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기적>(Miracle on Jongno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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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LGBT영화제’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6월 2일부터 8일까지 열렸다. 일종의 퀴어영화 축제로, 종로3가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되는 이유가 있었다. 서울의 중앙에 위치한 종로는 온갖 인종이 집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인, 외국인, 남녀노소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종로3가 일대에는 게이바가 1천 여곳에 달할 만큼 동성애 커뮤니티가 가장 발달되어 있어 서울LGBT영화제와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혁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은 이처럼 종로3가를 거점으로 형성된 동성애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끝나지 않은 숙제’ ‘일터에 핑크를 허하라’ ‘내 게이 인생의 황금기’ ‘사랑의 정치’ 4막으로 구성된 영화는 4명의 게이의 사연을 따라가며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단편영화 <올드랭 사인>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소준문, 청년한의사회 사무처장이자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장병권, 작은 스파게티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게이 합창단 ‘G-Voice’에도 참여하는 최영수, 평범한 회사원이면서 퇴근 후에는 적절한 치료 및 약을 공급 받지 못하는 에이즈 감염자를 위해 투쟁하는 정욜이 바로 그 주인공.



이들은 편견이 평배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개의치 않고 오히려 게이의 인권 및 권리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발언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종로의 기적>은 소수자에 관대하지 못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부각하기보다 이를 극복하려는 이들의 활동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소준문은 색안경을 끼고 게이를 바라보는 영화 현장에서 꿋꿋이 버티며 작품을 완성해 대중과 소통하고, 장병권과 정욜은 성소수자는 물론이고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과 같은 한국 사회의 소수자와 연대해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하려 노력하며, 최영수는 커밍아웃 이후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게이 동료들과 함께 취미 활동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소수자인 까닭에 이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이기 이전 하루하루가 편견과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종로의 기적>이 무겁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커뮤니티로 인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유희가 이들의 삶을 정신적으로 윤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장병권은 “동성연애를 하려고 동성애 운동을 하는 건데”라며 웃음 띤 얼굴로 얘기하는데 바로 그런 커뮤니티에 대한 욕구가 이 풍진 세상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꼭 동성애자에게만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서 이 나라의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여 연대와 같은 커뮤니티의 형성은 권리로써 삶을 영위하는 방패요, 세상의 모진 시선에 맞서는 창이 되기도 한다.



다만 경직된 우리 사회에서 4명의 주인공이 보여준 행동은 아직까지 지축을 흔들 만큼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제목처럼 ‘종로의 기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뿔뿔이 흩어져 정체를 숨기며 살았던 게이들이 용기 내어 커밍아웃 하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종로가 힘을 주는 터전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이들은 이곳의 동성애자 커뮤니티로 인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적처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성 정체성을 밝히기를 꺼려했던 최영수의 경우,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종로의 케이 커뮤니티를 발견한 후 제2의 인생을 얻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게이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것은 최영수에게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일상으로 환원됐기에 가능해진 변화다.



<종로의 기적>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이 꿈꾸는 세상은 최영수의 커밍아웃이 기적처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질 때이다. 동성애는 사랑하는 대상이 이성애와 다를 뿐 단지 개인적인 성적 취향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종로의 기적이 일상이 될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이들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KBS 저널

(20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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