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an2013] 장르의 합종연횡으로 길어 올린 새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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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는 영화의 공용어다. 올해 ‘부천초이스 : 장편’에 선정된 12편의 작품 들은 특정 지역, 특정 장르에 몰리는 대신 다양하게 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르로 특화된 영화제이니만큼 당연한 결과겠지만 한편으로 장르가 지닌 보편성의 힘을 보여주는 어떤 경향이기도 하다.

예컨대, 필리핀 시네마라고 하면 브릴란테 멘도자, 라야 마틴 등 인디펜던트 계열 감독 들의 예술영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 선정된 에릭 마티의 <온 더 잡>은 부패한 경찰과 이용당하는 죄수라는 설정을 통해 수준급에 올라있는 필리핀 장르영화의 현재를 대변한다.

이렇듯 장르는 영화적 공식이 비교적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진화를 통해 그 세를 넓혀 왔다. 장르 자체의 진화뿐 아니라 지역을 가리지 않는 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공포물만 하더라도 캐나다의 <혼령의 집>과 태국의 <카운트다운!>이 동서양의 호러가 어떻게 차별되는지를 흥미롭게 대조해 보인다.  

물론 다양성은 새로움을 전제한다. 그런 새로움이 장르에서 가능한 건 천변만화하는 현실을 기민하게 반영하는 까닭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한국 특유의 꽃미남 문화를 스파이물과 실험적으로 결합시켰다면 <페인리스>는 프랑코 독재 시절의 아픔이 스페인의 현대사를 어떻게 관통하는지를 장르로 변주한다.

다만 새로움이 영화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한다면 ‘부천초이스 : 단편’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지 모르겠다. 운이 좋게 이번 부천영화제의 한국단편 예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700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부천초이스 : 단편 부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중요한 경향을 하나 꼽자면, 장르의 크로스오버, 즉 어떤 장르라고 확정하기 힘들 정도로 장르와 장르의 경계 사이에서 놀이(?)를 펼치는 작품 들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밀청>은 지금 한창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떠오른 층간 소음이 소재로 등장한다. 이를 가족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주인공이 청진기를 통해 윗집의 단란한 가족을 관음하고 시기한다는 내용의 독특한 아이디어로 구성하는 것. 또한 <달이 기울면>은 예상 불가한 제목만큼이나 극 중 인물의 감정 변화에 따라 장르가 변화하는 양상을, <소년과 양>(사진)은 중년의 사랑과 청소년의 동성애가 교차하며 미묘한 감정의 해프닝을 직조하는 등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렇듯 한국의 단편이 장르 합종연횡에 골몰한다면 해외의 단편들은 금기에 자기검열이나 한계를 두지 않으며 관객을 도발하는 쪽에 가깝다. <예수 vs 좀비>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불경스러운 기운을 내포하며 <내츄럴리스트>는 동성애를 무려(!) 치료를 통해 고친다는 미래사회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종합하자면, 이번 부천초이스의 장편과 단편은 장르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이자 진수성찬이다. 익숙한 재료로써가 아니라 새로움이라는 측면에서 그 맛은 더욱 황홀할 것이다.  

17회 Pifan Daily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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