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시장의 키워드는 ‘스릴러’와 ‘공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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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는 적극적으로 시대를 반영하고 관객의 취향을 고려하면서 진화해온 까닭에 ‘트렌드’라는 것이 존재한다. 지난 번 기사 ‘한국문화에도 좀비 바람은 불어오는가?’에서 언급했다시피 신종플루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좀비물(과 뱀파이어물)이 각광받는 것이 전 세계적 추세다. 국내로 한정해보자면, 지난해 <추격자>의 대성공으로 충무로의 장르영화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릴러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문학 쪽에서는 마니아에 집중돼있는 독자층을 일반 대중에게로 확장해 장르문학의 파이를 넓히고자 장르의 엔터테인먼트화(化)에 사활을 건 분위기가 역력하다.

충무로의 상황부터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추격자>와 같은 스릴러임을 부각시키고 실화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에서부터 ‘(살인)사건’을 집어넣는 것이 유행으로 정착한 모양새다. 이번 주 개봉작인 홍기선 감독의 <이태원 살인사건>을 필두로, 3회 충무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던 강석범 감독의 <정승필 실종사건>, 서영희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이 그렇다. 다만 이 작품들이 모두 <추격자>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절망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정승필 실종사건>의 경우, 납치, 치정, 살인이 등장하긴 하지만 코미디를 극의 원동력삼아 끌고 가는, ‘코믹수사극’에 해당한다.

‘사건’ 혹은 ‘살인’을 전면에 부각하는 이유는 표면적인 것 말고도 또 있다. 최근 장르영화 중에서 상대적으로 투자 받기 수월한 장르가 스릴러다. <장화, 홍련> 이후 봇물처럼 쏟아지던 공포영화가 참담한 만듦새와 흥행 성적으로 투자대상에서 멀어지는 대신 충무로의 자금이 <추격자>와 같은 스릴러 영화에 몰려드는 형국으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충무로에서 벌어지는 신(新)풍속도 중의 하나가 바로 ‘모든 장르의 스릴러(혹은 미스터리)화’다. 예컨대, <불신지옥>은 공포물로 분리되지만 주인공 언니가 실종된 동생을 찾아가는 구성이 추리물에 더 가까워 현재의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한 경우라 할 만하다. 이제 공포물조차 공포 대신 스릴러나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워 투자를 유리하게 이끌거나 관객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충무로의 현실인 것이다.

‘공포’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비단 충무로만의 상황이 아니다. 장르문학 쪽에서도 공포의 단어 사용을 놓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최근 3쇄를 찍으면서 장르문학 시장에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종일의 <손톱>은 ‘공포스릴러’로 장르를 규정했고, 이종호의 시리즈물인 <귀신전>은 ‘공포테인먼트’로 작품을 포장했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시리즈처럼 공포가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경우는 예외에 속할 정도로 공포 하나만 가지고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역부족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공포소설이라고 했을 때 대중들이 갖는 인식의 대부분이 ‘어둡고 심각한 이야기’로만 집중되는 까닭에 판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고민인 셈.

그래서 각광받는 것이 바로 공포테인먼트다. 공포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이 신조어는 국내 장르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업계종사자들의 의지가 어디까지 다다랐는지 가늠해볼만한 상징적인 단어에 다름 아니다. 마치 <국가대표>와 <해운대>가 철저히 관객의 눈높이에 작품을 맞춰 한국 대중영화의 한 획을 그은 것처럼 공포소설 역시 작가의 자의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독자가 가장 기대할법한 오락성의 강화를 통해 대중문화로의 비상을 꿈꾼다. 그런 바램이 바로 공포테인먼트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손톱>의 이례적인 판매고가 사건 위주의 빠른 전개, 다양한 장르 혼합을 통한 오락적 공포소설의 구현에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공포테인먼트는 장르문학 시장에서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사실 장르물에 대한 충무로의 ‘스릴러화’나 출판계의 ‘공포테인먼트’가 키워드로 부상한 배경은 결과적으로 같다. 대중문화 시장에서 공포물이 얼마나 고전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극명한 사례다. 한편으론 대중의 무의식에 스며든 두려움과 불안감을 적극 반영한 공포물의 고전은 이 사회가 현실의 공포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고 공포물을 대중문화의 하나로 정착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만큼이나, 그 이상의 시련을 거듭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들이 그저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런 접근들은 또 다른 문화가 자라날 토양이 되기도 한다. 장르의 혼합이나 공포테인먼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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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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