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흥행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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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한국영화 시장은 그야말로 ‘사극의 역습’이었다.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와 <명량>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이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해 전국 스크린의 80% 정도를 장악했다. 흥행 수치도 예상을 넘어 <명량>의 경우, 하루에 백만 명이라는 놀라운 기세로 관객 수를 늘려가며 한국영화사 열 번째로 천만 관객 영화에 등극했다. <명량> 정도는 아니지만 <군도>와 <해적> 역시 영화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3월 이후 해외영화에 줄곧 내줬던 박스오피스 선두 자리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이들 영화에 관심이 갔던 건 혼란한 시대상 때문이었다. <군도>는 양반의 착취와 탐관오리의 학정이 극에 달했던 철종 13년(1862)의 망할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명량>의 배경은 선조 30년(1597년)이다. 명량대첩 그 이전 이순신은 누명을 쓰고 삼도 수군통제사에서 파면된 상태였으며 대신 임무를 맡았던 원균은 왜군에 대패, 해상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해적>은 이성계가 위화도로 회군(1388년)하여 조선을 건국(1392년)하기까지의 시기를 담는다. 이후 태조 이성계는 1403년까지 약 10년 동안 옥새 없이 조선을 다스려 정통성에 의문을 샀는데 영화는 그에 착안, 고래가 옥새를 삼켰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일차적으로 흥행이 검증된 장르이기에 한국영화는 사극에 올인 하는 인상을 풍긴다. 이것이 제작자의 입장이라면 창작자는 좀 다르다. <군도>와 <명량>과 <해적>에는 빈익빈 부익부의 상황이 가중되고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우회해 반영하겠다는 감독의 저항의식이 기저에 흐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정권부터 집권 세력에 비판적인 목소리에는 재갈을 물리고 개선을 요구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묵살하는 등의 편향적이고 경직된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인 영화는 어떤 형태가 됐든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즉, 사극은 정치적인 의견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거라는 안전핀(?)으로 민감함 이슈를 영리하게 피해간다. 풍자나 은유가 용이한 사극으로 돌아감으로써 현 시대를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세상은 소수의 가진 자들의 것이 되었고 다수의 없는 자들은 극단화된 부와 권력의 피라미드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다수의 마음속에 이 빌어먹을 세상을 갈아엎자는 욕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들 영화는 기본적으로 ‘전복’을 주요한 테마로 삼는다.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군도>는 관의 횡포를 참지 못한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도적이 되는 설정을 극의 주요한 줄기로 삼는다. <해적>은 조선 건국을 두고 고래를 삼킨 국새를 서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 뒤엉키는 해적과 산적과 개국세력의 소동을 다룬다. 그중 산적의 두목 장사정은 영화의 말미 이성계의 침소에 몰래 잠입해 중국에서 하사한 옥새로 정통성을 삼으려 하지 말고 백성의 마음을 얻어 나라를 다스리라는 요지의 충고를 한다.

<명량>은 앞선 두 작품과는 조금 다른 경우지만 영화는 상영시간의 반을 할애해 이순신이 어떻게 자신의 나라로부터 핍박받아 최악의 상황에 몰렸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330척의 왜군 배에 맞서 12척의 배로 대승을 일궈낸 상황을 통해 민중의 영웅으로 우뚝 선 이순신의 모습을 조명한다. 하지만 <명량>은 이순신이 명량에서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며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동안의 왕이었던 선조의 근황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건 <군도>와 <해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군도>의 철종은 내레이션으로만 존재가 설명되고 <해적>의 이성계는 고작 산적에게 충고나 듣는 명목상의 왕일 따름이다.

왕을 거의 허수아비처럼 다루고 있는 이들 영화가 전복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그 자체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대단히 불온한 상상력인데 이들 영화가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주된 이유는 그와 같은 전복에 따른 카타르시스가 아니다. 관객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정교하게 배치된 상업성에 울고 웃는다. <군도>는 정통 사극을 고수하는 대신 웨스턴과 무협을 섞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연상되는 거대한 오마주로서 관객의 이목을 끈다. <명량>은 어떤가, 이순신 장군 외의 캐릭터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버리고 명량 대첩에서 불리한 조건을 딛고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아군의 모습에 모든 물량과 역량을 쏟아 붓는다. <해적>은 애초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을 표방하며 코미디와 액션에 방점을 찍고 노골적인 흥행 전략을 펼쳐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전복에 따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추동하는 영화들임에도 불구하고 극 중 구성에는 하나 같이 새로운 뭔가가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영화가 새로워야 할 필요는 없다. 하물며 수십,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는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그동안 관객들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검증된 요소들을 총집합시키기 마련이다. 다만 전복을 중요한 테마로 삼은 영화들이 정작 그 이야기를 펼치는 화법에서 기존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답습한다는 것은 어딘가 분열적이다.

왜 아니겠는가. 여기에는 감독의 야심과 거액을 투자한 대기업 계열의 제작사가 요구하는 흥행, 그것도 천만에 대한 높은 기대감 사이의 애매한 결합이 놓여 있다. 170억 원이 투입된 <군도>의 손익 분기점은 550만 명, 180억 원이 들어간 <명량>은 600만 명, 160억 원의 <해적>이 4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손해는 제작사나 감독 양 측에 막심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에 제작사는 감독에게 흥행이 검증된 에피소드와 영화적 화법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거액을 투자 받은 감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활용하는 것이 위험부담에서 벗어나는 손쉬운 방법이 된다.

이는 한국 영화산업의 제작 시스템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되풀이되는 부작용의 사례다. 사실 세계영화사를 살펴보면 시국이 하수상할 때 영화적으로 새로운 물결이 도래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등이 주축이 된 프랑스의 누벨바그와 아서 펜(<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데니스 호퍼(<이지 라이더>(1969)) 등이 혜성처럼 등장했던 미국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가 그랬고, 임권택(<짝코>(1980)), 이장호(<바보선언>(1984)), 배창호(<고래사냥>(1984)) 감독 등은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이 자행되던 198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사의 걸작이라 할 만한 영화들을 줄줄이 발표하며 죽지 않는 예술 혼을 과시했다.

이들의 영화를 새로운 영화의 사조로 묶어내는 것은 기존의 제작 방식에 저항하는 영화적 화법이 각광받은 탓이다. 누벨바그의 기수들은 기성세대의 영화와 기존의 시스템에 반기를 들며 장면이 비약적으로 건너뛰는 ‘점프 컷 jump cut’을 그들의 영화적 무기로 삼았다.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뛰고자 jump’ 하는 욕망을 점프 컷에 담아낸 것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악동(?)들은 스튜디오에만 머물던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당시의 미국은 베트남 참전을 결정한 기성세대의 폭력에 맞서 젊은이들이 평화를 주창하며 거리로 나와 세력을 형성하던 때였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젊은 감독들이 밖으로 가져온 카메라는 곧 변화를 바라는 플라워 세대의 열망과 다름없었다.

누벨바그나 아메리칸 뉴 시네마처럼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했지만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 등의 1980년대 영화는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놀라울 만큼 획기적인 데가 있었다. 북한 관련 소재를 다룬다는 것이 지금보다도 훨씬 금기에 가까웠던 당시에 빨갱이(<짝코>)를 등장시켰는가 하면 스스로 눈감고 귀 막은 바보로 전락함으로써 군사정권에 노골적인 반기(<바보선언>)를 들었다. 그리고 이참에 황폐하고 척박한 세상과 안녕을 고하고 이상향(<고래사냥>)을 찾아 나서겠다는 결기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속마음을 대리했다.

영화적 전복이란 이런 거다. 세상에 외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것. 프랑스의 누벨바그와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당대의 사회적 열망을 이야기상에 반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에 본 적 없던 표현방식으로 구현함으로써 영화적 전복을 시도했다. 전복까지는 아니지만 임권택과 이장호와 배창호의 언급한 영화의 경우, 권력이 아무리 문화를 억압할지라도 세상에 대한 예술가의 촉수를 거두지 않음으로써 저항이 무엇인지를 영화적으로 실천해 보였다. 게다가 1980년대의 한국 영화계에는 산업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했을 정도로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는 창작 활동이 가능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변화를 바라는 전복마저도 시스템 내에서 패션처럼 소비될 만큼 한국 영화산업은 비대해졌다. 거대기업 제작사의 한국 영화산업 내의 장악력이 견고해졌다는 의미다. 그런 징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올 여름 시장의 사극 빅3로 불리는 <군도>와 <명량>과 <해적>이다. 나는 2013년 9월호에 게재된 ‘영화의 외침을 들어라’ 제하의 기사에서 저항과 전복의 테마를 영리하게 극에 활용해 관객을 선동(?)한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의 사례를 들어 이런 종류 영화들의 필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불과 1년 후,  시스템은 그 저항과 전복을 어떻게 하면 영화산업 내에서 관리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파악한 듯한 모양새다. 모든 마케팅의 초점을 개봉 주에 맞추고 가능한 많은 스크린을 자사 계열의 멀티플렉스에 배정하는 것. 그래서 <군도>와 <명량>과 <해적>은 기록적인 흥행 스코어로 인구에 회자되겠지만 영화 자체로는 오랫동안 기억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흥행과 전복 사이에서 급속도로 흥행으로만 모든 가치가 평가받고 의미를 갖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영화는 새로움의 기운을 잃는 대신 독과점과 한국영화 위기론과 같은 논란만을 얻게 될 것이다.  

toon 허남준

아레나 옴므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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