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문학상을 환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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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7월 ‘한국 문화에도 좀비 바람은 불어오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모 출판사가 좀비소설이자 종말소설인 <세계대전Z>의 한국 편을 기획 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해 <세계대전Z>의 한국 편은 성사되지 못했다. 저자인 맥스 브룩스와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아 최종 답변을 얻지 못한 까닭에 <세계대전Z>라는 제목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대신 해당 출판사는 또 하나의 좀비소설이자 종말소설인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의 출간에 맞춰 ‘ZA 문학공모전’이라는 이름의 좀비문학상을 개최했다.

ZA는 Zombie Apocalypse의 약자로 ‘좀비 묵시록’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ZA 문학공모전의 홈페이지(http://www.minumsa.com/zombi/)에 올라온 글을 인용하자면, ‘바이러스나 기타 질병으로 인해 인격을 상실한 인류가 급속히 증가하는 세기말적 세계관. 흔히 ’좀비‘라고 불리는 괴바이러스의 감염자들을 등장시킨 다양한 작품들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데, 영화는 <레지던트 이블> <새벽의 저주> <28일 후> <R.E.C> 등이, 게임으로는 <Left4Dead> <바이오 해저드(레지던트 이블)> <좀비 아포칼립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설로는 <세계대전Z>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이 미국 Amazon.com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원류격인 <나는 전설이다>, 변형된 스타일인 스티븐 킹의 <셀> 등도 국내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다.’라고 되어있다.

2009년 11월 30일부터 2010년 2월 15일까지 두 달 간 진행되는 ZA 문학공모전의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응모 개요이다. 소설의 배경에 대해서는 당연히 ‘좀비로 뒤덮인 종말 직전의 세계’라고 적시하였지만 형식에 있어서는 특별히 ‘일기와 페이크 다큐 등 자유로운 상상 글’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는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과 <세계대전Z>를 염두에 둔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ZA는 문학에서는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1954) 이후로, 영화에서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이후로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로 정착했지만 최근처럼 급격한 형식의 변화를 꾀한 사례는 없었다. 장르가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까닭인데 다만 문학과 영화가 좀비물의 진화를 취한 방식에는 각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문학이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거치면서 주요한 이슈로 부상한 생화학무기의 공포를 진화의 동력으로 삼았다면 영화는, 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9.11 이후 단순히 쾌락만을 겨냥하지 않고 체험의 수준으로 재현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먼저 좀비문학의 진화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코너를 통해 이미 자세하게 언급했듯 좀비의 발생부터 전 세계적인 창궐, 그리고 좀비로 인해 파괴된 문명사회의 재건까지를 전통적인 서사 방식이 아닌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좀비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만하다. J. L. 본의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은 일기 형식을 채택해 <세계대전Z>가 일군 페이크 다큐 방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저자인 J. L. 본은 현역 해군 장교이자,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인물로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좀비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생존방식의 생생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이 <세계대전Z>와 함께 ZA의 대표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현실성에 있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의 일기체와 <세계대전Z>의 인터뷰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좀비와의 전쟁이 마치 현실인 듯 착각에 빠뜨리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실제로 J. L. 본은 이라크 참전 중에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다. ‘군 복무 도중 세상의 종말이 도래했을 때 군인인 자신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작품인 것. 다시 말해, 저자가 직접 전장에서 느꼈던 공포가 이 책에는 그대로 담겨있다. 예컨대, 극중 좀비의 창궐로 통제 불능의 사회가 된 미국 정부는 주요 도시에 핵탄두를 투하해 위기를 벗어나려하지만 오히려 주인공 나는 미국 정부의 무분별한 핵의 남용 가능성과 그것이 미칠 악영향에 더욱 공포를 느끼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세계대전Z>에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공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의 국내 출간을 즈음하여 기획된 ZA 문학공모전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실제를 연상시키는 형식을 도입해 좀비의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건 좀비문학의 최근 추세다. 이제 곧 한국에서도 세계적 경향을 반영한 첨단의 좀비문학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공모 초기라 많은 작품이 올라오지도 않았거니와 (응모된 작품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이나 <세계대전Z>와 같은 형식을 도입한 작품도 아직 없지만 좀비를 주제로 한 문학공모전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국내에서는 획기적인 시도라 할 만한 것이다.

안 그래도 국내의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ZA 문학공모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장르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제작자를 만날 때마다 그들은 하나같이 ZA 문학공모전을 아냐고 물어볼 정도다. 장르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좋은 이야기 발굴에 혈안이 된 충무로에게 이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흔히들 한국 영화계에서 좀비영화가 안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돈이 되지 않는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완벽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좀비물이 타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예산으로나마 만들고 싶어 하는 제작자와 감독은 적지 않다. 문제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줄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

실제로 내가 아는 모 감독은 <클로버필드>처럼 캠코더로 촬영한 좀비물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동시에 오락성과 예술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획기적인 대중영화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좀비물은 지금 국내를 휩쓸고 있는 신종플루를 은유할만한 가장 시의적절한 소재이고 좀비 그 자체로 오락적인 볼거리이며 다큐멘터리 방식을 도입하면 예산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작가주의적인 공포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할리우드는 일찍이 이 같은 경향에 주목했다. 9.11 이후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는 쾌락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나 벌어질법한 일이 현실이 된 이후로 할리우드의 영화적 전략은 시대의, 사회의 징후를 포착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체험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지금 할리우드는 장르물을 다루되 현실성(reality)에 대한 자각을 결코 놓지 않으면서 대중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발전시키고 있다. <클로버필드>가 괴수물에서, <퍼블릭 에너미>가 갱스터물에서, <디스트릭트9>이 Sci-Fi물에서 장르물의 진화를 이끌었다면 좀비물에서는 <R.E.C>와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일기 Diary of Dead>가 바로 그렇다.

모 감독이 꿈꾸는 좀비물 역시 이런 종류다. 다만 그의 고민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나리오로 발전시켜줄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데 있다. ZA 문학공모전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모 감독은 공모전이 시작된 11월 30일부터 매일 해당 사이트를 접속한다고 한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좋아하는 까닭에 공모전에 올라오는 작품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 좀비문학의 작가를 꿈꾸는 이가 이렇게 많았다니 동지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한국산 첨단의 좀비물을 소설로, 영화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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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12.7)

4 thoughts on “좀비문학상을 환영하며”

    1. 님하 꼭 도전해보삼. 두 달이면 단편 하나 쓰기에 충분한 시간이에요. 좀비로 만들만한 소재 충분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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