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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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에 이어 이번엔 미국 남부의 악랄한 백인 지주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이하 ‘<바스터즈>’)을 통해 기존 영화를 재활용하는 방식을 넘어 히틀러 이하 주요 나치 인사들의 ‘성공한’ 암살 작전을 다룸으로써 대체역사물의 경지에 올랐다. 남북전쟁 발발 2년 전이 배경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에서는 흑인 노예를 함부로 대하는 백인에게 통쾌한 ‘빅 엿’을 가한다.

현상금 사냥꾼 닥터 슐츠는 자신이 쫓는 노예 농장 관리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예 상인에게서 장고를 구출한다. 장고가 알고 있는 백인 관리인을 찾기 위한 것. 장고의 도움으로 현상금을 챙기던 슐츠는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가 남부의 거대 농장 캔디 랜드의 소유주 캘빈 캔디에게 잡혀 있다는 사연을 접한다. 슐츠는 캔디가 흑인 격투 ‘만딩고’를 즐긴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흑인 선수를 사들이겠다는 핑계로 장고와 함께 캔디에게 접근한다.

<장고>는 타란티노의 이전작과 비교해 굉장한 직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갖추고 있다. <바스터즈>의 에피소드 구조를 띠지도 않고 <킬빌>(2003~2004)의 시리즈 구조도 아니며 <재키 브라운>(1997)의 시간 트릭 같은 잔재주(?)도 부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그랬듯 고전과 현대를 가로질러 각종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그의 연출 성격상 관객의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레이어가 무성하다.

이 영화의 원전이 된 프랭크 네로 주연의 <장고> 시리즈와 연관하면 백인 장고가 흑인으로, 서부가 남부로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western’ 대신 ‘southern’이라고 부른다!) 개비된 스파게티 웨스턴의 비틀기로 기능한다. 독일 출신의 슐츠를 주요 인물로 끼워 넣은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미국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물론이고, ‘장고 Django’의 철자에 착안, ‘디장고 Django’라고 부르는 등의 언어유희도 가능한 것이다.

배경 음악을 따라가는 방법도 있다. 타란티노는 <바스터즈>의 일본 프레스 투어 도중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을 듣고는 <장고>의 원안을 떠올렸다. 오프닝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세르지오 코부치 연출의 <장고>(1966) 주제곡 ‘Django’를 그대로 가져오며,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반대편에서 2Pac의 힙합 곡으로 관객의 허를 찌르기도 한다. 이처럼 타란티노는 실제 배경의 역사를 끌어와 특유의 상상력으로 분탕질을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어떻게 보면, 역사 왜곡(?)으로도 비칠 수 있지만 혐의에서 벗어나는 건 <장고>가 기본적으로 미국의 노예 제도에 대해 야유와 경멸조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캔디와 더불어 노예제를 지지할 뿐 아니라 더욱 악랄하게 노예를 괴롭히는 이로 흑인인 스티븐을 설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종의 놀이로 영화를 대하는 타란티노의 연출 성격 상 통쾌하게 한 번 웃자고 만든 작품임을 우리 모두 인지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장고>를 대하는 타란티노의 야심은 소박하다. 장고와 슐츠라는 선인을 한 편에 두고 그 반대편에 캔디와 스티븐이라는 악한을 놓아 이 대체역사물의 범위를 이들 선으로 한정한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다거나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로 확장하는 등의 거창한 기제로 끌고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Why so serious?’ <장고>는 오락 그 자체다.  

Tip! 프랭크 네로의 카메오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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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장고> 시리즈인 <장고> <황야의 무뢰한>(1966) <돌아온 장고>(1987)에는 프랭크 네로가 주연을 맡아 장고로 출연한다. 당연히 이 시리즈에 오마주를 바치는 타란티노의 <장고>에 프랭크 네로가 빠질 수 없다. 그는 클레오파트라 클럽에서 캔디와 만딩고 대결을 펼치는 흑인 노예의 주인으로 등장한다. 대결에서 패배한 후 바에 있던 장고에게로 다가가 이름의 철자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 이가 바로 프랭크 네로다.

movieweek
NO.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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