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시켈이 쓴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를 보면 <좋은 친구들>이 왜 걸작인지 소개하는 흥미로운 일화가 나온다. 1990년대 시칠리아 경찰이 마피아를 소탕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어느 이탈리아 기자는 조직의 2인자에게 당신들의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영화가 무엇인지 물었다고 한다. 2인자 왈, “<좋은 친구들>에서 그 남자(조 페시가 연기한 토미)가 ‘내가 우습냐? 고 말하는 장면이요.”
마틴 스콜세지는 <좋은 친구들>의 원작인 니콜라스 필레지의 <Wiseguy:Life in a Mafia Family>를 읽고는 그동안 갱스터물이 묘사하지 못했던 생활양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단순히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하지만 이 영화에는 ‘f***’ 발음만 무려 296번이 나온다!) 갱스터의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 2인자가 언급한 장면에 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반응을 빌리자면, “바로 그게 그들이 사는 삶의 방식이었던 거죠. 실실 웃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목숨을 잃을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겁니다.”
헨리(레이 리오타)는 어려서부터 갱스터의 삶을 동경해왔다. 범죄를 저질러도 경찰이 제지하지 않고 돈과 넉넉한 여가가 보장되며 위험한 일이 닥치면 보호해주는 일명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헨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지미(로버트 드 니로), 토미(조 페시)와 가족을 이뤄 화려한 생활을 영위한다. 그것도 잠시, 감옥에 몇 번 들어갔다 나오고 돈도 떨어지면서 헨리는 점점 조직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러면서 조직을 배신하기에 이른다.
최고의 갱스터물을 선정할 때면 늘 <대부>(1972)와 1,2위를 다투지만 <좋은 친구들>이 다루는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부>가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강하게 대비된 비극적 세계를 다뤘다면 <좋은 친구들>은 붉은 색조로 표현되는 극 중 주인공들의 들 뜬 세계가 특권적인 삶을 예시한다. 덧붙여,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숏, 주인공들을 따라 붙은 카메라가 트래킹 숏을 통해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 또한 폭력으로 뭉친 이들의 단단한 유대감을 표현하는 듯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이 숏의 아이디어를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1986)에서 얻었다.)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가 관심을 갖는 건 세계 자체가 아니라 그 작동방식에 있다. 그의 영화는 늘 삶의 정점에 선 인물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다뤄왔다. 범죄세계를 사실적으로 압축한 이야기로 <좋은 친구들>은 갱스터물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비열한 거리>(1973) <분노의 주먹>(1980) 등과 같은 맥락에서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결국 미국적 삶에 대한 은유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좋은 친구들>은 비극인가? 헨리는 몰락한 갱스터이지만 증인 프로그램을 통해 이후의 삶을 보전 받는다. 그렇게 미국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꼬리를 남긴다.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는 여전히 미국의 폭력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2013 친구들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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