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으로 유명한 김종관 감독은 주로 사랑을 다루면서 행위 대신 섬세한 감정을 포착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여 왔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지금껏 20여 편의 단편을 연출한 그의 첫 번째 장편으로 다섯 커플의 연애담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쳐진다.
첫 번째 커플은 사실 남남에 가깝다. 로테르담에서 헤어진 연인을 찾던 폴란드 남자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무작정 전화를 거는데 서울의 한 카페다. 전화를 받은 한국 여자는 갑작스러운 전화가 당혹스럽지만 폴란드 남자의 사연을 들으면서 호기심이 생긴다. 이후 영화는 막 사랑에 눈뜬 커플, 헤어진 후 남은 감정의 앙금으로 갈등을 겪는 커플, 새로 나타난 사랑으로 이별을 겪는 게이 커플, 그리고 우정과 사랑 그 어딘가에 위치한 커플의 사연을 횡단하며 사랑의 ‘어떤’ 순간을 잡아낸다.
이처럼 독립성을 갖는 에피소드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조금만 더 가까이>는 단편 활동에 전념했던 김종관 감독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일관된 주제 하에 다섯 개의 사연이 연결되기 때문에 나름 장편의 흐름이 느껴진다. 로테르담의 폴란드 남자와 서울의 한국 여자 사이의 사연을 가장 처음 배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만 더 가까이>가 ‘감정의 거리’에 대한 영화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모두 관계의 교류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감정 변화들의 줄 잇기이었다. 관계의 거리를 좁히거나 벌리기 위한 무수한 감정의 점찍기가 만들어내는 생명력 넘치는 사랑의 풍경은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도 유효하다. 다만 좀 더 과감해진 설정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영화들과 차별이 감지된다.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성 관계를 묘사하는가 하면 게이 커플이 등장해 오래된 사랑에 지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연출 노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성 묘사에 있어서 육체의 전시가 아닌 첫 관계 시 발생할법한 호기심, 두려움, 미숙함 등의 복잡 미묘한 감정과 표정의 변화를 잡아내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이다.
게이 커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남녀의 역할이 남남으로 바뀌었을 뿐 이들의 사랑은 이성 관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랑이란 게 그렇다. 성별, 나이, 국적을 불문하고 극중 요조가 연기한 뮤지션 혜영의 가사를 빌리자면, ‘모두 다 지나가면 똑같은 이야기일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이 각자에게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갖는 이유는 금세 잊어버린다든지 또는 상처로 남아 마음속을 유영하다가 불현 듯 기억을 통해 주관적인 방식으로 소환되는 까닭이다.
김종관 감독이 감정을 묘사하는데 있어 시간과 공간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주변 소품이나 음악 등을 빌어 설명하길 즐기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랑은 나누는 순간엔 눈이 멀지만 그 이후 기억이라는 우회를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마련이다. ‘그날은 거리에 낙엽이 아름답게 흩뿌려진 가을이었어.’ ‘그때 우린 조용한 음악을 들었지.’, ‘가회동의 한적한 카페에서 사랑을 나누었어.’ 그래서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늘 사랑에 대한 솔직한 고백으로 보인다. 그렇게 조금씩, 더 가까이 사랑의 비밀에 다가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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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2010.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