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양성을 위한 자본의 배려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퍼블릭아트>로부터 문화와 자본의 상관관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써달라는 기사청탁을 받고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승낙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요즘과 같은 경기 불황에 금쪽같은 원고료를 놓칠 수 없어서?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필자야말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최근까지 시장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쇠락할 대로 쇠락한 잡지의 일원으로서 할 말이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 영화주간지 <FILM2.0>에 재직 중인 취재기자였다. 아쉽게도 현재 <FILM2.0>은 잠정 휴간 상태다. 8주년 기념호를 내기가 무섭게 휴간에 들어간 <FILM2.0>은 대외적으로 3월 잡지발행의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의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아니 절망적이다. ‘문화’라는 이름의 순수성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기에는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장의 시스템이 너무나 막강한 까닭이다. 다시 말해, <FILM2.0>은 수익을 내지 못해 이 지경에까지 몰리게 됐다.

<FILM2.0>은 그동안 잡지를 살리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더랬다. 가격인하부터 구조조정까지. 마지막 수단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적극적으로 매각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특히 가장 최근에 진행된 매각협상의 결렬은 더 이상 <FILM2.0> 매각에 관심을 보이는 회사가 없다는 점에서 이 잡지의 실질적인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다.  
그 과정에서 많은 회사들이 하나같이 <FILM2.0>의 구조적인 수익률 부재의 주요한 이유에 대해 콘텐츠가 너무 진지해 독자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전문지라 할지라도 범위를 문화 전반으로 넓히고 좀 더 가볍게 흥미 위주의 기사를 생산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네들이 말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이었다. 이름만대면 알만한 모 회사는 2~3년 전부터 꾸준히 <FILM2.0>에 관심을 보여 왔다. 그럼에도 뜻을 이루지 못한 건 고용승계나 콘텐츠 성격의 유지와 상관없이 표제, 즉 ‘FILM2.0′ 제호만을 원한 까닭이다. 브랜드의 가치는 인정할지언정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무겁기 짝이 없는 내용물은 계승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이와 같은 협상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당연히 편치 않았다. 매각 결과에 상관없이 <FILM2.0>이 지난 8년 동안 쌓아온 역사와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협상 전면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FILM2.0>은 2000년 12월 창간 당시부터 폐간한다는 소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매체다. 당시는 기존의 <씨네21>이 성공적인 영화주간지로 자리 잡은 지 5년째였고 여기저기서 주간지 창간 소식이 무성하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8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건 <FILM2.0>이 담고 있던 내용물이 업계는 물론 독자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2만 부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호시절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잘해야 1만부 가까운 판매고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부진을 겪고 있지만(평균 6,000~7,000부) 판매 감소는 비단 <FILM2.0>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주간지 판매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무비위크>도, 큰형님격인 <씨네21>도 판매 감소에 따른 수익부재로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판매가격 인상 및 잦은 개편으로 보릿고개(?)를 돌파하려지만 쉬운 승부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선수들이 전하는 얘기다.

듣자하니 영화주간지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수의 잡지들이 곧 문을 닫을 예정이거나 수익 악화를 이유로 매각 시장에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결국 이는 업계 전체가 앓고 있는 문제이지 <FILM2.0>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그래서 <FILM2.0>의 수익 부재를 콘텐츠 부실 여부로 짚고 넘어가는 건 부당하다. 어불성설이다. 필자에겐 <FILM2.0>에게 영화잡지의 전문성을 줄이고 종합문화잡지가 되라는 건 무너진 숭례문을 복원하라는 얘기와 다르게 들리지 않는다.

말이 나온 김에 화제를 잠시 숭례문으로 옮겨보자. 지난해 숭례문 화재 사건을 보고 놀란 건 그 자체보다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에서였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은 화재 원인 규명과 함께 ‘복원계획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복원 계획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그 발상이 실로 놀라웠다. 아, 위대한 대한민국 껍데기 공화국이여.

필자는 당시 유홍준의 말 속에서 한국인의 무의식을 보았다. 원본에 대한 무례함과 무지함.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갖추면 내용물 따위 아랑곳 않는 불굴의 코리안 짝퉁 스피릿. 오리지널리티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한국은 늘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역사를 무시했고 가치를 외면했다. 잠시 얘기가 다른 길로 샌 것 같은데, 요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지난 몇 달간 계속된 <FILM2.0> 매각 협상 과정 어디에서도 전혀 고려된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FILM2.0>의 매각 협상 결렬에 따른 정간 사태가 결국엔 대한민국 특유의 껍데기에 대한 집착 정신이 낳은 폐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는 한국에 들어온 라이선스 잡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나일론> <데이즈드앤컨퓨즈드> <누메로> 등은 해외에서 다양한 문화적 이슈로 유행을 선도하는 문화잡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넘어와서는 겉은 그대로이지만 속은 연예인 화보와 가십기사로 넘쳐나는 보통의 패션잡지로 전락했다. 이유는 하나. 시장이 그걸 요구하니까. 브랜드는 기호로써 소비하되 최대 문화 소비층인 20,30대 여성의 취향에 영합한 콘텐츠로 꾸리겠다는 것. 이와 같은 시장 논리에는 특정 독자층을 겨냥한 문화의 다양성 혹은 전문성에 대한 배려가 끼어들 틈이 없다.  

<FILM2.0>을 비롯하여 국내 영화잡지들 모두 이와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한때 잡지시장을 선도했던 영화잡지들이 시장에서 정체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시장은 영화 하나만의 전문성을 버리고 드라마, 뮤지컬, 미술, 음악 등등 종합문화잡지로 변모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무비위크>는 ‘엔터테인먼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프리미어>는 ‘영화전문지’ 타이틀을 버린 지 오래다. <씨네21>은 TV버라이어티쇼와 드라마를 특집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FILM2.0>은 아예 시장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표지는 영화를 앞세우지만 페이지는 문화 전반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무늬만 영화잡지의 시절이 도래하지 않을까. 아니 이미 도래한 것이 아닐까.  

잡지(雜紙)는 말 그대로 잡다한 것을 모아 만든 책이다. 잡지라는 말 자체에 이미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수익이라는 장사꾼 논리에만 사로 잡혀 다양성을 말살하고 있다. 잡지의 본질이 껍데기만으로 판단되는 시장의 몽매한 인식이 안타깝다. 잡지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 속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천변만화하는 삶과 생활, 즉 문화의 다양성이 담겨 있다. 문화는 쉽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 허남준





PUBLIC ART
2009년 2월호

9 thoughts on “문화 다양성을 위한 자본의 배려는 없다”

    1. 벌써 1년도 더 전의 글인데 댓글을 받으니 기분이 좋군요. ^^ 당시 이 글 쓸 때만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잡지 쪽 상황이 최악은 면하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도 더 안 좋네요. -_-;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 나아지겠죠 ㅎㅎ

    1. 제 개인적으로 읽는 영화잡지는 < 씨네21>입니다. 이번에 개편 되면서 더 읽을 거리가 많아진 것 같아요. 그 외에 서울아트시네마 소식지도 읽고 시중에 판매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한항공 기내지 < 비욘드>도 좋더라고요. 영화 관련 잡지는 아니지만 장르월간지 < 판타스틱>을 즐겨 읽었었는데 지난 달에 휴간 되어서 안타깝더라고요. ㅜㅜ

  1. 휴.. 패션관련 재학중인 대학교 4학년 학생입니다. 이번에 잡지내려고 사람들도 이미 모아놨고 그런데 막상 출판업계가 너무 포화상태다보니 잡지발간목적에 맞는 컨셉잡기도 쉽지않아요.ㅜㅜ 어찌됬든 잡지를 만들꺼고 그렇기때문에 안되는방향보다는 잘되는 방향으로만 생각을 하고있는데, 현실적으로 좀 조언좀 해주세요!! 음 어떤얘기든 도움될것같아요.

    1. 공개적인 장소에서 말씀 드리기는 좀 그럴 것 같고요. ^^; 괜찮으시면 비공개로 메일 주소 알려주시면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확인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딱 어느정도다 라고 말할수있을만큼 명확하지않아서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잡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들(?) 은 갖추어진 상태에요. 화보촬영 시안작업을 하고있는 상태니 완성되려면 한~참 멀었죠.. ㅎ 스탭들 뭉쳐서 힘내서 잘 만들어보겠습니다. 감사해요~ㅎ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