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사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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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악마를 보았다>의 기자시사회장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 벌어졌다. 무대 인사를 위해 객석 앞으로 나온 김지운 감독이 “앞으로는 ‘푸른 하늘 은하수’, ‘금동이 은동이’와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히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잔혹한 장면으로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김지운 감독이 그간 겪은 마음고생을 전래동화풍의 제목에 빗대어 재치 있게 말한 것. 

영화 상영 전부터 이렇게 유쾌하게 기자시사회가 시작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가 감독은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를, 배우는 “정말 열심히 연기했습니다. 예쁘게 봐주세요.”와 같은 의례적인 인사를 반복하는 통에 기자들은 매번 시큰둥해 한다. 오죽했으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무대 인사에서 사회를 맡은 아무개 씨는 판에 박힌 말은 빼고 소감을 밝혀달라는 ‘특별한’ 요구까지 했을까. 하지만 무대에 오른 네 명의 주연배우 중 영화 경력이 짧은 두 명은 역시나! 무대 인사의 클리셰를 구사하는 바람에 기자들의 하품을 자아냈다.

개인적으로 기자시사회에 들락날락한 지 10년이 됐지만 무대 인사의 경직성은 지금도 여전하다. 혹자는 굳이 무대 인사를 할 필요가 무어냐며 무용론을 제기하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도 나름 말 못할 고충이 있다. 요즘에 워낙 인터넷 기사 하나하나에 영화의 흥행이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감독이나 배우 모두 기자들 앞에서 입조심 하는 분위기가 대세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에게 좋은 기사를 부탁하고, 예쁘게 보이려는 감독과 배우의 접대성의 무대 인사가 관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간혹 삐딱한(?) 감독들은 이런 분위기에 일침을 놓기도 한다. 때는 2004년 가을, 장소는 서울극장, <빈집>의 기자시사회를 위해 무대에 오른 주연배우 재희와 이승연은 약속이라도 한 듯 좋은 기사 부탁한다며 소감을 대신했다. 그러자 마이크를 잡은 김기덕 감독은 “기자는 영화를 본대로 기사를 작성하면 됩니다. 양심대로 해야지 맘에도 없는 글을 쓰면 한국 영화 발전에 도움이 안 됩니다.”라는 요지의 말을 해 옆에 있던 두 배우를 ‘뻘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관객석에서 속으로 뜨끔했던 기자들, 많았을 거다.   

물론 김기덕 감독 정도 되니까 가능한 상황이지 신인 급의 감독이나 배우가 기자들을 상대로 도발을 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매번 똑같은 무대 인사를 접할 때면 미친 척 앞뒤 재지 않고 자기 할 말 다하는 이가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 옛날 류승완 감독이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기자시사회 무대 인사에서 했던 소감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좋게 봐주시면 고맙고요, 나쁘게 봐주시면 뭐 할 수 없는 거죠.” 영화가 좋다면야 누가 뭐랄 사람 없다. 그래도 너무 무리한 부탁이려나……. (사진은 2008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공식 기자회견 장면으로 본 기사와 살짝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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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2010년 9월호

2 thoughts on “좋은 기사 부탁합니다?”

  1.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싶어요.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아주 훌륭한 그의 수제자 감독들의 영화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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