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 지면을 통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의 홍상수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20개 정도의 질문을 보냈는데 답변 중 “그냥 그렇게 된 겁니다.”라는 문장이 꽤 많이 보였다. 그 어떤 감독보다 솔직한 태도가 신선했지만, 그보다는 성의 없어(?) 보이는 답변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 문장이 홍상수 영화의 세계를 이루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발표한 신작 <자유의 언덕>에는 한국으로 지인을 찾으러 온 일본인 모리(카세 료)가 주요하게 등장한다. 영화는 요양 후 몸을 회복한 권(서영화)이 예전에 일하던 어학원을 찾았다가 모리가 보낸 편지를 수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에 따라, <자유의 언덕>은 권이 모리의 편지를 읽는 순서로 진행되는 구조를 취한다. 근데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권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 로비로 나왔다가 머리가 어지러웠던지 몸을 휘청하는 과정에서 꽤 수가 많은 편지를 놓치게 된다.
권은 떨어진 편지들을 다시 모으지만 그럼으로써 그녀는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편지들이 쓰인 순서를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극 중 내러티브의 순서는 시간에 상관없이 뒤죽박죽이다. 서촌에 여장을 푼 모리가 근처 카페의 여주인 영선(문소리)과 첫 만남부터 허물없이 지내지만 알고 보니 모리가 영선의 개를 찾아준 것을 계기로 친해진 사실이 다음 장면에서 드러나는 식이다. 그것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모리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선의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제목이 <시간>이다. 책에 관해 묻는 영선의 남자 친구에게 모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책에 따르면 시간은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 뇌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틀을 만들어내는 거죠. 우리가 삶을 꼭 그런 틀을 통해 경험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일반의 영화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상수 감독은 기승전결을 따르는 일반의 영화와 다른 구조를 취함으로써 관객들이 영화를 사고(思考)토록 한다.
예컨대, 어느 순간 모리의 눈두덩에 멍 자국이 짙게 내려앉아 있지만, 영화는 굳이 이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모리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영선의 남자 친구와 영선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생긴 결과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일반의 영화 공식을 따르지 않는 홍상수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자유’다. 홍상수 감독은 <자유의 언덕>의 구조에 대해 “시간의 순서를 흐트러뜨리는 데 있어, 뒤에 아무런 연결 논리가 없는 듯이 배치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경험할 기회를 갖고 싶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영화를 함께 본 동료 기자는 극 중 모리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극적으로 권을 만난 에피소드를 두고 꿈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밝혔다. 앞 장면에서 모리가 늦게까지 잠을 자는 모습이 몇 번 등장할뿐더러 권이 읽는 모리의 편지 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상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둘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 이질적이라는 게 근거였다. 누군가는 동의할 것이고 누군가는 다른 의견을 낼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영화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이라는 것, 바로 홍상수 영화가 갖는 특징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러한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시나리오 상에서 고의적으로 시간 순서를 비틀었다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권이 편지를 떨어뜨린 건 감독의 지시가 아니라 현장에서 이를 연기한 배우의 우연한 행동의 결과였다. 그것을 보고 흥미를 느낀 홍상수 감독은 배우가 떨어진 편지를 집어 든 순서에 따라 영화를 편집했다. 즉, 홍상수 감독에게 있어 영화는 일상의 연장이다. 영화를 위해 특별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숱한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일상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그냥 그렇게 된 겁니다.” 그 대답은 성의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연출의 핵심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홍상수 감독에게는 일상이 영화이자, 영화가 일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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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