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 스펙터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쟁영화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할리우드 얘기가 아니다. 2010년 충무로는 1970년대 이래 유례없이 많은 전쟁영화가 개봉 및 제작대기 중에 있다. 시기상 올해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오른쪽으로 치우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전쟁영화에 대한 환상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2010년 대거 쏟아지는 한국의 전쟁영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스크린과 TV, 전쟁 속으로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품은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6/17 개봉 예정)다. 한국전쟁 당시 수백 명의 북한 정예군에 맞선 소년 학도병들의 포항 전투를 다룬 <포화 속으로>는 차승원, 김승우, 권상우, 최승현(빅뱅의 탑) 등의 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은다. <의형제>로 올 상반기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장훈 감독은 <공동경비구역JSA>(이하 ‘JSA’) <선덕여왕>의 박상연 작가와 손잡고 <고지전>을 준비한다. 한국전쟁 휴전 협정 이후 벌어진 고지쟁탈전을 영화화하는 작품으로 6월 촬영에 들어간다.

2002년 6월 29일에 발생한 2차 연평해전을 다룬 영화도 2편이나 준비 중이다. 곽경택 감독의 <아름다운 우리>는 2002년 월드컵 열기로 묻혔던 젊은 군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고 백운학 감독의 <연평해전>은 로맨스를 가미해 휴머니즘을 강조하겠다는 각오다. 또한 <7급 공무원><추노>의 천성일 작가가 각본을 맡은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고자 했던 병사들의 사연을 들여다보며 세계 전쟁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철수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는 ‘흥남철수작전’ 소재의 <벅샷>은 <수사반장><제3공화국> 등 드라마 연출로 잔뼈가 굵은 고석만 감독을 연출자로 내정하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비단 충무로뿐만이 아니다. 할리우드는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벌어졌던 미군과 중공군의 전투를 다룬 <혹한의 17일>을 선보일 예정. 시드니 루멧의 <뜨거운 오후>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던 프랭크 피어슨이 시나리오를 맡아 화제다. 한국전쟁이 배경은 아니지만, 강제규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마이 웨이>(가제)에는 세계2차 대전 중 일본군으로 징집돼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참여했던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편 브라운관에서는 30년 만에 부활한 <전우>(KBS 1TV)와 소지섭, 김하늘, 윤계상 등을 캐스팅한 <로드 넘버 원>(MBC)이 6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스크린과 TV를 통틀어 2010년 한국은 가히 ‘전쟁영화 전성시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것이다.


전쟁의 스펙터클

올해 들어 영화와 드라마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전쟁 소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전쟁 60주년이라는 시의성 때문이다. 이미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2000) 개봉 당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등 모처럼 찾아온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흥행에 성공한 전례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 한국 전쟁영화가 국제적으로 검증된 상황에서 해외 판매가 유리하다는 점도 제작사의 심리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2010년의 한국 전쟁영화들은 하나같이 ‘스펙터클’을 중요한 승부수로 내세운다. 이들 영화들이 적게는 100억부터 많게는 200억까지, 모두 대작을 지향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쟁을 볼거리화 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전쟁이라면 빠질 수 없는 파괴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아름다운 우리>와 <혹한의 17일>은 3D촬영을 확정했고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마이 웨이>와 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벅샷>은 해외 합작과 투자를 통해 규모로 승부를 보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사실 <공동경비구역JSA>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웰컴 투 동막골>(2005)이라는 성공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인데 그래서 시각적인 면뿐만 아니라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것도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쉬리>(1999)가 남북 간의 대립을 구도 삼아 과거의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 이래 <공동경비구역JSA><태극기 휘날리며><웰컴 투 동막골>은 가족애와 형제애로 대변되는 휴머니즘을 더함으로써 일종의 한국 전쟁영화를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0년의 전쟁영화들이 대개 한국전쟁을 배경 삼되 한쪽 편에 서지 않고 정치적 상황과 이데올로기에 아랑곳없이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의 학도병을 동등한 시각에서 다루는 <포화 속으로>나 전투 상황보다는 20대 청춘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는 <아름다운 우리>, 남북한 병사의 사연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서부전선 이상없다> 등 2010년의 전쟁영화들은 2000년 이후의 한국 전쟁영화가 도달한 성취를 이어받아 시각과 감정의 스펙터클을 모두 아우르겠다는 전략이다. 아니 오히려 전쟁영화를 상업화하는 의도가 더욱 견고해진 느낌이다.

그래서 특정 시기에 전쟁영화가 몰리는 현상에 대해 어떤 ‘의도’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전쟁에 대한 어떤 성찰이나 재평가 없이 모든 영화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전쟁을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눈물샘이나 자극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영화평론가 이용철은 2010년 집중된 충무로의 전쟁영화에 대해 “한국전쟁 60주년에 대한 상업적인 의미 외에는 없다. 전쟁을 다루는 시각 자체의 천진함을 보여주는 것이 문제”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보수화의 결과’라는 의견은 귀담아 들어볼만하다. <영화 속 심리학>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장근영은 “전쟁영화가 나올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시기적으로 더 중요했던 한국전쟁 50주년 당시만 해도 전쟁영화의 현상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지금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전쟁을 도구화 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균형 잡힌 시각의 필요

한국영화사에서 전쟁영화의 유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수없이 많은 전쟁영화들이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한 바 있다. 당시의 전쟁영화들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소위 ‘반공영화’라는 호칭을 얻었을 정도다. 북한을 물리쳐야 하는 적으로 묘사하고 종국엔 남한의 승리를 공식화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고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됐던 셈이다. 물론 2010년의 전쟁영화들을 반공영화로 규정할 수 없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북한을 적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진일보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다. 다만 특정 작품의 경우, 보수단체가 제작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의심의 소지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연평해전>은 지난해 10월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제작발표회를 열며 우익단체로 분류되는 방송개혁시민연대와 ‘호국안보결의대회’를 가져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굳이 제작 배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결국 기념이라는 행위는 과거를 돌아보고 그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것인데 이와 관련한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좌우 대립이 더욱 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고착시킨 사건은 단연 한국전쟁이다. 그럼에도 그 기원에 대한 고찰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는 것은 한국의 전쟁영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다. 2000년 이후 전쟁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일상화된 전쟁을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가 됐지만 한국 전쟁영화는 <공동경비구역JSA><태극기 휘날리며><웰컴 투 동막골> 이후로 정체한 인상이 강하다.

영화평론가 모은영은 “오히려 후퇴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말한다. “정권의 규제가 심했던 과거의 분단 소재 영화는 반공을 강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를 벗어나려는 시각의 균열이 감지됐다. 그런데 지금은 흥행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영화 일변도”라는 것이다. 예컨대, 이만희 감독의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는 반공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의 대결이 아닌 인간의 탱크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며 반전(反戰)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이는 전복적인 시각에 다름 아니었는데 그 때문에 이만희 감독은 시나리오 검열 과정에서 문공부 장관과 심하게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감독은 최종편집권을 포기하고 말았다.)

검열과 규제가 심했던 과거와 달리 창작의 자유가 무한 보장된 시대라고 하지만 현재 충무로의 투자 환경은 현 정권의 가치에 반하거나 진보적인 시각의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경직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5.18 민주화운동의 후유증을 다룬 <29년>은 투자가 무산됐고 <괴물2>는 청계천 배경을 포기했다.)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은 특정 메시지를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2010년에 집중된 한국 전쟁영화가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때 전쟁영웅을 미화하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작품을 양산해왔던 할리우드가 전쟁에 대한 환멸과 자기반성을 드러내면서 미학적인 진화를 꾀한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잊힌 영웅의 가치를 복권하고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쟁은 그 자체로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CREEN
2010년 6월호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