 모델을 그대로 따를 수만은 없는 법. <달콤, 살벌한 연인>의 공간이 자연스러운 일상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면 <죽어도 해피엔딩>의 공간은 판타스틱하게 가공된 느낌이 강하다. 또한 전자가 캐릭터 수를 최소화하면서 공간이동의 다양화를 꾀했다면 후자는 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대신 등장인물의 수를 최대화했다.

<죽어도 해피엔딩>의 공간, 즉 세트로 지어진 예지원의 집은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길 정도로 철저히 연극무대화돼 있다. 2층집 구조의 세트를 따로 구분해 짓지 않고 함께 세워 무대의 느낌을 부풀렸고 살인이 발생하는 부엌과 화장실 같은 주요 무대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의 공간보다 두 배 이상 넓게 잡아 카메라와 조명의 동선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죽어도 해피엔딩>의 화면 구성은 기존 영화와는 사뭇 다른 형태를 띤다. 거리 확보가 쉽지 않아 촬영 대상에 타이트하게 접근, 과장된 느낌과 극적인 느낌을 동시에 살려 소동극에 적합하게 했다. 또한 가구와 같은 소품을 빼곡 차도록 배치, 카메라 각도의 변화를 수시로 가져가 다양한 앵글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다보니 <죽어도 해피엔딩>에는 인물의 유려한 동선이나 카메라 움직임은 절제된 편이다. 이를 대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장면의 빠른 컷 호흡이다. 94분의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편집의 역동성에 있다. HD카메라의 사용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테스트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가도 경제적인 손실이 크지 않은 카메라의 특성상 많은 장면을 얻어 영화에 적합한 편집의 묘를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필름 촬영은 두 번 테스트 촬영을 하고 한 번 본 촬영을 하는 반면, <죽어도 해피엔딩>은 테이크당 평균 세 번 촬영했다. 필름 소비로 인한 제작비 누수에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어도 해피엔딩>의 HD 저예산 촬영은 <달콤, 살벌한 연인>의 경제적인 연출을 그대로 계승한 면이 있다. <죽어도 해피엔딩>은 ‘<달콤, 살벌한 연인> 2.0’ 혹은 ‘HD 저예산영화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여전히 남은 숙제, 철저한 프리프로덕션

<죽어도 해피엔딩>은 최종적으로 16억 8천만 원의 제작비에 31회의 촬영(1회 보충촬영 포함)으로 완성됐다. 수십억 원의 영화가 즐비하고 평균 촬영횟수가 50회를 넘기기 일쑤인 지금의 한국영화 풍토에서 의미 있는 성과임은 분명하다. 다만 이것이 한국영화계에 있어 의심의 여지없는 모범사례인지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30억 원 수준의 제작비가 적정선으로 평가받는 시장 상황상 <죽어도 해피엔딩>의 17억 원은 상대적으로 저예산임은 분명하지만 “예산의 효율적인 사용 면에 있어서 여전히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 김영화 PD의 설명이다.

이는 결국 표준화되지 못한 한국영화계의 제작 시스템 문제로 귀결된다. 김 PD는 <죽어도 해피엔딩>의 작업에 대해 “프리프로덕션이 짧아 좀 더 계획적인 진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원래 내정된 감독이 있었지만 영화의 성격과 맞지 않아 작가로 참여했던 강경훈 감독이 연출자로 결정되면서 두 달의 공백기간이 생겼다. 아쉽게도 예정된 촬영기간에 맞추기 위해 시나리오 수정작업이 철저히 뒷받침되지 못했고 형식에 대한 고민 역시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네 남자의 죽음에만 힘을 쏟은 관계로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강약조절이 이뤄지지 못한 점은 영화의 흠으로 남는다. 좀 더 꼼꼼한 계획에 맞춰 프리프로덕션이 선행됐다면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을 뿐만 아니라 제작비도 좀 더 절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제작비가 30억이 됐든 17억이 됐든 액수 자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제작비의 총액에 걸맞는 계획의 수반 여부에 있다. 이에 대해 김영화 PD는 “표준 제작 시스템의 정착으로 작업방식의 안정화를 꾀해야 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강경훈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로케이션과 같은 요소가 모두 결정돼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프리프로덕션이 더욱 철저해야 한다”고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죽어도 해피엔딩>은 영화뿐 아니라 영화제작을 둘러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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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50호
(2007.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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