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을 찾았다 –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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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이 2년 만에 신작 <The Third Place>를 발표했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이 이어지고 있는 이번 앨범을 만들기 위해 피를 쏟을 만큼 노력했다는 그녀다.


허남웅 기자 | 피곤해 보인다.
이상은 | ‘쌈지사운드페스티벌’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끝낸 후 울산에서 열린 ‘처용문화제’ 공연까지 쉬지 않고 계속 갔다 오니까 몸이 망가졌다. 공연을 일주일에 세 개를 했더니 많이 피곤하다. 앨범 나오고 열심히 뛰고 있다.


허남웅 기자 | 열세 번째 앨범 <The Third Place>가 발매됐다. 무슨 의미인가?
이상은 | 건축용어에서 가져왔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나 SK텔레콤 매장을 가면 물건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경험한다. 경험경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The First Place’는 생존을 위한 공간이라고 해서 주거나 생활공간을 말한다. ‘The Second Place’는 생산의 공간, 즉 회사를 말하고 ’The Third Place’, 제3의 공간은 명상이나 예술, 다시 말해 고차원적인 의식이나 정신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지칭한다.


허남웅 기자 | 제3의 공간이야말로 음악을 위한 가장 최적의 장소란 의미인가?
이상은 | 서울에서 생활하다보면 생존을 위한 제2의 공간 이상으로 도약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담다디’ 부를 당시에는 생존을 위해 제1의 공간에서 열심히 움직이다가 좀 더 수준이 높아져 생산을 위한 제2의 공간으로 도약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 차원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에 <공무도하가>(1995) 때처럼 아티스틱한 앨범을 낼 수 있는 제3의 공간에서 음악을 하고 싶었다. 제2의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이것이 제3의 공간이다’라고 느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허남웅 기자 | 재킷 사진을 보면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타히티’를 생각나게 한다. 그런 곳이 제3의 공간인건가?
이상은 | 그렇지 않을까. 일본의 오키나와를 갔는데 그곳 사람들은 생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가 자연에 일치돼 행복해하더라. 지금 환경문제가 대두되는 것이 제2스러운 공간이 횡행했기 때문 아닌가. 제3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관점에서,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 동화돼 살아가는 것이 미래지향적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공기도 깨끗하고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 찍은 사진들은 ‘뽀샤시’하다. (웃음)


허남웅 기자 | 그런 이유로 오키나와에서 앨범작업을 한 건가?
이상은 | 이전 두 앨범이 열심히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과나 내용에 만족을 느끼지 못해 <공무도하가> 때 함께했던 이즈미 와다 프로듀서에게 도움을 청했다. 도쿄에 계시다가 오키나와로 옮겨갔는데 그분이 말씀하시길, 도쿄나 서울은 인간이, 특히 예술가로서 제대로 정신 차리고 견디기 힘든 곳이다, 라면서 여기 스튜디오를 마련해놓았으니 오라고 하셨다.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곳이 바로 제3의 공간이었다. 뭔가 느껴지더라. 이번 앨범은 컨셉이 먼저 나온 게 아니라 오키나와를 가보고 아이디어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허남웅 기자 | 상업가수에서 인디가수로, 그리고 이번엔 한일 합작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은 제3의 작업이기도 하다.
이상은 | 그렇다. ‘제3’에 대한 의미를 찾고 싶었고 변증법적인 길을 찾고 싶기도 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때는 어떻게 될까, 이 두 가지가 섞였을 때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완전히 인디로 돌아가 지하세계에 처박히는 것은 정말 싫고. 지금 메이저에 들어가서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든 제3의 길을 찾고 싶었는데 이번 앨범이 그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허남웅 기자 | 프로듀서 이즈미 와다와는 <공무도하가> 이후 정말 오랜만이다.
이상은 | 일본에서 돌아와 7년 정도 한국에서 여기 있는 분들과 함께 활동했다. 근데 음악 자체가 한국이 일본에 비해 생산과 생존 쪽에 더 가까웠다. 대중음악이 클래식은 아니지만 고차원적인 행위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리라 믿고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한국적 환경에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이즈미 와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분 역시 예술로서 영원한 음악을 만드는 건 일본에서도 간단한 일이 아니라며 도움을 주겠다고 해서 함께 전쟁을 치렀다.


허남웅 기자 | 어떤 전쟁이었나?
이상은 | 이전 두 앨범은 대중들 취향에 맞게 움직이는 활동이었다면 <The Third Place>의 전략은 소장가치가 있는 음반을 만들어 아티스트의 길을 다시 걸어보자였다. 무척 어렵고 고생스러운 게임이긴 한데 의외로 세일즈 같은 부분을 무시하고 작품에 집중했을 때 훨씬 결과가 좋더라.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엄청 좋아하는데, 그분 역시 이런 노선을 가고 있는 거 아닌가.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관객이나 청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성에 의해 판가름 난다.


허남웅 기자 | 그와 함께하니 어떻던가?
이상은 | <공무도하가> 때만큼이나 힘들었다. 이즈미 와다는 스파르타식으로 사람을 몰아붙인다. 음악은 평화로울지 모르지만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엄청나게 치열했다. 목이 많이 상했을 정도다. 그래서 <공무도하가> 이후 작업을 함께 안 했다. 너무 힘들어 두 번 연이어 하면 재니스 조플린처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품은 계속 좋은데 사람은 일찍 죽는 경우처럼 겁이 났다. 그래서 또 해야 될까 지금 눈치를 보고 있다. 그분은 벌써 내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다.(웃음)


허남웅 기자 | 앨범의 만족도를 위해서라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라도 함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상은 | 체력이 받쳐주면. 앨범작업할 때 모두 그런 건 아닌데 이즈미 와다와 작업할 때만 그렇다. 그분이 좀 무섭다.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꿈꿨던 분이기 때문에 원하는 게 너무 레벨이 높다. 무서운 코치를 만난 운동선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허남웅 기자 | 이즈미 와다는 어떤 사람인가?
이상은 | 만난 지 거의 십 년이 됐다. 아버지 같은 분이다. 일본에서는 특이한 고위층 인사에 해당하는데 와다계로 불리는 사무라이 집안이다. 소위 부르주아다. 캘리포니아에서 학교를 나오고 독일에서는 레이저 빛을 쏴서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했다. 조명을 하면서 예술을 한 사람인데 ‘더 후’와 ‘핑크 플로이드’ 공연의 조명감독을 했고 이번엔 ‘반 헤일런’의 투어도 함께했다. 얼마 전 그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핑크 플로이드가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을 떠나 서양에서 활동을 한 사람이니 레벨이 얼마나 높겠나. 인터내셔널을 추구하는 사람이 나에게 그걸 해내라고 하니 같이 일하기 힘든 거다. 그런 사람이 왜 나 같은 애를 도와주는지 모르겠다. (웃음)


허남웅 기자 | 어떻게 만나게 됐나?
이상은 | 처음 일본에 갔던 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문화운동 때문이었다. 거기서 <가장 보통의 재일한국인>이라는 글을 쓰신 재일교포 3세 저널리스트 강신자 씨를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됐다. 당시 나는 어리고 순수해서 돈은 상관없고 순수하게 문화교류를 하는 게 재밌고 신기했다. 일본의 문화계 사람들은 한국에서 세일즈를 하러 온 사람을 볼 때 오로지 돈만 벌기 위해 온 건지, 그 반대로 일본을 존중하면서 교류를 하러 온 건지를 본다. 그때 이즈미 와다가 나를 보고 재미있다고 하며 픽업했다. 순수하게 음악을 하는 것 같은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아티스트의 길을 가게 된 게 그분을 만나서다. 이번 앨범의 경우, 처음에는 음반기획사 쪽에서 돈 없다고 낑낑거렸는데 이즈미 와다가 다 처리해줬다. 한국 쪽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이병훈 씨도 내가 부탁할 때는 못 한다고 하더니 와다가 전화하니까 한 번에 오케이하고.(웃음) <공무도하가>도 마찬가지고, 도 뮤지션 확보부터 예산, 시간까지 와다 그분의 작품이다.


허남웅 기자 | 이상은 음악의 영원한 테마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앨범의 ‘삶은 여행’이란 곡도 그렇고 <Romantopia>의 ‘기나긴 여행’이나 <신비체험>의 ‘Voyage’도 모두 제목에 여행이 들어간다.
이상은 | 듣고 보니 그러네.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보면 돈 많이 안 들이고 여행을 했을 때다. 데뷔한 이래 회사를 다녀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여행은 내 몸에 배어 있는 생활과 같다. 그렇게 사는 게 미래지향적인 것이라고 혼자 생각을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싶어도 회사생활에 얽매어 못 하지 않나. 그래서 음악을 통해 실제로 받아들이는 건 여행과 같은 느낌일 거다. 오키나와의 하늘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처럼, 여행이라는 탈출구를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허남웅 기자 | 그래서인가, 앨범이 계속될수록 음악이 더욱 편안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상은 | 너무너무 치열하게 평화로운 음악을 만드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내면적으로 안정감이 드는 게 확실하다.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온 탓인지, 앨범도 열세 장이나 내서 주변 분들이 보통 삼십대보다 어른스럽다고 그런다.


허남웅 기자 | ‘삶은 여행’ 중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와 같은 가사는 확실히 어른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 짙게 묻어난다.
이상은 | 어떨 때는 현실을 이기지 못해 대중들이 가사를 알아듣기 쉽게만 써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돼서 작가주의적인 가사를 쓸 수 있었다. 자유가 주어져야 가사도 그렇게 쓸 수 있다.


허남웅 기자 | 가사를 음미하면 뮤지션이지만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는다.
이상은 |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내 음악에 치유의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바로 전 앨범 <Romantopia>의 ‘돌고래자리’의 경우는 상품으로 곡을 만들어야 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음악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지’ 어려웠지만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곡을 만들었다. 음악이 케이크일 수도 있고 커피일 수도 있고 향수일 수도 있지만 <The Third Place>는 암치료제 같은 치유의 음악이 되기를 바랐다. 나름대로 연구해온 바에 의하면, 음악은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치유의 힘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약간은 구도자스러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그 과정에서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순수한 음악이 됐으면 했다.


허남웅 기자 | 이번 앨범의 ‘삶은 여행’은 이준기,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 <첫눈>에도 삽입됐다.
이상은 | 주제곡이나 삽입곡은 아니고 뮤직비디오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음반배급사가 ‘엠넷’인데 <첫눈>의 영화사와 연관이 돼 있어서 곡을 만들고 난 다음에 연출을 맡은 감독이 음악을 들어보고 ‘삶은 여행’이 영화의 감수성과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허락했다.


허남웅 기자 | 영화와 별도로 뮤직비디오를 준비하지는 않았나?
이상은 | 사실 지금 뮤직비디오를 만들 제작비가 없다. 이즈미 와다 그분이 원하는 퀄리티에 맞추기 위해 음반작업에 많은 돈을 썼다. 그래서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때마침 <첫눈> 쪽에서 제안을 해줘서 그게 맞겠다고 판단했다. 영화와 음악이 맞아떨어져서 잘 어울리더라.


허남웅 기자 |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이상은 | 나는 가리지 않고 많이 보는 편인데 인디영화를 좋아한다. 최근에 본 작품 중엔 <수면의 과학>이 너무 좋았다. 그런 종류의 영화를 선호하는데 사실 그렇게 영화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미셸 공드리 감독도 <수면의 과학> 만드느라 엄청 고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분은 예전부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부럽다. (웃음)


허남웅 기자 | <홀리데이 인 서울>(1997), <봉자>(2000) 등 영화음악에도 종종 참여해왔다.
이상은 |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제안이 들어온 거다. 영화는 감독의 작업이기 때문에 내 의견 여부를 떠나 그쪽에서 내 음악이 영화와 맞는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일은 안 오게 돼 있다. 제안이 들어온 것 중에 내가 거절한 경우도 몇 번 있다. 너무 야한 영화라든가 상업적인 면만 강조하는 영화들은 하기 힘들다. 1년 전에도 돈 많이 주겠다고 제안이 왔었는데 내가 원한 노선이 아니라 거절했다.


허남웅 기자 | 2년 전에 애니메이션 <아프리카 아프리카> 영화음악을 맡았다. 언제 들을 수 있을까?
이상은 | 처음에 9분 30초짜리 예고편 영상으로 만든 것에 들어간 곡이었다. 그걸 가지고 제작비를 구하려고 했는데 끝내 돈을 구하지 못했다. 감독님이 너무 순수해서 참여한 건데 제작자를 만나지 못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허남웅 기자 |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은 |치열한 전쟁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3박자를 갖춰야 한다. 첫째,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 둘째, 많은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투자를 하는 투자자, 셋째, 결과물이 나온 후 지적으로 마케팅하는 사람들. 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성공 케이스가 될 수 있다. <The Third Place>로 말하자면, 투자자를 구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이즈미 와다의 도움으로 해냈다. 일본의 세션도 대단한 분들이었다. 밥 말리와 공연하며 퍼커션을 연주했던 분, 특A급의 기타리스트와 헝가리언 바이올리니스트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와다 덕분에 참여해줬다. 물론 이병훈 씨도 영화음악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는데 흔쾌히 참여해주셨고. 이들에게서 거의 학대와 같은 지도를 받으며 참은 나, 그리고 마케팅 나름 3박자를 제대로 갖췄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다.


허남웅 기자 | 당신의 음악활동에는 터닝포인트라고 할 만한 지점이 몇 번 있었다. 늘 ‘위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상은 | 이번 인터뷰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터닝 포인트 때는 누구나 힘들다는 것이었다. 직진해서 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꺾어서 가려면 힘이 든다. 내가 그랬다. 이번 작업을 통해 고생한 만큼 찬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남웅 기자 | 편해진 음악 그 이면에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이상은 |그걸 아이러니라고 생각하는 건 열심히 안 살아서다. 농담이다.(웃음) 의사를 예로 들면, 치료에는 치유의 힘이 있지만 의사들은 죽어나지 않나. 나도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죽다 살았다. 설렁설렁했을 때 작품이 안 좋다는 걸 잘 안다. 쓰러질 정도로 하면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다. 흡혈귀처럼 대중들은 그 사람이 얼마만큼 피를 쏟았는지에 따라 만족감을 느낀다. 창작이란 고통만큼 찬사를 받게 돼 있다.


허남웅 기자 | 그렇게 고생한 앨범이라서 그런지 신보에 대한 반응이 좋다.
이상은 | 반응이 좋아서 피로감이 좀 풀렸다. 게다가 이걸 만족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확실히 억울한 건 덜하다. (웃음)  사진 백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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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57호
(2007.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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