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로지, 국외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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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영국영화계는 ‘찻잔 속의 폭풍’이라 할 만큼 새로운 영화적 시도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 시기로 기억된다. 누벨바그나 아메리칸 뉴 시네마처럼 세계영화사에 굵직한 획은 그은 정도는 아니지만 매카시 광풍이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켰던 당시의 할리우드와 달리 소재에 대한 제약이 없었고, 영어사용권이었기에 제대로 된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기 힘들었던 제3국(?)의 연출자들이 영국으로 몰려든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앵그리 영 맨’으로 불리는 일군의 신진 감독들, 토니 리처드슨(<성난 얼굴로 돌아보라>(1958))과 카렐 라이스(<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1960))와 린지 앤더슨(<고독의 보수>(1963)) 등이 ‘프리 시네마’ 운동을 일으킨 한편에서 로만 폴란스키는 조국 폴란드를 탈출해 영국으로 건너와 <혐오>(1965)와 <궁지>(1966)를 만들었고 프랑스의 프랑소와 트뤼포는 <화씨 451>(1966)을 작업했으며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현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모더니즘 영화 <욕망>(1966)을 연출했다.

미국인 감독들의 영국 러시 또한 만만치 않아서 리처드 레스터는 비틀스를 출연시킨 <하드 데이즈 나이트>(1964)를, 로저 코먼은 에드거 앨런 포 시리즈의 몇 편을, 시드니 루멧은 북아프리카의 어느 영국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언덕>(1965)을, 프레드 진네만은 <사계절의 사나이>를 영국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조셉 로지는 매카시의 빨갱이 혐의를 피해 1950년대 초에 영국으로 건너와 <Time without Pity>(1957) <Blind Date>(1959) <The Criminal>(1960) <Eva>(1962) 등 일련의 범죄영화로 입지를 굳힌 후 극작가 헤럴드 핀터와 손잡고 만든 일명 ‘관계 삼부작’ <하인> <사랑의 상처> <사랑의 메신저 The Go-Between>(1970)를 통해 작가의 지위에 올랐다.

<하인> 관계의 역전

<하인>은 조셉 로지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중요한 조력자로 꼽히는 배우 더크 보가드(로지는 더크 보가드의 우정을 바탕으로 <잠자는 호랑이>와 <친밀한 이방인>(1956)을 만들며 상업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와 헤럴드 핀터 셋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 ‘포텐’을 터뜨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로빈 모옴의 동명소설을 헤럴드 핀터가 각색한 이 영화는 귀족 토니(제임스 폭스)에게 고용된 저택 관리인 바렛(더크 보가드)이 주인의 공간과 정신세계를 야금야금 장악해가는 과정을 통해 관계의 뒤집힘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 김기영의 <하녀>(1960)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점하지만 계급이나 권력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더 잘 이해하는 손아랫사람에 의해 정신적 데미지를 입는 자의 이야기는 조셉 로지가 심심찮게 주목해온 주제다.

계급의 역전이 빚은 부조리한 관계의 풍경화는 조셉 로지가 <하인> 이전 <Eva>에서도 다뤘던 내용이다. (다만 <하인>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프랑스와 달리 범죄영화에 대해 평가가 박했던 영국저널의 풍토 탓이었다.) 하여 그의 영화는 정치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녹색 머리카락의 소년>(1948)은 머리 색깔이 녹색으로 변한 소년이 갖게 된 공포를 통해 매카시즘을 풍자했고, <저주 받은 아이들>(1963)과 <왕과 조국>(1964)은 전쟁 반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Time without Pity>와 <Blind Date>는 사법과 사형 제도에 대해 비판한 영화였다.  

조셉 로지의 일관된 반골 성향의 영화적 태도는 그가 쌓아온 예술적 성장 배경에서 기인한다. 하버드 대학에서 연극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조셉 로지는 1935년 소련을 여행하며 그곳의 예술인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으로 돌아와 노동자들의 의식을 깨우는 연극 활동에 적극 기여하게 된다. 또한 90편이 넘는 라디오 정치 쇼를 제작, 연출하고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되니, 그의 정치적인 성향은 스튜디오와의 잦은 불화를 가져왔다. 결국에는 공산당으로 지목되어 반미조사위원회의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당시 그는 이탈리아에서 <배회하는 이방인 Imbarco a Mezzanotte>(1952)를 찍고 있었다.) 영국행을 선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몇몇 비평가들은 <하인>에 대해 할리우드의 영화감독에서 타지를 떠도는 국외자가 된 조셉 로지의 심정을 반영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정치적인 시선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탁월한 이미지 연출 능력 때문이다. 예컨대, 서있는 바렛이 잠이 든 토니를 내려다보는 첫 대면의 구도는 앞으로 토니가 바렛 위에 군림할 것임을 암시하며 바렛과 토니, 그리고 토니의 여자 친구를 굴절되게 비추는 거울상은 이 영화가 어긋난 관계의 초상임을 분명히 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은 카메라가 저택을 벗어나지 않는 연극적인 구도 속에서 속박의 기운을 풍기며 사회적 질서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이다.

<사랑의 상처> 관계의 굴절

조셉 로지가 특별히 헤럴드 핀터가 참여한 작품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건 잘 알려졌다. 극작에 능한 핀터가 연극의 제한적인 무대를 감안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적합한 언어로 각색한 탓이 크다. 하지만 이를 받아든 로지가 연출자의 태도를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처럼 유지한 것도 한몫했다. <하인>의 바렛이 처음 토니를 만나러 간 저택에서 곳곳을 신중하게 훑어보는 시선에는 공간(무대)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려는 의도가 여실히 느껴지는 것이다. 로지와 핀터와 보가드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사랑의 상처>에서 이와 같은 시선의 연출은 더욱 증폭된다.

<사랑의 상처>는 대학교수 스티븐(더크 보가드)이 젊은 여자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으면서 겪게 되는 혼란한 감정의 결을 성찰적으로 바라본다. 안정된 지위, 화목한 가정, 교외의 번듯한 저택까지, 모든 걸 가진 듯한 스티븐은 미성숙한 제자 윌리엄(마이클 요크)과 마음을 다 잡지 못하는 약혼녀 애나(재클린 사사르)에 비해 이성적이고 안정적인 위치에서 상황을 조망한다. (하여 스티븐이 2층 서재에서 윌리엄과 애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영화의 가장 특징적인 컷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제자의 여자를 공개적으로 탐할 수 없는 사회적인 제약,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윌리엄과 동료 교수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컷’들만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스티븐은 마음속으로만 애나를 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시선의 컷은 또한 멀리서 애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람자로서 스티븐의 처지를 상징한다.)

멀찍이서 지켜보는 까닭에 전체를 바라볼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비롯한 조셉 로지의 영화적 태도를 두고 혹자는 ‘국외자의 시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확실히 미국을 떠나 유럽 각지를 돌며 만든 영화들을 보면,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사랑의 메신저>)이 됐든, 이념의 대립(<트로츠키 암살>(1972))이 됐듯, 정체성의 문제(<무슈 클라인>(1976))가 됐든 독립한 위치에서 날카롭게 현상을 관찰하는 어떤 욕망이 감지된다. 하지만 결코 그 속으로 들어가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없는 일그러진 형태로 마무리되곤 했다.

이를 두고 조셉 로지는 “영화는 우리의 존재를 묘사한다. 그럼으로써 고통 받고 불안해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의 영화적 철학을 압축했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조셉 로지에게 있어 영화는 곧 삶이면서, 사회와 제도와의 투쟁 속에서 쟁취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데뷔했지만 정치적 성향 탓에 상업영화의 한계와 대립해야 했고 급기야 조국에서 쫓겨나 평생을 독립영화인으로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사랑의 상처>는 스티븐이 차사고로 목숨을 잃은 윌리엄과 부상을 입은 애나를 깨진 앞 유리창을 통해 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처럼 조셉 로지는 삶이라는 거울에 비춘 굴절된 운명을 영화로 재현하며 그 자신의 작품처럼 반평생을 살다간 국외자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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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CINEMATHEQUE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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