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랜드>(Zombi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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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 극중 결말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좀비는 장르물 역사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사랑받은 존재다. 할리우드에서는 여전히 좀비물이 제작되고 있으며 박스오피스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남긴다. 한국에서는 양상이 좀 다르다. 장르물의 가치가 여전히 폄하되고 그중에서도 좀비는 대중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한국에서 좀비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나로호 발사의 성공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또한 좀비영화를 본다는 것은 동네 멀티플렉스로 영화를 보러 가는 것과 달리 발품과 돈을 더 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적절한 최근의 예가 바로 <좀비랜드>다.

<좀비랜드>는 지난해 10월 2일 미국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 4주간 톱10에 랭크된 전력을 갖고 있다. 11주간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 영화가 한국으로 넘어오니 극장 개봉 없이 DVD로 직행하는 신세가 됐다.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가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좀비영화에는 관객이 안 몰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이 좀비물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독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나마 DVD로 볼 수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신예 루벤 플레이셔가 연출한 <좀비랜드>는 좀비물의 최근 경향을 모두 반영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요즘 개봉하는 좀비영화가 그러하듯 <좀비랜드> 역시 왜 세상이 좀비들로 넘쳐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다. 대신 좀비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생존규칙을 제시하며 영화의 문을 연다. (이 부분의 가장 선구적인 작품이라면 소설 <세계 대전 Z>의 맥스 브룩스가 쓴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가 있다. 곧 국내에 번역될 예정이라고 한다.) 순진한 청년 콜럼버스(제시 아이젠버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다. 주변 모든 이들이 좀비로 변해갈 때 그만이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 체력 강화에 힘을 쏟을 것! (좀비에게서 멀리 오랫동안 달아나야 하니까) 확인 사살할 것! (머리를 박살내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니까) 안전벨트를 맬 것! (좀비 추격을 따돌렸다고 안심하다가 전복된 차와 충돌해 앞 유리로 튕겨나가 좀비의 밥이 될지 모르니까) 등등.

근데 콜럼버스가 동부의 집을 떠나 서부로 가면서 만나게 되는 이들도 모두 나름의 생존규칙을 가지고 있다. 텔러해시(우디 해럴슨)는 보이는 족족 좀비를 죽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요, 위치타(엠마 스톤)는 남자 보기를 좀비 보듯 하며 친구 없이 무료한 삶을 보내는 동생 리틀 록(아비게일 브레슬린)을 위해 놀이동산 구경 시켜주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 이렇게 생존규칙이 다르다보니 이들은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좀비로부터의 생존을 말하는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따로 놀기 좋아하는 우리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하나로 맺어지는가에 관심을 집중한다.

<좀비랜드>의 최종 목적은 주인공 각자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깨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과정에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소통’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스스로 만든 생존규칙은 단순히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갈수록 사람 살기 각박해지는 현대사회에서도 구성원들은 각자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생존해가고 있다. 콜럼버스처럼 바깥세상과 교류를 끊고 집에 쳐 박혀 인터넷 게임 WOW만 일삼는 히키코모리도 있고 외로운 삶을 이겨내려 애완동물에게 온갖 사랑을 쏟는 텔러해시 같은 남자도 있으며 위치타와 리틀 록 자매처럼 남자에 대한 불신을 갖고 살아가는 여자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소통은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근데 생존규칙이 각자의 방식으로 평행선을 긋게 되면 좀비 가득한 세상에 고립된 인간이나 모두 섬처럼 사는 현대사회의 사람들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좀비는 반복적인 삶에 무기력해지고 극단적으로 개인화되어가는 현대인들을 은유하는 장치로도 종종 다뤄진다. 이 영화의 제목이 좀비‘랜드’(zombieland)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좀비랜드>를 보며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과 사이먼 페그, 이 불세출의 콤비가 만든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조지 로메로의 우산에서 벗어나 거대한 정치적 배경 없이 우리 이웃의 각박한 삶을 좀비로 은유한 (거의) 첫 번째 좀비물이었다. 그리고 <좀비랜드>는 그와 같은 주제, 즉 이웃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는 주제를 좀 더 심화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좀비랜드>는 주인공들이 그들 각자의 규칙을 조금씩 깨가면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결국엔 유사가족을 이룬다는 얘기를 다룬다. (여기에는 청춘 남녀주인공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해 루벤 플레이셔 감독이 선택한 클라이맥스의 장소는 다름 아닌 놀이동산이다. 표면적으로는 위치타가 동생 리틀 록을 데려다주려는 곳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극중 인물들의 소통이 가장 극대화된 방식으로 이뤄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놀이는 가장 유희적으로 이뤄지는 소통이라는 점에서 놀이동산을 선택한 감독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혼자 놀지 말고 같이 놀자.’ 비록 그것이 좀비를 사살하는 형태로 드러나지만 그 와중에 콜럼버스와 위치타는 키스를 나누고, 텔러해시는 가족사에 얽힌 비밀을 밝히며, 함께 있기 거북해하던 이들은 마침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뉴욕 포스트’의 카일 스미스는 <좀비랜드>를 두고 “<행오버> 이후 가장 웃기는 코미디”(The funniest comedy since <The Hangover>)라고 평했다. (그러고 보니 <행오버> 역시 국내에는 DVD로 직행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코미디는 좀비가 주는 공포감을 중화하는 일종의 당의정이라 할만하다. 생각해보면 소통의 진심이 의심받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건 웃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존 경쟁 속에서 웃음은 현실에 핍박받는 서로간의 불신과 의심을 불식시키는 당의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이 사람 되기 힘들어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고 했나. 루벤 플레이셔 감독은 좀비가 되기 싫으면 웃음을 잃지 말자고 말한다. 그것이 곧 소통의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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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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