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제작발표회 이후 배우 정만식을 두고 화제가 된 ‘말말말’이 있었다. ‘정만식은 개 눈을 갖고 있다.’ 함께 출연한 주지훈이 김성수 감독에게 들은 얘기라며 기자들 앞에서 폭로(?)한 것이다.
제작발표회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캐스팅 당시 김성수 감독은 꽤 진지했던 모양이다. 정만식과 마주한 자리에서 첫 질문으로 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어봤다. “감독님께서 <대호> 촬영장을 방문하셨어요. 그때 제 촬영 분량을 보셨나 봐요. 제게 ‘눈이 좋다’며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셨죠.”
정만식이 <아수라>에서 맡은 역할은 ‘사냥개’ 도창학이다.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를 저지하기는커녕 수하 노릇을 하는 한도경(정우성)을 예의주시하는 검찰 수사관이다. 신분은 그렇지만,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 밑에서 한도경을 잡아다가 협박해 박성배의 범죄 혐의를 캐려고 이용하는 행동대장에 가깝다. 그런 사람의 눈이 선하면 쓰나. 그런 점에서 김성수 감독의 ‘개 눈’ 발언 인정이다.
정만식에게 검찰 수사관 역할은 꽤 익숙하다. 그의 필모그래프를 살펴보면 검찰 수사관처럼 공권력을 행사하는 캐릭터를 매년 찾아볼 수 있다. <내부자들>(2015)의 부장검사, <베테랑>(2014)의 전 소장, <끝까지 간다>(2013)의 최 형사, <간첩>(2012)의 한 팀장, <수상한 고객들>(2011)의 형사 등등.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에서도 검찰 수사관을 연기한 적이 있다. “<부당거래>의 공 수사관은 시간만 때우려는 그냥 공무원이에요.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남자인 반면 도창학은 강해요. 한도경을 이용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게 도창학이 살아가는 세계의 룰이기 때문이죠.”
특정 영화의 캐릭터를 예로 들어가면서까지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같은 역할이라도 차별화가 되게끔 연기했다는 얘기다. “도창학은 실실 웃으면서 상대방을 압박해 들어가는 유형이죠. 그러다 못 참으면 그때 확 나가요. 제가 덩치가 있는 편이라 기본적으로 액션이 크면 관객들이 싫증을 내요. 웬만하면 행동을 크게 안 했죠. 김성수 감독님도 그걸 원했어요.”
도창학 연기에서 힘을 빼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다섯 명의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니만큼 자신의 연기에만 집착할 경우, 팀워크가 깨질 우려가 있었다. <아수라>는 남성영화로 분류되지만, 선이 굵은 폭력보다는 뼈있는 대화가, 낭자한 선혈보다 진한 눈빛이 더 중요한 작품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함께 하는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말하자면, 배운다는 자세로 <아수라>에 임했다. “단 한 명도 선생님이 아닌 사람이 없었어요. (정)우성 형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는 능력이 대단했어요. (황)정민 형은 주변을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가졌어요. (곽)도원 형은 집요했어요. 원하는 연기가 나올 때까지 쉬는 법이 없었어요. (주)지훈은 날 것 같은 싱싱한 연기로 자극을 줬어요.”
정만식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연기에 관한 것들을 다시금 떠올렸다”고 한다. 김성수 감독이 말한 눈의 정체, 정만식은 영화 현장의 모든 것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사냥하듯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배우다.
magazine M
(2016.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